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을 여는 사람들 ❶
▶ LAX 운항관리사
대한항공 미주운항 지원센터 박태하(오른쪽) 부장과 LA 사무실 운항관리사 케빈 공 차장이 비행감시 화면을 가리키며 미국 내 기상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장지훈 기자>
국내선 또는 국제선 여객기를 탈 때 “내가 탄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라며 마음을 졸일 때가 종종 있다.
제트엔진의 굉음과 함께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오르면 사고발생 확률이 ‘제로’(0)에 가깝다지만 거대한 여객기 안을 가득 메운 승객들의 마음은 여행의 기쁨과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한다.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항공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사고의 사전예방과 여객기의 안전 운항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운항관리사들은 우리사회의 ‘숨은 영웅’들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수많은 여행객들과 승무원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힘차게 새벽을 여는 대한항공 미주운항지원센터 LA 사무실 운항관리사들을 일터에서 만나봤다.
항로·고도·기상상태 꼼꼼히 확인
기장과 교신, 비상상황 신속 대처
“한 치의 실수도 없다”숨은 영웅들
■항공기 안전운항 길잡이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지난 12월14일 새벽 6시.
대한항공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LA 국제공항(LAX) 활주로 근처의 대한항공 미주운항 지원센터 LA 사무실에 들어섰다. 항공기 안전운항을 책임지는 장소답게 긴장감이 사무실 전체를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미주운항 지원센터(총책임자 박태하 부장)는 서울에 있는 대한항공 본사 통제센터가 메인이 되어 전체 항공기 스케줄, 승무원 관리, 항공기재 관리 등을 총괄하는데 LA를 중심으로 뉴욕과 앵커리지 등 3개 공항에 사무실을 운영한다. 한국에서 파견 나온 3명을 포함해 총 16명의 운항관리사가 3개 지역 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뉴욕과 앵커리지 지원센터는 하루 20~21시간 가동되지만 LAX 지원센터는 2명씩 3교대로 24시간 불을 밝힌다. 케빈 공 차장(44)을 비롯한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런 운항관리사 6명이 한솥밥을 먹으며 조종사들에게 하늘의 길을 터주는 중책을 수행한다.
공 차장의 책상 위에 비치된 다양한 크기의 컴퓨터 모니터 5개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끌었다. 항공기의 항로와 고도, 기상상태, 항로주변 공항들의 운영상황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 모니터들은 운항관리사들의 생명줄 역할을 한다.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 도쿄를 경유해 LA로 들어오는 대한항공 KE-001편의 항적입니다”
공 차장이 비행감시 화면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 화면을 통해 현재 항공기 위치, 현재 기상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KE-001편은 마침 태평양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지상 3만5,000피트 고도를 시속 850마일로 비행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화면에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강수현상이 있는 곳, 하늘색은 눈이 오는 곳이라고 박 부장은 덧붙였다.
운항관리사는 비행감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장 등 조종사와의 교신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상상태의 갑작스런 변화나 예고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기계결함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하늘과 땅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신속히 대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비상사태의 성격에 따라 항공기가 비상착륙하거나 회항할 수도 있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긴장을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운항관리사와 조종사와의 교신에는 항공기-지상 간 데이터 통신, 인공위성 전화 등 최첨단 장비가 사용된다.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항공기 운항 중 기내에서 승객의 건강문제가 발생할 경우 기장으로부터 긴급 위성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다.
공 차장은“ 대한항공의 운항정책은 안전성, 쾌적성, 정치성, 경제성 등 4가지를 고려해 결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라며 “비행기가 무사히 하늘을 날아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는 파일럿의 조종능력뿐만 아니라 비행항로 선택, 비행거리 산출, 연료량 계산, 기상 추정 등 각종 항공관련 정보를 분석하는 운항관리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운항관리사가 잘못된 정보를 조종사에게 제공하면 해당 항공기는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다”며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분야가 바로 운항관리사”라고 강조했다.
■항공기 기장에게 비행계획 브리핑도
운항관리사의 또 다른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공항을 출발하는 항공기 기장을 비롯한 조종사들에게‘ 비행계획서’를 브리핑하는 것이다.
오전 9시30분께 공 차장과 함께 오전 11시 정각에 LA를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KE-008편 에어버스 A380 항공기로 향했다. SUV를 타고 활주로 주변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이륙하는 항공기들의 시원한 제트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프랑스가 제작한 에어버스 A380은 동체가 2층으로 된 최첨단, 초대형 여객기다. 길이 239피트, 운항거리 9,569마일을 자랑한다. 흔히 알려진 3가지 종류(1등석-비즈니스-이코노미)로 좌석배치를 구성할 경우 총 555석을 마련할 수 있다.
비행기 내부를 둘러보고 공차장과 함께 맨 앞 조종실로 들어가 유우룡 기장을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공 차장은 두툼한 비행계획서를 한 장씩 넘기며 유 기장에게브리핑을 시작했다. 유 기장이 “터뷸런스(비행 도중 기체가 흔들리는 현상)가 많네요”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우려를 표시하자 공 차장은“ 이륙한 뒤 서해안을따라가면서 터뷸런스가 걸리는 부분이 있고, 그 후에는 기상이 양호하게 나와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목적지인 인천공항까지 갈 항로와 고도, 예측기상, 항로주변 공항들의 운영상태 등 필요한 정보가 포함된 비행계획서 주요 부분을 하이라이터로 일일이 밑줄을 그어가며 살펴본 유 기장이“ 그럼 계획서를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선언한 뒤 두 사람이 계획서 마지막 페이지에 서명을 하자 약 20분 동안 진행된 브리핑은 종료됐다. 브리핑이 끝난 뒤 약 10분 뒤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됐고 스케줄에 맞게 비행기는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
■9.11 테러 때 꼬박 사흘간 연속근무
LA에 있는 노드롭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항을 전공한 뒤 1991년 대한한공에 입사한 공 차장은 워낙 비행기를 좋아해 항공관리사직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한다.
17년간 운항관리사로 근무한 공 차장은 2001년 9.11 테러발생 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테러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이 공격을 받은 대참사가 발생하자 미국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던 모든 항공편이 사흘간 전격 취소된 것. 이로 인해 꼬박 사흘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연속근무를 하는 고생을 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 11월30일 저녁 LA 지역에 돌풍이 불어 닥쳐 공항이 정전이 되었을 때 LA로 들어오던 인천 발 대한항공 여객기가 온타리오 공항으로 회항하려 했으나 관제탑과 긴밀히 협력, 다른 지역으로 회항하지 않고 예정 도착시간 보다 1시간 정도 늦게 LA에 도착하도록 조치해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공 차장은 “사실 근무 스케줄이 일정치 않아 생활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소속 운항관리사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한국 항공법에 의거해 국토해양부 장관의 위탁을 받아 교통안전공단에서 관리하는 자격증과 미국 연방항공국(FAA)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모두 취득해야 여객기 안전운항을 책임지는 중책을 부여받게 된다.
운항관리사와 항공 교통관제사를 혼동할 수 있는데 항공 교통관제사는 항공기 간 충돌과 항공기와 외부 장애물이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한다.
<구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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