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달러 넘는 것도 거침없이 매입
아파트 단지 내 17채 한꺼번에 사기도
업계, 호텔숙박 제공·‘풍수’내세워 홍보
아예 중국인 취향에 맞춘 단지 개발도
중국인들이 부동산 업계에서‘할리웃 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초고가 주택시장에서도 중국인들에 의한 매입 열풍이 거세지자 부동산 업계에서는 중국인 큰손을 모시기 위해 혈안이다. 고급 호텔 숙박권을 제공하는 일은 예사고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주택단지를 개발중인 건설업체도 등장했다. 월스트릿 저널에 보도된 중국인들의 고가 주택매입 행보와 미국 부동산 업계의 눈물겨운 중국인 고객유치 경쟁을 소개한다.
■얼마면 돼?
인기 드라마 속의 대사가 아니다. 최근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매입 행보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말이다. 마치 부르는 대로 가격을 지불하듯 중국인들의 고가 부동산 매입이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부동산의 가격표를 살펴보면 수백만달러를 넘는 것은 부지기수고 5,000만달러에 달하는 거래도 최근 여러 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지난 5월 베벌리힐스 선셋 블러버드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 스타일의 호화저택이 중국인 부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부동산 개발업자 프레드 웨바에 의해 건축된 이 저택은 약 3만6,000평방피트 규모로 지난 2010년 6,850만달러에 처음 주택시장에 등장했다. 이후 몇 차례에 걸친 가격 인하 후 결국 중국인 부부에게 3,450만달러에 팔린 것. 약 1년 전에도 인근의 저택이 홍콩 출신 사업가에 의해 약 2,800만달러에 매입된 바 있어 지역 부동산 업계는 이제 중국인들만 바라보는 입장이다.
미국 동부에서는 더 큰 규모의 부동산 거래가 연이어 이뤄져 지역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뉴욕 맨해턴에서 신규분양 중인 고층 아파트 ‘원57’ 로열층은 대부분 중국인들의 소유가 되고 있다. 한층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로열층의 경우 가격이 무려 약 5,000만달러를 호가하는데도 최근 6개월 사이 중국인들에 의한 구입 계약이 수건이나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부동산 구입지는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인들의 부동산 구입 지형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차압사태 진원지인 플로리다, 네바다는 물론 시애틀까지 ‘차이나 머니’가 침투하고 있다. 심지어 미중부 오하이오 부동산 시장에까지 중국인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
월스트릿 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상하이 출신 한 기업가는 마이애미 해안 인근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단지 중 17채를 약 1,400만달러에 한꺼번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천지에 따르면 미국 중동부 오하이오주의 톨레도 지역에 지난해 중국인들의 부동산 매입 자금이 밀려들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중국인 투자자들이 마우미강 인근 식당건물을 약 215만달러에 매입한 뒤 약 69에이커 부지를 약 380만달러에 연거푸 사들였다. 투자자들은 부지에 약 2억달러 규모의 상가와 주택단지를 개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80년대 일본인 매입 때보다 신중
현재 중국인들에 의한 미국 부동산 매입 규모는 캐나다인에 이어 두 번째지만 매우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2011년 3월부터 올해 3월 사이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들에 의한 미국 주택구입 금액 규모는 약 90억달러로 1년 전 기간에 비해 거의 2배로 늘어났다. 그러나 주택시장 전문가들은 NAR의 집계가 MLS상에 등록된 리스팅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 간 거래까지 포함하면 중국인들의 주택매입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 의한 미국 부동산 매입이 시작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주택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에 구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에 주택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고 판단한 중국인들에 의한 미국 주택매입 열풍이 더욱 거세졌다. 중국인들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중국 위안화의 달러화에 대한 평가절상 폭이 커졌고 중국 내 주택시장의 구입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
현재 중국 위안화는 2010년 6월 이후에만 달러화 대비 약 7% 상승해 중국 부호들의 자산 가치를 더욱 상승시켜 주고 있다. 또 중국 정부가 부동산 과열 투자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여러 채의 주택 구입을 제한하고 대출 조건을 강화하는 등 억제정책을 시행 중이어서 중국 내 부동산 투자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다.
