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개 섬들이 바다 리듬에 부대끼는 ‘물의 도시’
운하에 걸린 리알토 다리. 베니스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꼽힌다.
드디어 카사노바의 고향이라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다. 본토와 연결된 길고 긴 자유의 다리 ‘베니스 다리’를 건넌다. 주변의 망망한 아드리해의 물이 계속 무릎밖에 안 오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탓에 갯벌이 끝 간 데 없단다. 그 뻘 밑 2m아래가 진흙층인 걸 발견하고는 생나무를 촘촘히 박고 널판, 벽돌, 자갈을 깔아 수상도시를 만들었단다. 앞에 3개의 섬이 방파제역할을 해준 천혜의 조건도 한몫했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버스는 외곽의 지정된 장소에 주차했다. 베니스에선 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도 통행금지다. 118개의 섬과 섬 사이를 188개 운하를 만들어 배로만 통행이 가능한 운하의 도시니까. 수상버스라는 조그만 연락선을 타고 파도 없는 잔잔한 바다를 달렸다. 주변의 섬과 건물들이 그대로 한 폭의 옛 그림이다. 환상이란 단어는 이런 때 쓰는 거겠지. 앞과 뒤가 뾰족한 검은 색의 곤돌라들이 우비를 뒤집어 쓴 채 정박해있다. ‘흔들리다’라는 뜻의 이름처럼 서로 몸을 부대끼며 바다의 리듬에 흔들거리고 있다. 비행기요금 다음으로 비쌀 거라는 곤돌라의 요금임에도, 우중이라 취소되니 아쉽다.
조금 가니 바다를 향한 소광장이 나왔다. 입구엔 두 개의 큰 탑 위에 베니스의 수호신인 금색의 달개달린 사자상과 성인의 동상이 있다. 그 소광장이 왼쪽으로 ㄷ자 형의 큰 광장과 연결돼있다. 큰 광장에는 마가복음을 쓴 산 마르코의 유체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직선적인 첨탑이 있는 고딕양식인데 역시 금색으로 단장했다. 꼭대기에 말 청동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따로 전시돼있는데, 원래 말의 눈인 사파이어는 실종됐단다. 보석이 아니었다면 말은 눈을 잃지 않아도 될 텐데, 그저 인간의 탐욕이 문제다.
예전엔 베니스공화국 청사였지만 지금은 박물관인 ‘두칼레 궁전<황금의 궁전>’이 성당부속건물인양 붙어있다. 14세기에 지어진 건축인데, 외벽을 흰 색과 분홍대리석의 가하학적인 문양으로 장식하고, 흰 기둥과 아치로 된 회랑이 멋지다. 동방 비잔틴의 영향으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특색 있는 4층 건물이다. 자유시간이기에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이라고 했다는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큰 광장은 소광장의 입구만 빼고 4면이 성당, 궁전, 상가건물들로 둘러싸인 셈이다. 쭉 이어진 상가들도 하얀 회랑을 끼고 있어 성당하고 궁전과 잘 어울린다. 단 하나 심히 눈에 거슬리는 건, 광장 끝 상가건물 머리에 걸린 어마어마한 광고판이다. 과거의 시간에 취해 있다가 옷, 담배, 화장품 광고판들을 보는 순간, 화들짝 현실로 돌아오게끔 만든다.
우리 5명은 유서 깊은 카페 훌로리(Florian)을 들여다보았다. 무척 고급스런 분위기에 사람들도 많아 선뜻 들어가게 안 되는 곳이다. 분위기 맛보는 값치곤 커피 값이 상당히 무거운 편이었다. 바그너를 위시해 모차르트, 괴테, 릴케, 스탕달 등 기라성 같은 거장들이 애용했다니, 그들의 기와 숨결을 접해본 가치로 따지면, 엄청 가벼운가? 산 마르크 선착장에서 곤돌라 대신 바프레트 라는 수상택시를 탔다. 분명 표지판엔 버스와 택시라고 써있지만 배를 의미한다. 수상택시는 선실에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모터보트 다. 이 배로 3800m 길이인 S자 모양의 대 운하를 지나고,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연결된 작은 운하는 곤돌라가 헤집고 다닌단다.
운하초입 왼쪽에 산타마리델리 스카치
성당외양이 심상치 않다. 하얀 기둥과 석상들이 있는 건물은 조그만 섬에 홀로 떠있는 사원이다. 중심에 푸른색 큰 돔과 양옆의 작은 돔이 하얀 대리석 건물과 어우러져 말할 수 없이 산뜻하며 우아하다. 예전에 베니스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사망한 후, 흑사병 퇴치감사차 지은 성당이다. 그 앞으로 도시를 가르는 대운하가 흐르고, 조금 앞에 운하 첫 번째 다리인 아치형의 스칼치 다리도 있어 주위 정경이 아주 낭만적이다.
큰 운하 양 쪽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3, 4층인데 골목의 수로위로 빨래들을 널었다. 문짝들은 뒤틀렸거나 담벼락은 금이 갔고 벽돌들은 떨어져나갔다. 군데군데 시멘트땜질은 얼룩으로 남아 남루한 인상만 보탠다. 곤돌라길인 꼬부랑 골목길들은 말이 수로지 좁은 도랑이고, 삐거덕 거리는 집들은 도랑에 있는 달동네 이른바 물동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서울의 달동네’라고 말한 어느 서양 건축학자의 개성적인 지적이 무리라 여겼었다. 그런데 여기 달동네격인 물동네 삶의 모습을 보니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물동네지만 예쁜 덧문들이 오밀조밀 달린 창가마다, 난간에 홈을 파서 장식한 베란다마다, 꽃들의 전성시대다. 낡은 옷에 액세서리로 개성을 살린 격임에도, 튀지 않고 아기자기해 절로 미소가 피어나게 만든다. 물위에서 삶의 시간들이 피워낸 가장 따뜻한 형상의 꽃들이다. 그러니 베니스엔 ‘엄청 낡지 않은 집도 없지만 엄청 예쁘지 않은 집도 없다’는 말이 회자되나보다. 마크 트웨인마저 ‘고색창연한 집들이 모인 베니스는 완벽했다’고 찬탄했을까.
골목골목에 120개의 작은 섬을 이은 그물망의 수로들을 옆에서 흘끗거리기만 하니 곤돌라 생각이 더 간절하다. 이런 말도 있다. 프랑스어는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영어는 비즈니스를 위해서, 이탈리어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런데 하나같이 다 테너가수라는 곤돌리에의 명창도 못 들었으니 말이다. 베니스의 랜드 마크마냥 대표사진모델인 리알토다리가 나타났다. 다리 가운데 난간은 올라오고 양쪽 아래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다리다. 하얀 난간 위로 아치들이 연달아있다. 아치위로 온실마냥 둥글게 덮개가 씌어있는데, 가운데 부분의 아치는 구별되게 크고 그 위가 지붕형상이다. 대운하를 건너는 4개의 다리중 제일 멋진 다리라는 타이틀을 딸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저런 묘한 매력을 갖춘 수상도시에 반해,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는 ‘결혼행진곡’을 작곡한 바그너의 심정도 가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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