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이 실시한 온라인 조사엔 6만4,979명이 응답했다. 질문은 “Are you better off?”, 살기가 나아졌습니까? 였다.
“이것이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고 오바마 취임 무렵인 4년 전과 비교한 몇 가지 경제수치들을 곁들여 그동안의 명암을 보여준다 : 가계 중간소득은 5만5천달러에서 5만1천달러로 줄어들었고 실업률은 7.8%에서 8.3%로 올라갔으며 주택평균가격은 하락했으나, 크레딧카드 빚은 감소했고 401K 적립액은 늘어났으며 주택압류건수는 줄어들었다.
세 분야로 나누어 물어본 응답의 집계결과가 다소 의외다. “4년 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법니까” -예가 64%, 아니요가 36%, “저축은 늘었습니까” - 예가 59%, 아니요가 49%, “주택상황은 좋아졌습니까” - 예가 49%, 아니요가 51%. 수입도 저축도 늘어났다니, 살기가 나아졌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최근 CBS 조사에 의하면 좋아졌다는 20%에 불과했고 39%는 나빠졌다고 응답했으며 47%는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질문은 지난 주말 TV토크쇼에서 민주당 인사들이 궁색한 답변으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표밭의 중심화두로 급속히 떠올랐다.
지난주 플로리다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의 주요과제가 딱딱한 미트 롬니에게 인간미를 덧입히는 이미지 개선이었다면, 이번 주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극복해야할 도전이 바로 “4년 전보다 살기가 나아졌습니까”다. 오바마에게도 민주당에게도 피하고 싶은 질문이겠지만 잘하면 반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 질문은 표심에 명중한 한마디가 선거 판세를 얼마나 강하게 흔들 수 있는가를 증명한 1980년 레이건 캠페인팀의 역작으로 꼽힌다. 투표를 한 주 앞두고 레이건이 유권자들에게 던진 “4년 전보다 살기가 나아졌습니까”라는 한마디가 몇 달 동안 현직 지미 카터와 막상막하였던 선거전을 압승으로 몰아갔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공화당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오바마 저격수’로 강공에 나선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는 엊그제 당장 “카터 당시도 지금에 비하면 좋았던 옛 시절로 보인다”고 강펀치를 날렸다.
롬니가 레이건이 못되듯이 오바마도 카터가 아니며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달라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경제학자들의 지적도 만만치 않다. 사실 80년 당시 카터를 몰아세운 레이건이 제시한 ‘나아진 살림’의 기준은 인플레, 실업률, 안보, 국제사회의 미국의 위상 등 4가지였고 오바마의 지난 4년은 실업률을 제외한 나머지 기준에선 합격선을 넘어섰다.
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진보 칼럼니스트 티모시 노아에게 이렇게 비유했다. “화재 현장에 달려와 불을 끈 소방관에게 집이 도착당시보다 좋은 상태냐고 묻는 것과 같다” - 취임 후 금융위기가 공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필사의 노력을 한 ‘소방관’ 오바마에게 추궁할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대통령은 소방관과는 다르다고 인정한다. 집을 화재발생 이전으로 복구시키는 것 또한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의 정책이 덜 공격적이었다면 지금의 경제상황은 더 나빴을 지도 모르지만 반면 그의 정책이 달랐다면 실업률을 잡고 경기회복을 가속화시켰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4년 오바마의 경제정책이 옳았다, 그르다를 놓고 롬니와 오바마는 앞으로 두 달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심판을 담당한 유권자들은 그러나 복잡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쉬운 말로 강렬하게 표심을 설득하는 것은 후보들의 몫이다.
대다수 유권자들의 경제시각이 비관적이니 선거환경은 도전자 롬니에게 훨씬 유리하다. 웅변솜씨 밋밋하고 호감을 못 얻는다 해도 크게 걱정할 것 없다. 경기회복 가속화를 해결할 ‘해결사’라는 인정만 받으면 된다. 지난주 롬니는 후보수락연설을 통해 1,200만개 새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지만 재임 4년간 매달 25만개씩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해낼지 구체적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 공은 오바마에게 넘어왔다. 오늘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아직 오바마를 좋아하고 4년 전 자신들의 ‘역사적 선택’이 옳았다고 믿기 원하는 무소속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사로잡아야 한다. ‘앞으로 4년 더’ 오바마 플랜에 기대도 좋을 지 확신을 갖지 못한 그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경제회복 대책을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빈라덴은 죽고 GM은 살아났다”는 조셉 바이든 부통령의 말처럼 오바마 4년엔 긍정적 업적도 많다. 기대만큼 빠르진 못했지만 경기가 회복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믿게 해야 한다. 헬스케어 개혁의 장기적 플러스 효과에 대한 적극홍보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두 번째 임기가 미국이 보다나은 미래로 가는 길과 이어져있음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연설을 듣고 난 무소속 유권자들이 “4년 전 보다 살기가 나아졌는가”라는 질문 대신 “롬니 대통령과의 앞으로 4년”에 불안을 갖게 된다면 오바마의 재선 가도는 훨씬 밝아질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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