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매물이 없어 난리다. 연초부터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바이어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졌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장만하려는 바이어들이 새해 벽두부터 집을 보러다녀도 도무지 매물로 나온 집을 찾을 수가 없어 자포자기 상태다. 6년만에 주택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지만 때 아닌‘매물품귀’ 현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 남가주 주택시장의 지난해 매물은 전년 대비 약 40% 감소한 상태이며 주택시장 활황기였던 2006년과 비교하면 감소폭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매물 공급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으면 주택 수요가 다시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다. 본보가 자체 조사한 한인 밀집지역 리스팅 현황과 함께 가주지역 매물부족 현상을 진단한다.
한인 선호지역·25만~40만달러 가격대 더 심각
셀러측 일방적 거래 주도, 첫 구입자 더 힘겨워
잠재 바이어 나선 데다 투자수요 급증도 한 요인
■ ‘매물 다시 찾아볼 게요’
LA 동부 지역의 한 에이전트가 최근 바이어에게 이메일을 통해 전한 마지막 말이다.
첫 아이를 출산한 직후인 약 한 달 전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젊은 부부가 바이어다. 부부 바이어와 함께 한 달동안 무려 4건의 오퍼를 넣어 봤지만 마지막 오퍼마저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에이전트가 바이어에게 위로 차 건넨 말이다.
부부가 구입하려는 주택의 가격대는 25만~35만달러대로 첫 주택 구입자와 부동산 투자자들의 구입 수요가 가장 높은 가격대로 번번이 현금 오퍼, 투자자들의 오퍼에 치였다.
생애 첫 주택 구입에 나선 이 부부 바이어는 매물이 없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 사정이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구입희망 지역에 나온 매물 중 원하는 가격대의 주택 매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간혹 매물이 나올 때마다 좋은 조건의 오퍼들이 쇄도해 번번이 쓴잔을 마시는 일에 익숙해졌을 정도다. 이젠 바이어가 ‘희망을 잃지 말자’는 말로 에이전트를 격려하기에 이르렀다.
■매물부족 현상 셀러에 힘 실어줘
첫 주택 구입자 및 저가대 주택 구입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매물부족 현상뿐만 아니다. 매물은 줄고 바이어는 늘자 갖가지 구입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려는 셀러가 크게 늘었다. 집을 보여주는 단계에서부터 오퍼 조건까지 셀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바이어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숏세일 매물은 물론 일반 매물까지도 가급적이면 집을 보여주지 않고 오퍼를 받으려는 셀러가 많아졌다. 매물은 우선 MLS에 올려놓고 집은 일정기간이 지난 뒤에 볼 수 있다는 조건을 단 매물들이다.
내부상태를 알 수 없다는 위험에도 우선 오퍼부터 제출해 놓고 보자는 바이어들의 오퍼가 밀려드는 것도 최근 주택시장 추세 중 하나다.
집을 보려면 우선 오퍼를 제출하라는 셀러도 많아졌고 노골적으로 현금 오퍼를 선호한다는 문구를 MLS 설명란에 삽입한 매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인 선호 지역도 매물부족 현상
매물부족 현상은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가주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 가주부동산중개인협회(CAR)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미판매 주택 재고량은 전년 대비 약 42%나 감소했다.
또 부동산 전문 웹사이트 질로우닷컴의 조사에서도 남가주 대부분의 카운티의 매물량이(9월말 기준) 전년 대비 평균 약 40% 이상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물감소 현상은 일반 매물보다 차압이나 숏세일 등 급매성 매물 시장에서 두드러졌다. CAR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숏세일 매물과 차압 매물은 전년 대비 각각 약 42%, 58%씩 감소한 반면 일반 매물은 약 15% 가량 줄었다.
한인이 선호하는 지역에서도 매물품귀 현상은 볼 수 있다. 본보가 부동산 중개인 전용 매물 정보 웹사이트 ‘CRMLS’의 자료를 분석한 바(도표 참조)에 따르면 한인 선호지역 중 전체 매물량이 100채 미만인 도시는 15곳이었고 50채 미만 지역도 10곳이나 됐다.(1월9일 기준). 특히 첫 주택 구입자의 수요가 높은 20만~40만달러대의 매물량 부족 현상이 두드러졌다.
라카냐다, 라크레센타 지역에서 이 가격대에 해당하는 매물은 한 채도 없었고 세리토스, 라팔마, 브레아, 월넛 등에서는 5채 미만이었다. 중간 가격대로 볼 수 있는 40만~60만달러대에서도 매물이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라카냐다 0채, 라크레센타 7채, 다이아몬드바 7채, 라팔마 6채 등으로 10채 미만이었고 대부분 한인 선호지역에서 이 가격대의 매물은 50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주, 완연한 셀러스 마켓
가주에서 매물감소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에 따른 셀러스 마켓 현상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셀러스 마켓 현상은 주택가격 상승으로 CAR에 따르면 가주 지역 주택 중간가격은 약 34만9,300달러(지난해11월 기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5% 상승했다.
매물감소로 재고기간도 빠르게 단축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가주 매물의 재고기간은 약 3.1개월로 전년보다 약 42% 단축됐고 매물 판매기간 역시 약 38일(중간 기간)로 약 34%나 줄었다. 주택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빠르게 매매되고 있음을 설명하는 통계다.
가주 주택시장에서 매물 수요와 공급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자 주택 구입 경쟁도 매우 치열해졌다. CAR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매매된 주택 10채 중 약 6채는 복수 오퍼를 제출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 12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지난해 매매된 주택 한 채당 평균 약 4.2건의 오퍼를 제출받아 전년도(3.5건)보다 구입 경쟁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매물 부족 현상으로 리스팅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는 매물도 증가했다. 지난해 매매된 주택 중 약 33.1%는 리스팅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새 주인을 만났는데 과거 20년 평균인 약 15%의 두 배를 넘는 비율로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한편 지난해 매매된 전체 차압매물 중 약 33.6%가 리스팅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됐고 일반 매물중 약 19%가 리스팅 가격을 웃도는 가격에 팔렸다.
■매물부족, 여러 원인 복합작용
매물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주택시장 침체가 종료됨에 따라 그동안 대기 중이던 잠매 구매세력이 대거 주택구입 활동에 나서며 주택매물을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플리퍼와 기관 투자자를 위주로 한 부동산 투자층에 의한 주택구입 폭증이 매물부족 현상의 주원인으로 지적된다.
기관 투자자들의 경우 은행 보유 차압매물을 대량으로 구입한 뒤 다시 매물로 내놓지 않고 임대 주택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매물부족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최근 은행이 보유 중인 차압매물을 개별적으로 주택시장에 내놓기보다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벌크 세일’(bulk sale)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져 일반 구입자들의 저가대 ‘매물 구경’이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주택시장에 나와야 할 ‘그림자 재고’ 물량이 감소하고 있는 현상은 주택가격 회복에는 긍정적이지만 매물부족 현상의 원인으로도 볼 수 있다. 집을 팔아도 모기지 원리금을 갚을 수 없는 이른 바 ‘깡통주택’ 소유주들을 구제해 주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깡통주택’의 급매성 매물화 현상이 감소했다. 깡통주택 소유주와 모기지 연체자들 중 재융자, 융자 조정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대기 매물량이 감소 추세다. 또 일부 모기지 연체자 중 ‘전략적 차압’을 선택하는 경우 당장 매물로 나오지 않게 된다.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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