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대 대선 슬로건 중 가장 원색적인 것은 “엄마, 엄마, 우리 아빤 어디 있어요?(Ma, Ma, where’s my Pa?)”일 것이다. 1884년 민주당 후보 그로버 클리블랜드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을 빗댄 상대진영의 구호였다. 별 효과가 없었던지 클리브랜드는 당선되었고 민주당 지지 신문들은 “백악관에 갔단다, 하,하,하!(Gone to White House, Ha, Ha, Ha!)”라는 제목을 달아 보복했다.
1952년 아이젠하워의 “난 아이크가 좋아(I like Ike)”와 4년 후 재선 때 “난 아직도 아이크가 좋아(I still like Ike)”, 1992년 무소속으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던 로스 페로의 “로스를 보스로(Ross for Boss)” 등은 단순하고 경쾌한 운율로 기억하기 좋은 슬로건으로 꼽힌다.
92년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와 함께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대선 슬로건은 84년 재선에 나선 레이건의 “미국의 아침(Morning in America)”
이다. 그해 5월에 첫 방영되었다가 반응이 너무 좋아 가을부터 재방영된 TV 광고의 오프닝 멘트 “다시 미국의 아침입니다”에서 따온 구절로 광고는 동트는 새벽, 성조기, 농촌과 교회, 활기차게 출근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통해 레이건 통치하에 호전된 경제, 되찾은 미국의 자신감, 낙관적 분위기를 보여주며 왜 암울했던 민주당 시절로 돌아가길 원하겠는가를 반문한다. 밝은 내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미국의 아침’은 압도적 레이건 재선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슬로건이라면 오바마도 빠지지 않는다. 4년 전 ‘희망’과 ‘변화
’를 기치로 내세우며 미 전국을 흔들었던 “Yes, we can”은 선거 슬로건을 넘어 한 시대를 상징하는 신드롬의 수준이었다. 구름 위의 캠페인에서 ‘워싱턴의 정치’라는 속세에 던져져 3년 반을 고전하다 이제 잿빛 머리로 다시 표밭으로 돌아온 오바마 진영의 재선 슬로건은 “앞으로(Forward)”
다.
무슨 뜻이지? ‘포워드’란 제목의 7분짜리 동영상을 보면 감이 오긴 한다.
2008년 부시가 넘겨준 경제위기를 딛고 공화당의 방해와 비협조를 극복하며 오바마가 이루어낸 업적들이 소개된다 : 420만개 일자리, 헬스케어 개혁에서 금융규제, 자동차산업 구제, 이라크전 종식과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 이르기까지…그리고 호소한다 : 우린 올바른 길로 가는 중이다, 경제정책은 효과를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더 잘 살게 되는 것이다,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여러분의 지지가 있다면 우린 미국을 뒤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이끌어 갈 것이다…
시들해진 표밭의 열기를 재점화 시킬 목적으로 택한 슬로건이라는데 지키지 못한 약속, 더 많은 인내를 전제하고 있어서인지 아직은 크게 어필하지도, 풀뿌리 동원에 별 효과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 반갑지 않게 조크의 대상으로는 인기가 높다.
“오바마에겐 좋은 메시지이지요, ‘앞으로’는. 유권자에게 ‘내가 했던 약속들을 뒤돌아 보지말라’고 할 수 있으니”라고 제이 레노는 심야코미디에서 꼬집었고 “오바마 정부에서 ‘앞으로’ 나간 것은 5조 달러로 치솟은 국가부채뿐”이라고 보수진영 수퍼팩은 ‘뒤로(Backward)’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제작해 조롱했으며 뉴트 깅리치는 시사토크쇼에 나와 경제도, 임금도 곤두박질치게 한 오바마의 슬로건은 ‘앞으로’가 아닌 ‘아래로(Downward)’가 훨씬 어울린다고 야유했다.
‘현직’ 오바마의 재선 캠페인 상황은 쉽지가 않다. 물론 오바마진영의 자신감은 건재하다. 롬니는 여전히 흠집 많은 허약한 후보이고 선거인단 확보도 예측 가능한 217명 대 206명으로 오바마가 유리한 출발점에서 시작된다. 진짜 싸움은 2008년 오바마가 휩쓸었던 9개 경합주 115명 선거인단에 달려있다. 오바마는 이중 최소 53명만 더 얻으면 승리한다.
그러나 표밭엔 희망 대신 실망이 덮여있고 경합지의 막상막하 지지율은 경제지표 하나에도 뒤집힐 만큼 불안정하다. 롬니의 수백수천만 달러 수퍼팩이 어떤 힘을 발휘할 지도 미지수다. 이번 대선은 수퍼팩의 위력을 가늠 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지난 주말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위한 공식 출정식을 가졌다. 아니, 수백만 달러 모금, 경합지역 순회유세와 스피치를 계속해온 게 벌써 몇 달인데! 표밭의 열정을 되살리는 계기를 잡기 위해서일 것이다. 롬니를 향한 직격탄으로 포문을 열었다. 미국을 어두운 과거로 되돌리지 못하도록 “롬니와 공화당을 막아라”가 주제다. 대기업의 편, 부유층의 편인 그들이 집권할 경우 중산층에 가해질 타격을 경고하며 2008년 ‘희망과 변화’에 더해 이번엔 ‘공포’까지 동원한 것이다.
신중하고 이성적인 법학자 오바마로서는 상당히 터프한 ‘겁주기’였으나 민주당 전략가들은 그 정도로는 안 된다고 닦달한다.
“감당 힘든 의료비용, 치솟는 대학 학비, 침체된 임금…매일 이런 악조건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보통 사람들”처럼 민주당도, 대통령도 경제성장 정책을 반대하는 공화당의 책임을 묻고 롬니의 스위스 은행구좌를 맹렬하게 공박하며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패배하고 말 것”이라고 클린턴의 선거 브레인이었던 제임스 카빌은 경고한다.
치열한 공격만으로도 부족하다. 롬니는 오하이오 한 신문에 실린 공개서한을 통해 오바마에게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일자리는 어디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답을 줄 수 있어야 오바마는 ‘뒤로’나 ‘아래로’ 밀리지 않고 4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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