홍콩 소재 부동산 컨설팅 업체 대표인 패트릭 오닐은 “중국 내 주택구입 제한이 엄격해지고 유럽시장이 불안해 중국 투자가들 사이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며 “수년간에 걸친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과 낮은 이자율로 중국인들에게 미국은 부동산 샤핑 천국”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매입은 마치 1980년대 일본인들에 의한 매입 열풍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인들 매입 행보는 일본인들과 몇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지적한다. 우선 중국인들은 부동산 구입 때 가격 협상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는 것. 시세를 철저히 따진 뒤 시세보다 웃도는 거래에는 나서지 않으며 투자 수익률 계산에도 철저하다. 과거 일본인 투자가들이 대부분 대출을 통해 부동산 매입에 나선 반면 중국인들의 경우 현금 매입 비율이 높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노골적인 차이니스 마케팅
중국인 큰 손을 잡기 위한 주택개발 업체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중국어 구사 가능한 에이전트를 중국에 보내 현지에서 투자자들을 물색하는가 하면 주택 개발 때에도 중국색이 묻어나는 디자인을 접목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일부 업체는 미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바이어들을 위한 고급 호텔 무료 숙박권을 제공하는 등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에서 분양중인 신규 주택단지 램버트 랜치는 최근 첫 번째 분양 대상인 42채를 5주만에 분양 완료했다.
주택시장 침체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상으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바이어 절반 이상이 중국인을 포함, 아시아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분양사무실 인근에서는 중국인 에이전트가 휴대전화를 통해 중국에 있는 고객과 중국어로 통화하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는 풍경이다.
중국인들의 매입 관심이 늘자 램버트 랜치 측은 주택 디자인에 중국인들의 취향을 전격 반영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전통 주방기구인 ‘웍’(wok)을 사용할 수 있도록 환풍기 시설을 갖춘 별도의 주방공간을 옵션에 포함하는가 하면 중국에서 활동한 주택설계가를 초빙해 중국식 디자인을 적극 도입중이다. 단지 내 주요 도로는 남북 방향을 향하도록 하고 대부분 주택의 창문이 남향이 되도록 설계하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싫어하는 숫자 4가 주소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고 금장식 동전을 주택 건물 밑 땅속에 묻는 등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풍수’ 원리까지 도입하고 있다.
브레아에 위치한 신규 주택단지도 중국인 고객을 잡기 위한 마케팅에 전력중이다. 모델 홈 곳곳에 중국인 고객에게 호소하려는 디자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장식용 사진 액자에는 마치 중국인 가족을 연상시키는 모델을 등장시켰고 TV에서는 성용 등 중국인 배우가 중국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를 상영해 마치 중국인들이 자신의 집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노력중이다.
■미국만한 투자처 없다
상하이에서 투자 상담가로 일하는 리처드 조우는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스 소재 주택을 보지도 않고 구입했다. 몇 달 앞서 같은 단지에서 구입한 친구의 말만 듣고 집을 산 조우는 “2주간 미국 주택시장에 대해 조사했는데 플로리다 지역 주택가격이 크게 하락한 것을 알았다”며 “기후 조건도 좋아 은퇴지로도 적절할 것 같다”고 주택구입 배경을 밝혔다.
USC에 재학 중인 디 멍은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불안감을 미국 주택구입 결정 배경으로 꼽았다. 최근 LA 다운타운 소재 리츠 칼튼 콘도를 약 80만달러에 구입한 멍은 “미국시장은 중국과 비교해 안정적”이라며 “최근 중국 정부의 부동산 시장 억제정책이 강화되고 있어 중국 부동산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에서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스티븐 로도 LA 리츠 칼튼 단지에 위치한 콘도 6채를 동시에 구입했다. 로는 “주택가격이 오르기 전에 서둘러 구입했다”며 “아시아계 부호들은 자산 중 약 10~25%가량을 미국 자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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