LA시장 선거 결선에 진출한 두 후보가 직면한 과제들은 만만치 않다. 재정난과 경제 활성화, 치안강화와 교육개선 등 정책적 대안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반드시 넘어야할 장애가 있다. ‘무관심’과 ‘무(無)차이’다.
인구 400만, 전국 2위의 대도시 수장을 뽑는 지난주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의 득표수가 10만을 넘지 못했다. 투표율이 16%에 머물렀다. 흥미도, 인기도 모으지 못한 ‘밋밋한’ 후보들 탓일까, 주민들의 ‘무관심’은 두 후보가 뜨거운 결선 캠페인으로 함께 풀어야할 공동숙제다.
게다가 언뜻 보면 두 후보는 여러모로 비슷하다. 성별만 다를 뿐 둘 다 밸리에서 성장한 백인이고, 둘 다 민주당이며, 둘 다 LA시청에서 정치를 익힌 시정부 인사이더다.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이 당연히 유사하다. 한인사회와도 두 명 모두 친근한 얼굴이고 공약도 대동소이다. 대부분 유권자들에게 누가 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무차이’의 이미지를 “왜 나를 뽑아야 하는가”로 바꾸는 차별화 전략이 두 후보가 각각 당면한 최우선 과제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두 후보의 면면은 충분히 흥미롭다. 여러 후보가 난립할 땐 보이지 않던 정책의 차이도 둘이서만 마주보며 공격해대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예선 1위의 에릭 가세티(42)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진보적 사회운동가인 ‘도시남자’다. 140개 국가 출신의 다민족이 모여 200여개 언어를 사용하는 다문화 도시, LA의 시장으로 상당히 어울리는 배경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아버지는 멕시코계, 어머니는 유대계, 이름은 이태리계다. 이태리에서 멕시코로 이주했던 증조부 매시모 가세티 판사가 멕시코혁명 당시 처형당한 후 아기였을 때 미국으로 보내진 조부는 LA의 보일하이츠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전 LA카운티 검사장을 역임한 길 가세티, 러시아 유대계인 어머니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양복을 전담했던 유명 의류회사 집안의 딸이었다.
수영장에 입장을 거부당한 조부의 인종차별 경험을 교훈삼아 일찍부터 사회정의에 눈뜬 그의 젊은 이상주의는 유복한 환경 덕에 상당부분 실천으로 옮겨졌다. 사립고교 하버드웨스트레이크 재학시절 의료구호품을 전달하러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기도 했고 대학시절 버마로 날아가 반정부 세력에 민주주의를 강의하기도 했으며 환경운동을 위해 북극을, 인권운동을 위해 동남아와 북아프리카를, 시의원 시절 무역증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등 찾아간 나라가 80개국에 이른다.
뉴욕 할렘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컬럼비아 대학시절 4.29 폭동 뉴스를 들었을 때,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재학 중 캘리포니아의 반이민 주민발의안 187 통과소식을 듣고 친구들 모아 단식투쟁을 감행했을 때, 정치가로서의 그의 꿈은 이미 싹트기 시작했다.
LA로 돌아와 대학에서 인권과 정치학을 강의하다 2001년 13지구 시의원에 출마, 정치에 뛰어들었으며 3선 시의원으로 6년 동안 시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옥스퍼드 시절 같은 로즈장학생으로 만나 결혼한 부인 에이미 일레인 웨이크랜드도 정치·사회 운동가로 캠페인을 돕고 있다.
수준급의 재즈피아니스트로 스마트하면서도 부드럽고 겸손한 그는 LA시에서 가장 호감도 높은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언제나 따라붙는 사족이 있다 : 어려운 결단을 내릴 만큼 “충분히 터프한가?”
9살 아들의 축구시합을 열렬하게 응원하는 ‘교외지역 엄마’ 웬디 그루얼(51)은 LA시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두려운 줄도, 지칠 줄도 모르고 다운타운을 누비며 홈리스를 돌보던 똑똑하고 야심찬 여대생이었다. 17세 여고생 때 유스리더십 상을 주던 당시 톰 브래들리 시장으로부터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영감을 받으며 그의 정치인생은 결정되었다.
UCLA를 졸업한 후 10년 간 브래들리의 보좌관으로 뛰었고 그후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하다 97년부터는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의 중역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2지구 시의원에 두 차례 당선 된 후 2009년 시 회계감사를 담당하는 컨트롤러에 당선되었다. 시의원 선거때 만난 유대계 변호사 딘 슈램과 2002년 결혼했다.
지난 주 예선의 득표상황 지도를 보면 각 후보의 지지표밭이 한 눈에 드러난다. 가세티는 라틴계의 이스트LA와 리버럴의 웨스트사이드, 그리고 한인타운이 포함된 센트럴시티에서 우세했고 그루얼은 그보다 북쪽인 샌퍼난도 밸리와 남쪽인 하버지역을 차지했다. 사우스 LA 흑인들은 낙선한 잰 페리에게 몰표를 주었고 밸리 북서쪽의 백인 보수표밭은 후보들 중 유일한 공화당이었던 케빈 제임스를 지지했다.
그루얼은 ‘최초의 여성시장’의 역사성을 강조해왔지만 여성표가 거기에 맞춰 움직인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가세티의 라틴계 득표도 기대에 못미처 ‘압도적 지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완전히 새 판이 짜여 진 결선의 숫자상 승패는 페리의 흑인표와 제임스의 백인보수표가 누구에게 가는 가에 달렸다. 그리고 이들 표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가 ‘노조’다.
이번 선거에서 노조의 공개지지를 확보한 후보는 그루얼이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의 지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무원 연금이 재정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즘 같은 적자예산의 시대에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이미 그루얼에겐 노조와의 밀착이 ‘양날의 칼’로 다가오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평화롭게, 활기차게 공존하도록 도와주는 리더를 뽑아야할 LA시장 선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10주, 유권자들에게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번 선거의 ‘핫이슈’인 노조의 역할에서부터 두 후보의 구체적 공약에 이르기까지 조금 더 관심 갖고 조금 더 고민하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왜 찍을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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