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길까요?”라고 물으면 한 달 전엔 별 망설임 없이 “오바마가 되겠지요”라고 대답했었다. 지금은 “글쎄, 그래도 오바마가 아닐까요…”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것도 어제까지의 대답이다. 내일은? 모른다. 판세가 또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초가을까지 밋밋했던 2012년 대선 판도는 지난 한 달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며 요동쳤다. 어려운 경제상황 속 현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4년의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기보다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 때리기에만 집중하면서도 꾸준히 선두를 지켜왔다. 빌 클린턴의 웅변에 뜨겁게 달아오른 민주전당대회를 계기로 오바마의 승리가 굳어지는 듯싶었다. “선거는 끝났다”는 성급한 분석이 나온 게 9월 말이었다.
10월3일 덴버에서 열린 대선후보 1차 토론은 판세를 뒤집은 10월의 이변, ‘옥토버 서프라이즈’였다. 준비부족 오바마가 무기력한 면모를 드러낸 이날 토론에서 확신에 찬 롬니는 ‘대통령다운’ 이미지로 어필하며 자신이 실망스런 오바마의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과시했다.
“토론은 지지율에 별 영향을 안 준다”는 속설이 무색하게 롬니의 지지율은 치솟았다. 2,3차 토론에선 앗 뜨거, 정신 차린 오바마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롬니도 “경제대책에선 앞서 있다” “통수권자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얻어냈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의 승자는 결국 롬니였다. 전국 지지율은 롬니의 리드로 뒤바뀌었고 오바마가 훌쩍 앞서있던 선거인단 확보숫자도 차이가 줄어들었다.
‘토론의 계절’이 그렇게 지나면서 선거는 막판 스퍼트에 돌입했다. 역전당한 민주당엔 불안감이 떠돌고 반전에 성공한 공화당은 희망에 부풀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막바지 전투를 시작하며 양 후보가 역할을 바꾸었다고 보도했다. 현직 오바마는 ‘언더 독’처럼 뛰고 허약한 도전자였던 롬니는 새로운 ‘선두주자’로 나선 것이다.
양 진영의 막바지 승리 작전을 “모멘텀 대 맵”의 대결이라고 폴리티코는 비유한다.
사기충천한 롬니진영은 압승 가능성에 들떠있다 : “우린 305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참모들은 덴버토론 이후 지지율에 탄력을 준 모멘텀의 변화가 단순한 승리를 넘어 대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는 결정적 계기라고 주장한다.
오바마 참모들은 언제나 ‘맵’, 선거인단 지도를 들고 다닌다 : “선거결과는 오하이오와 2~3개 경합주에 달렸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그들도 주장한다.
‘팀 오바마’로 불리는 오바마 캠페인 진영은 2008년부터도 빈틈없고 세련된 막강 조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굴복시킨 팀 오바마의 성공전략 중 하나는 정확한 숫자 싸움이었다. 힐러리는 캘리포니아와 오하이오 등에서 승리를 거두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듯했으나 대의원과 전체 득표 등 어느 지표에서도 팀 오바마가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숫자의 우위를 넘지 못했었다.
팀 오바마는 막판 접전이 처음부터 예상했던 현상이라고 말한다. 예상했으니 대비책도 있다는 뜻이다 : 경합주를 대상으로 상당히 구체적 작전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7~10개로 꼽히는 경합주 중에서도 3개주 승리가 중대하다.
오바마의 재선을 결정짓는 ‘선거인단 270명 확보’의 길은 플로리다 등 남부보다는 중서부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오하이오, 위스콘신, 아이오와에서 이기면 대통령은 재선된다”고 장담한다.
팀 오바마의 승리 작전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부동표 흡수다. 이틀 동안에 7개주를 도는 오바마의 살인적 강행군 유세, ‘말 바꾸기 명수에 억만장자 기업사냥꾼’ 롬니 때리기 TV광고 공세, 집권 2기의 7대 과제를 담은 책자 발간 등은 아직도 갈대 같은 부동층의 마음을 잡기위한 노력이다.
다른 하나는 투표율 높이기다. 이들에게 가장 겁나는 것은 상대후보가 아니다. 시들하고 귀찮다며 투표하지 않는 “우리 표밭의 기권자들”이다. 어느 진영이 지지층을 더 많이 투표장으로 동원해낼 수 있느냐에 승패가 달린 것이다. 더구나 공화당 표밭인 백인과 노인층은 민주당 표밭인 소수계와 젊은 층보다 늘 투표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팀 오바마가 2008년부터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관리해온 비장의 무기가 ‘그라운드 게임’이다. 로컬 정치조직이란 뜻을 가진 미정치 용어인데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한 풀뿌리 조직을 뜻한다. 이미 4년 전 미 정치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졌던 오바마의 그라운드 게임은 금년엔 몇 배로 늘어났다. 경합주의 히스패닉계와 젊은 층의 유권자 등록에서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린 이들이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면 팀 오바마의 작전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투표일까지 2주도 채 안남은 24일 현재 AP통신이 집계한 선거인단 확보 숫자는 오바마 237명, 롬니 191명으로 아직도 경합주 소속 110명은 유동적이다. 전국지지율 평균은 롬니 47.8% 대 오바마 47.2%, 온라인 예측시장 인트레이드의 베팅은 오바마 60% 대 롬니 39.9%로 지난 주 보다 롬니 베팅이 조금 늘어났다.
무려 2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은 2012년 대선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서커스 같았던 공화당 경선과 지난 몇 달에 걸쳤던 대선 캠페인, 경합주를 융단폭격 했다는 TV광고들, 마지막에 흥미로운 반전의 드라마를 선사했던 4번의 후보토론까지 이만하면 충분히 보고, 충분히 들었다.
이제는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대통령’의 백악관이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우리도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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