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솔린 값에 대해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별로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도 치솟는 개솔린 값에 대한 소비자의 고통은 고스란히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이번 주 초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각각 발표한 두개의 여론조사 결과가 같은 분위기를 말해준다. 포스트 조사에선 65%가 오바마의 유가정책에 불신을 표했고 타임스 조사에선 유가안정을 위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믿는 응답자가 54%나 되었다. 조금씩 밝아지는 경제지표와 공화경선의 이전투구로 상승세를 보이던 오바마 국정지지율도 한 달 만에 쑥 내려앉았다.
한 달간 아침저녁으로 뛰어오르다 지난 한 주 주춤했던 개솔린 가격은 주말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며 이번 주 들어 전국 평균 갤런당 3.80달러를 기록했다. 4.376달러로 올라간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4개주에선 5달러를 우려하는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엊그제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켄 살라자 내무장관은 “미국의 개솔린 가격은 국제시장에서 정해진다.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개솔린과 석유의 가격은 대통령도, 의회도 통제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서 전략자문가 폴 블레드소 역시 “정치가의 요술지팡이로 하루 9,000만 배럴 규모의 국제원유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개솔린 가격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에너지정보국에 의하면 현재 미국의 갤런당 개솔린 값 중 75%는 원유 값이다. 거기에 세금 12%, 정유 6%, 배급과 마케팅이 6%로 더해진다. 석유생산·소비습관·자동차디자인이라는 기본 요소에 국제정세와 자연재해 등의 여파가 더해져 수요공급의 균형이 흔들리면 가격이 올라간다.
지난 한해 수요는 신흥부국 중국과 인도에서만 증가한 게 아니다. 쓰나미와 대지진 이후 전국의 핵발전소를 모두 잠정폐쇄한 일본의 수요도 하루 32만 배럴이 더 늘어났다. 반대로 내전 중인 수단·예멘·시리아·리비아와 이란의 정세불안에 더해 북해 유전 관리문제로 노르웨이와 영국의 산유량까지 감소, 원유공급은 더욱 불안해졌다. 이처럼 수요를 줄이는 것도, 공급을 늘이는 것도 미국의 대통령에겐 권한 밖의 사안이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비축해둔 전략유를 방출해 공급을 일시적으로 늘여줄 수 있다. ‘전략유 비축’은 1970년대 OPEC의 오일엠바고 이후 신설된 제도로 멕시코만 인근 거대한 소금동굴에 비상용 원유를 저장해 놓았다. 이미 민주당 일각에선 비축유를 약간 풀어 재선의 발목 잡을 개솔린 값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기는 했다.
그러나 전략유는 국가안보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원유공급 중단 등에 대비해 비축해 놓은 것이다. 비상시도 아닌 요즘 선거용 가격 낮추기로 풀었다간 역풍 맞기 십상이다. 91년 걸프전과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2011년 리비아 내전 때 등 3번 방출한 적이 있었는데 가격인하 효과는 극히 잠정적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만약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으로 원유공급이 중단될 경우 비축유를 방출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 현 미국의 비축량은 이란의 280일간 석유수출량에 해당하는 약 7억 배럴규모로 알려졌다.
고유가가 대통령 탓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정치인은 드물 것이다. 주지사, 연방하원의장, 연방 상원의원 등을 역임한 공화경선 후보들이 모를 리 없지만 “개솔린 값 상승을 초래한 오바마의 에너지 정책 실패”가 공화경선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릭 샌토럼의 승승장구로 입지가 불안해진 깅리치는 개솔린 값을 핵심 이슈로 잡아챘다. 자신이 당선되면 갤런당 2.50달러로 내리겠다고 호언한다. 가능할까. 석유분석가 파델 가이트는 그만큼 하락하려면 현재 배럴당 100달러가 훨씬 넘는 원유가격이 50달러 이하로 먼저 내려가야 한다면서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일축한다.
공화당이 좋아하는 “드릴, 드릴, 드릴”의 시추확대로 국내생산을 늘이거나 캐나다산 원유수송을 위한 키스톤 송유관을 건설하거나 민주당 입맛대로 자동차 연비향상으로 소비를 줄이거나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정책 등은 장기적으로 부분 대책은 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개솔린 값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원유시장의 투기세력 규제도 아직은 탁상공론의 수준이다.
공화후보들을 탓할 것은 없다. 개솔린 가격은 올라갈 때마다 미국대선의 단골 이슈였다. 4년 전 오바마도 그랬다 : “지금 개솔린 값은 3.70달러나 됩니다. 부시대통령 취임 당시보다 2.5배나 올랐습니다” 그러나 1.85달러였던 오바마 취임 당시의 개솔린 값도 지금은 2배 넘게 뛰어 올랐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마찬가지다. 오바마든, 롬니든, 샌토럼이든, 깅리치든 누구에게도 개솔린 값 잡기는 역부족이다.
본질적으로 개솔린 값은 선동적인 선거의 이슈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의 ‘늘어나는 수요와 줄어드는 공급’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개솔린 값의 상승세는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계속될 것이다.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이라는 뜻이다. 석유전문가들이 몇 년째 당부해온 하루 3% 운전량 줄이기를 각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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