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한편의 드라마였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작년 10월 안철수 돌풍을 등에 업고 그 전까지 지지율 5%대에 불과하던 박원순이 여유 있게 서울 시장에 당선되자 야권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내년 총선은 해보나 마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명박 측근의 온갖 비리가 쏟아져 나오는데 야권은 민주 통합당과 통합 진보당으로 뭉치고 거기다 야권 연대까지 이뤄내자 ‘여당은 100석 건지면 다행’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4.11 총선 결과는 새누리 단독 과반 달성이라는 기적이었다. 올 초까지도 민주당 단독 과반도 가능하고 못해도 제1당에 진보당까지 합치면 과반 획득은 ‘떼어놓은 당상’으로 여기던 야권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 선거는 여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야당의 참패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민주당은 바닥에 떨어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를 물고 늘어져 정권 심판론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자신이 추진해 오던 정책을 스스로 뒤집는데 열심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한미 FTA와 역시 노무현정부가 추진하던 제주 강정 마을 해군기지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온 공천 잡음과 경선 부정, 그리고 선거 막판에 터진 ‘김용민 막말’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놨다. 김용민이 인터넷 방송에서 쏟아낸 저질 언어의 수준은 국민의 대표는커녕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기에도 어려울 정도였다. 1,000만 청취자를 자랑하는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이자 PD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검증 한 번 하지 않고 그에게 공천을 준 한명숙은 뒤늦게 제발 사퇴해 달라고 애원했으나 그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저질 후보에게 공천을 주고 아무런 통제도 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무력한 모습을 본 유권자들은 ‘이런 당에 차기 정권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결과 4.11 총선 참패라는 벌을 받은 것이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던 김용민은 선거에서 지고 말았지만 진 게 뉴스가 아니라 그런 인간이 지역 주민 44%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번 선거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 사람은 김용민만은 아니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방방 뜨던 ‘공중부양’ 강기갑, 자신이 장관으로 있던 정부가 체결한 한미 FTA를 ‘매국’이라 부르며 “그 때는 몰라서 그랬다”던 정동영, 국회의사당에서 최루탄을 날린 김선동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하던 이정희, “당한 만큼 되돌려 주겠다”던 ‘한풀이 정치의 대가’ 문성근, ‘친노의 적자’로 유리한 곳만 골라가다 망한 유시민 등등이 모두 낙선하거나 사퇴했다.
인천 공항에서 서울 시내까지 택시를 몰며 사는 한 기사는 타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카드 결제기를 가리키며 “이것은 이명박이 서울 시장으로 있을 때 모든 택시에 강제로 달게 한 것”이라며 “이 기계 제조는 모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데 그 주인이 모두 이명박 친인척”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이 지금 돈을 모두 필리핀으로 빼돌리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과 필리핀 사이에 범인 인도협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정서가 한국 서민들 사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정치를 잘못 했으면 이런 소리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는가.
이런 분위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기적이다. 이 택시 기사는 그 이유도 말해준다. “공천하는 것 보세요. 박근혜가 훨씬 잘 합니다. 민주당 똑 같은 놈들이에요. 박근혜가 잡으면 잘 할 겁니다.” 총선 결과는 이런 생각을 가진 국민이 이 기사 하나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박근혜 밖에는 없었다. 거기다 민주당의 우왕좌왕이 여당을 도왔고 마지막으로 ‘나꼼수’의 김용민이 자기들 좋아하는 용어로 ‘그레이트 셀프 울트라 빅 엿’을 날렸다.
4.11 총선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도 없는 후보는 국회에 들어설 수 없으며 그런 인간을 내세운 정당은 패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가 아직 희망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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