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 힐러리 클린턴의 치열한 접전, 그 막상막하의 한 복판에서 전국적 조명을 받았던 2008년에 비하면 금년 캘리포니아 예선은 조용~하다.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뿐 아니라 공화당의 미트 롬니도 예상보다는 빨리 대선후보로 확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망’할 것은 없다. 다음 주 6월5일 예선에도 유권자의 한 표를 목말라하는 안건과 후보들이 맘 졸이며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중 하나가 보통사람들의 일상과 직결된 주민발의안, 프로포지션 29다. 6년 만에 다시 주민투표에 회부된 담배세 인상안이다.
내용은 상당히 쉽고 단순하다 : 첫째, 암 연구 기금조성을 위해 담배세를 1갑당 1달러씩 올린다, 둘째 들어온 세수는 암, 심장, 폐, 기타 담배관련 질병 연구를 위한 특별기금으로 적립한다, 셋째 이 기금을 관리할 9인위원회를 신설한다.
2013~14년에 담배소비세 인상으로 거둘 예상 세수입은 7억3,500만달러, 여기에 시가와 추잉 타바코 등 관련상품 소비세, 이에 따른 판매세 등을 합하면 프로포지션 29가 거두어들일 세수는 연간 약8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이 막대한 세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줄 것인가의 결정권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9명의 위원들이 갖게 된다.
담배세는 주에 따라 다르다. 전국 평균은 1갑당 1달러46센트, 4달러35센트를 부과하는 뉴욕이 가장 높고 17센트인 미주리가 가장 낮으며 캘리포니아는 87센트로 전국 32위다. 자신의 자동차 안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곳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려는 듯 잇따른 강력규제로 금연법의 최전선에 서있다고 자부하는 캘리포니아로서는 좀 낮은 셈이다.
1988년 프로포지션 99로 1갑당 25센트를 인상하고, 다시 1998년 프로포지션 10을 통과시켜 50센트를 올린 후 지난 10여 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담배세는 인상되지 못했다. 물론 시도는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2006년엔 담배세를 무려 300%나 올리려던 야심찬 프로포지션 86이 주
민투표에서 52% 대 48%로 부결되었고 주 의회에서도 10여 차례 추진되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담배회사의 로비도 막강했지만 양극화된 새크라멘토에서의 세금인상안 통과는 현재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과에 필요한 상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공화당 전원의 결사반대로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론의 지지율이 높아 이번 시도는 그 어느 때보다 희망적이다. LA타임스가 어제 발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찬성 62% 대 반대 33%로 지지가 압도적이다.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PIC) 조사에선 지난 3월 67%였던 지지도가 지난 주 53%로 하락했지만 반대 42%보다는 여전히 11 포인트나 앞서고 있다.
프로포지션 29가 통과되면 캘리포니아의 담배세는 전국순위 15위인 1달러87센트로 오르고 담배값도 1갑당 6달러를 넘게 된다. 가난한 흡연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힘들어지는 어두운 면만 보지 말고 건강이 좋아지는 밝은 면을 생각하라고 지지자들은 강조한다.
담배값이 오르면 흡연율이 떨어진다. 이번에도 “10만명 이상의 성인이 금연하고 22만명 아이들의 흡연시작을 막을 수 있다”고 프로포지션 29를 발의한 암협회의 한 로비스트는 장담한다. 암 투병에 성공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도 340만명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호소한다 :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암 연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흡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도 프로포지션 29를 지지하십시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백해무익한 담배의 세금을 올리자는 발의안을 단칼에 무 자르듯 ‘절대 반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프로포지션 29의 반대 캠페인도 “암 연구는 누구나 지지한다”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납세자협회와 상공회의소, 스몰비즈니스 단체들이 전면에 선 반대 캠페인에 자금을 대는 것은 필립 모리스와 R.J. 레이놀즈 등 담배회사들이다. 지지 캠페인보다 4배나 많은 4,000만달러이상을 쏟아 부은 TV광고가 너무 극성맞긴 하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막대한 돈을 엄격한 감시나 제어장치도 없이 또 하나 관료체제를 신설하여 맡긴다니 낭비와 오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암 연구’의 특성상 캘리포니아 세금이 타주로 흘러나간다 해도 막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불확실한 허점들보다는 “생명 구하고, 흡연 줄이는” 확실한 장점들이 돋보이는 게 프로포지션 29의 강점이다. 기금의 배정과 사용에 대한 내막을 잘 모르는 보통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 우편투표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의 한 표도 어제 부쳤다. 한참을 고심했으나 프로포지션 29에 “노우”로 표기했다. 담배회사 광고에 설득당해서가 아니다. 담배세 인상안이 절박한 재정난 타개를 위해 11월 선거에 붙여질 판매세 인상 주민발의안의 발목을 잡을까봐 걱정되었다. 1년에 두 번씩이나 세금 인상안에 “예스”할 캘리포니아 유권자가 몇이나 될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 캘리포니아에는 암 연구보다는 급하게 돈 쓸 곳이 너무 많다. 가난한 노인과 아이들의 의료 및 생계 보조비, 대학생들의 등록금, 교사들의 해고통지서…암 연구는 찢어진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복원된 후로 미루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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