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들어서자마자 연방상원은 ‘버핏세’를 죽여 버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추진해온 이 부자 증세안은 16일 표결에서 51 대 45로 부결되었다. 과반수 찬성은 넘었지만 공화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막아낼 수 있는 60표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 연방하원은 중소기업의 법인세 20% 감면안을 표결에 부친다. 하원에선 공화당의 일사불란 단합으로 통과되겠지만 민주당이 잡고 있는 상원으로 보내지면 감세안 역시 즉각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다.
서민에겐 등골 휘는 세금보고 마감일을 넘기느라 미국의 납세자들이 부산했던 이번 주, 워싱턴에서도 본격적인 세금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양당 세법개혁안의 연방의회 내 운명은 별 뉴스조차 못 된다. 부자 증세안의 지나간 죽음도, 기업 감세안의 다가올 죽음도 이미 예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표결은 강행한다. 앞으로 6개월 표밭에서 전개될 세금전쟁으로 들어가는 서막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세금’은 공화당의 이슈다. 공화당은 과거 세금논쟁에서 거의 언제나 승리했다. 단순명료한 메시지가 강하게 어필했다 : “세금 올리지 말라!” 돈 쓸 곳 많은 큰 정부 지향의 민주당은 증세의 복합적 당위성을 설득하느라 늘 애를 먹었다. 그러나 금년엔 “세금논쟁의 다이내믹이 달라졌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한다. “올리자, 내리자”에서 “공정한가, 아닌가”로 핵심쟁점이 바뀐 것이다. 오바마와 민주당이 금년 표밭의 세금 이슈는 ‘우리 것’이라고 자신하는 근거다.
똑같이 부결되었어도 대선이슈로 한층 탄력 받을 쟁점은 공화당의 중소기업 감세보다는 민주당의 버핏세다. 연소득 100만 달러이상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최소 30%로 올리는 내용으로 지난여름 비서보다 낮은 세율 적용받는 자신을 포함한 부유층에 대한 증세 필요성을 공론화시킨 억만장자 워렌 버핏의 이름을 얹은 부자 증세안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오바마 팀이 재선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버핏세는 상원표결 전부터 이미 치열한 공방에 휘말려 왔다.
공화당은 ‘정치적 술책’이라고 비난하고 민주당은 공정과세를 지향하는 가장 기본적 ‘상식’이라고 강조한다.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의 로리 쿠퍼는 ‘폴리티코’의 토론광장에서 버핏세의 허점과 오바마의 약점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
“상위 1%의 부유층은 이미 연방소득세의 38%를 부담하고 있다. 버핏세는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적자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미국의 적자는 매년 1조달러씩 늘어가는데 버핏세로 예상되는 세수입은 향후 10년간 470억달러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실패한 경제정책, 실용적 대안 부재에 대한 심판을 피하려는 선거 전략일 뿐이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미국을 분열시키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 지금 워싱턴엔 돈이 더 필요한 게 아니다. 리더십이 필요하다”
진보성향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사벨 소힐은 버핏세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
“버핏세만으로 적자해소는 힘들다. 더 공정하고, 더 간단하고, 더 효율적인 포괄적 세제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이 실현될 때까지 버핏세는 ‘희생부담’이라는 이슈를 전국적 어젠다로 부각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방법이 될 수 있다. 적자를 해소하고 세제개혁을 이루는 것은 방대한 프로젝트다. 그러나 대대적 개혁도 어디에선가 첫 걸음을 내딛는 출발은 해야한다. 미국의 소득불균형이 사상 최고수준에 오른 지금, 수퍼부자에게 세금을 인상하는 버핏세는 그 좋은 출발점이다”
현재 미국의 극심한 소득불균형을 해결하려면 부유층의 최고 소득세율을 50%, 아니 “70%, 혹은 9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유명한 경제학자 토머스 피케티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극도로 비정상적 수준의 불평등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미국은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게 과격하다고 생각한다. 난 미국이 불평등을 참고 있는 정도가 과격하다고 생각한다”
버핏세가 적자해소에도, 소득불균형 좁히기에도 충분한 정책이 못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오바마진영도 인정한다. 그러나 캠페인 테마로는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금년 공화당 대선후보는 ‘세금 적게 내는’ 억만장자 미트 롬니가 아닌가…
경제 전문가들은 부자증세도, 중소기업 감세도 큰 효과 없다며 뜨악한 반응이지만 표밭의 세금전쟁은 양당의 이념이 맞부딪치는 상반된 경제철학의 한판승부로 뜨겁게 가열될 것이다.
표밭의 세금전쟁을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공정과세 실현을 위해 ‘부유층 대변자’가 아닌 ‘중산층 수호자’를 선택할 기회로 삼을 것인지, 공화당이 원하는 대로 ‘경제정책 실패한 오바마’에 대한 심판으로 볼 것인지는 유권자 각자에 달렸다.
부자증세는 어느 시대, 어느 표밭에서도 유권자의 공감을 부르는 이슈다. 지금 당장의 여론도 버핏세 지지가 압도적이다. 갤럽조사에선 60%가, CNN조사에선 72%가 지지를 표했다. 공화당 응답자의 지지도 50%를 넘어섰다. 학자금 대출이나 메디케이드 지원이 줄어드는 정부지출 삭감엔 주저하는 여론도 부자증세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 타격을 실감할 수 없어서다. 100만 달러 연소득? 대부분 미국인들에겐 꿈조차 꾸지 못하는 액수이니까.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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