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16일부터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전시회
인생의 숙제를 푸는 데
그림은 나에게 도구였으며 길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태우고,
녹이고, 잊고, 들여다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노은님 시화집‘물소리, 새소리’ 중에서
파독간호사 출신… 원색에 동화적 감성 물씬
동양의 명상·독일 표현주의 접목‘인기 작가
노은님(Eun Nim Ro)은 ‘그림의 시인’이라 불리는 재독 화가다. 독일에서는 미대 교수이고,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렸으며, 한국서도 당연히 컬렉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여류화가 중 둘을 꼽는다면 미국의 김원숙, 유럽의 노은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그렇게 좋은 화가의 작품전이 오는 2월16일부터 3월16일까지 한 달간 앤드류샤이어 갤러리(대표 메이 정·수잔 백)에서 열린다.
‘동양의 명상과 독일의 표현주의가 만나는 다리’란 칭송을 받는 노은님의 그림은 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고 천진하다.
물고기, 새, 하늘, 꽃을 주로 그리는 그의 그림들은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순해지고 말개지는 동화적 감성이 느껴진다.
우리 주위의 자연물을 단순화된 점과 선,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하여 밝고 따뜻한 생명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그의 작품은 “서구의 전위적인 사고와 한국의 전통문화가 결합되어 그녀만의 독특한 표현 양식과 개성을 바탕으로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정취로 나타난다”고 평해진다.
노은님은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은 평화로웠지만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고, 12명이나 되는 식구가 방 한 칸을 빌려 살아가는 암울한 생활 가운데 20세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생업에 뛰어든다. 간호보조 교육사 훈련을 받고 보건소에서 일하던 그는 1970년 파독간호사 광고를 보고 독일로 떠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독일병원에서 그는 근무하고 돌아오면 외롭고 그립고 ‘할 게 없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나는 많은 시간을 깊은 고독과 수없는 방황 속에서 벌을 받는 사람처럼 지냈다. 외로워서 괴로웠고, 괴로워서 외로웠다. 외로움 때문에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외로움이 시가 되고 괴로움이 그림이 되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화가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렸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잡았던 물고기, 고향 들녘의 이름 모를 꽃, 담장 뒤켠에 둥지를 틀고 울던 새 등 그리운 고향의 풍경을 화폭에 옮겨다 놓았다.
1972년 어느 날 독감으로 결근했는데 간호장이 병문안 왔다가 그의 방에 쌓인 그림을 보고 감동해 병원에서 첫 전시회를 열어준다. 그리고 지방 소식지에서 이를 본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 한스 티만 교수의 추천으로 뒤늦게 대학에 입학, 6년간 밤에는 간호사, 낮에는 미대생으로 주독야경했다. 1980년 전업작가가 됐으며 1990년에는 그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리고 나이 쉰일곱이던 2002년 같은 대학에서 미학사를 가르치던 동료 교수 게르하르트 바르치(Gerhard Bartsch)와 결혼,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
86년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 세기의 거장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전시회’에도 참가했는데 이를 계기로 백남준씨가 한국에 가서 ‘독일에 노은님이라고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는 말을 했고,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공미술이나 환경미술 작업도 하고 있는 노은님은 1997년 함부르크의 유서 깊은 알토나 성 요한니스교회 색유리작업을 했고. 한국에서도 1998년 농심재단, 1999년 GS 강남타워벽화, 서울 LG 아트센터 지하도 연결 벽화, 강원도 문막 오크밸리교회의 색유리작업을 남겼다.
이번 LA 전시회는 노은님의 흑백작업과 컬러작품 등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2월16일 오후 6~8시 열리는 오프닝 리셉션에는 작가도 참석한다.
AndrewShire Gallery 3850 Wilshire Blvd. #107 LA, CA 90010
(213)389-2601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