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지역인 폼페이의 햇살은 한 없이 따스했다. 양지바른 데선 노란 병아리 떼들이 오종종 나타날 것처럼. 좁은 언덕길을 올라가니, 인간의 적나라한 생활상이 화산폭발로 묻히던 찰나 그대로 발굴된 현장이다. 엄청난 참상을 야기한 베스비오산에서 12km 떨어진 곳이다. 당시 쌓인 화산재가 2-3m 두께로, 화산 근처는 용암으로 완전히 녹아 흔적도 없단다. 헌데 정작 원흉인 그 산은 멀쩡한 얼굴로 시침 뚝 떼고 조용히 제자리다.저만치 하늘 아래, 흉포했던 전적이 믿기지 않게 마냥 온순해 보이는 그냥 산이다. 실로 어찌 그런 일이...
▲화산 폭발했던 베스비오 산
입구에 있는 제사 드리던 신전은 원주 몇 개만 부서진 채 있다. 주변이 너무 황량한 잿빛인데 잡초만 파랗게 드세니 더 처연하고 덧없다. 집터와 담, 길까지 황토먼지를 뒤집어 쓴 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양쪽 보도 보다 낮게 만든 네모돌이 깔린 마찻길은, 바퀴가 지나가던 부분이 파인 채 기차레일처럼 쭉 이어져 있다. 간간히 길 가운데에 크고 넓적한 돌들이 올려져 있는데, 마차과속방지턱이자 우천 시에 보행자들의 징검돌이란다. 주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상이 떠오르며 비 오는 소리, 말발굽소리가 들려온다.
▲ 신전 터
옹기점인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토기들이 선반에 포개져있다. 맙소사! 옹기점 주인인지, 단말마의 순간, 수족과 동작이 정지된 그대로, 죽음을 생생하고 참혹하게 증거하고 있다. 곡물창고였던 곳엔,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누운 채 사지가 뒤틀린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수라장속에 빠진 인간들의 처절한 마지막 비명들이 들려 소름이 끼친다.
당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재현돼 밀을 빻던 연자방앗간도 있고, 부엌이나 빵집엔 화덕까지 그대로다. 비록 화덕 안엔 푸른 잡풀만 가득하지만. 퇴폐영업집도 있는데, 벽엔 제법 야한 그림이 화산재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뚜렷하다. 옷걸이와 조그만 돌 침대 하나씩 달랑 있는 작은 방들이 쭉 붙어있다. 자연이, 신이, 징벌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공중목욕탕이던 곳은 그래도 남탕 여탕이 따로 있다.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수놈인지 남탕에 버젓이 들어 누워 낮잠삼매경에 빠졌다. 끔찍한 비극의 징벌장소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지나다녀도 태평성대다. 여탕엔 조각품의 장식도 있고 벽엔 고구려고분벽화마냥 희미한 그림도 있다. 천장은 둥글게 돔형으로 자연광흡수다. 위에 맺힌 수증기와 물방울이 고여 아래로 흘러내리게끔 벽면에 홈을 파놓았다. 대리석 욕조에다 사우나실과 냉탕도 구비돼있다. 요즘 흔히 정원에 구비하는 새들의 물그릇 모양 같은 원형분수대는 찬물사용용도란다. 당시의 목욕탕치곤 꽤나 호화로웠다는 게 종합적으로 설명된다.
내 눈에 인상적인 건 상수도시설이다. 작은 돌을 차곡차곡 네모난 형으로 쌓아올려 우물 같은 물 확을 만들고, 한쪽엔 수직으로 세운 큰 돌에다 부조로 얼굴을 새겨놨다. 그런데 네모돌이고 크기는 작아도 얼굴은 영락없는 ‘진실의 입’ 얼굴이다. 게다가 입에 수도꼭지를 달아 놓았으니 예술적인 재치에 절로 웃음이 난다. 물이 넘치기 전에 흘러나가는 방편으로 골도 마련해 놓았다. 옛날 한국에서 우물을 사용하던 시절이 되우 그리워진다.
상설원형경기장으로 노예검투사들의 대결장이었다는 곳은 그냥 황토 운동장이다. 2만 명 수용 규모였다면 꽤 큰 경기장이었을 텐데, 들꽃만 무성하다. 하릴없는 엘파소라는 초록빛 도마뱀만 분주히 들락거렸다. 나야 원죄가 없으니 알바 없다는 듯이. 이 모든 게 약 사분의 일 정도만 발굴된 상태라는데, 끔찍하기 짝이 없어 괜히 봤다 싶고 마음만 끝없이 우울하다. 자연의 두려움이 새삼 일깨워져 소름이 돋는다. 자연은 대가없이 무조건 베풀고, 한없이 따뜻하고 끝없이 너그러운 듯해도, 한 번 화나면 이렇게 무섭다. 그 무엇도 무소불위의 자연과 대적해선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이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가혹했다싶다. 불과 몇 년 전에도 베스비오산이 폭발했다는 신문기사가 났었다. 진행형이라 앞으로도 언제 또 대폭발할지 모른다는 암시의 신호겠다. 작금의 지구의 현실이, ‘불편한 진실들’이 우려된다. 인간은 늘 자연을 경외하고, 자연 앞에 겸손히 사는 게, 자연을 달래며 ‘참되게’ 사는 걸 텐데...
무거운 마음으로 얼이 빠져 걷는데, 마을은 재앙유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모르쇠인양 꽃들로 화사하다. 소철과 고무나무들이 상당한 거목이라 고무나무의 낙엽들이 길을 덮었다. 선인장들도 무척 많아 내가 살았던 호주 퍼스의 아열대 풍광과 딱 맞아떨어진다. 햇살과 꽃까지 비슷하다. 보라색 나팔꽃들도 잎과 꽃잎이 아주 크고 야생 메꽃마냥 공터에 여기저기 만개했다. 레몬나무엔 노란 레몬이 덩이덩이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참담한 현장의 존재가 바로 근방에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하도 극과 극의 세계라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듯 혼란스럽다. 지옥과 천당의 차이가 이럴까? 아니 내가 좀 전에 다녀온 곳은 전생이었나? 여하간 폼페이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런 곳이다.
조금 가니 기차역이다. 일종의 폼페이 마을기차다. 기차와 역사의 담에 그려진 낙서 그래피티가 뉴욕을 연상시켜줌과 동시에, 퍼뜩 9,11사태가 머리를 친다. 21세기 인류문명을 시험한 천인 공로할 전대미문의 대참사의 그날, 그 현장은 폼페이발굴현장과 진배없지 않았을까. 천우신조 목숨을 건졌거나, 혼이 나간 사람들은, 콘크리트 재를 뽀얗게 뒤집어 쓴 유령들과 진배없었다. 필사적인 지옥탈출과 방불했던 그날의 참극은 폼페이와 비슷한 예가 아니었을까. 차이가 있다면 9,11사태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참극이고, 폼페이는 인간이 어찌해볼 수없는 자연재앙이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랬는데 지금 기차 창으로 보이는 경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 싶게 평화롭기 짝이 없다. 그런 모든 처참한 일들은 과연 ‘과거일 뿐’ 하고 말면 될 일일까... 폼페이 시민들, 뉴욕시민들, 아니 세계 모든 인간들은, 그렇게 망각하기 마련이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저 죽은 사람만 억울하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현세에 더 두려워하고 통찰해야할 것은, 어쩜 자연이 아닌 인간이겠기에...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