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의 한 영어학원.
“마이클 선생님 머리털은 왜 까맣지?”
“생김새는 외국인 맞는데 미국인이 아닌가봐. 중동 출신인가?”
원어민 영어 강사 마이클이 학생들과 첫 대면을 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한국어로 쑥덕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중국 선교지에서 만나 결혼한 조선족 아내 덕분이다.
마이클은 나의 아들과 절친한 고교 동창으로 북한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31세의 미국인 선교사이다. 그는 스페인 혈통의 페루계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채프만 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했고 학창 생활을 통해 한국 친구들과 사귀며 북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북한 선교를 목표로 한국 땅을 밟은 뒤 탈북자 자녀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등 대북 지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유능한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는 미국 내 한인 교회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도 있다.
마이클은 학생들의 쑥덕거림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철없는 나이에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 얻었던 첫 직장에서 5개월 만에 해고 통지를 받았다. 원장은 해고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마이클은 뒤늦게 미국인 동료 교사를 통해 해고에 얽힌 사연을 전해 들었다. 학부모들이 학원원장을 찾아가 백인이 아니란 이유를 들어 그를 교체시켜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조선족 아내와 함께 잠시 미국에 돌아온 마이클은 한국에서 겪은 체험담을 담담히 내게 털어놓았다. 내가 마련한 저녁 식사 초대 자리에서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요즘 한국에서 사셨더라면 민권 투쟁운동을 벌이셨을 것 같은데요. 외모로 판단하는 사회라면 제아무리 실력이 빼어나도 유색인종은 원어민 교사 취업이 어렵겠지요. 미국에서는 차별 같은 거 모르고 살았는데…… ”
인터폴로 현상 수배 중인 강간범, 살인범도 신분을 위조하고 버젓이 영어 강사 노릇을 할 수 있다. 고교 중퇴생도 경력과 학력을 적당히 속이고 교단에 설 수 있다. 단 외모가 번듯한 의심의 여지없는 백인이어야 한다. 교사의 자질, 성품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전과, 가짜 학력도 어물쩍 넘어가는데 감출 수 없는 외모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교사의 자질보다 피부색을 더 중시하는 교육은 어떤 열매를 맺을까? 어떻게 학생, 학부모, 학원원장이 한마음이 되어 반인륜적 범죄행위인 인종차별을 서슴없이 자행할 수가 있을까? 철없는 자녀의 삐뚤어진 생각을 바로 잡아줄 철든 학부모나, 철없는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에 굴하지 않는 철든 학원원장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나? 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이클의 조선족 아내도 조국 땅에서 푸대접과 차별을 감내해야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선족은 중국 땅에서 피눈물 나는 개척사를 통해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지위를 쟁취해낸 소수 민족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런 자부심을 조국 한국은 마구 짓밟아버렸어요. 한국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외국처럼 느껴질 때면 서글퍼집니다.”
자식 같은 마이클 부부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진심으로 나는 이들 부부에게 사과했다.
“일 없어요. 저희에게는 꿈이 있으니까요.”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일 없다’ (‘괜찮다’는 의미의 북한 및 조선족 상용어)며 가라않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마이클 부부의 꿈은 한국이 통일되면 북한에서 거주하며 생지옥을 체험한 북한 주민들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중동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중동을 복음화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중동 사람이나 백인이나 똑같이 사랑해요. 하나님은 색맹이셔서 피부색 몰라요.”
마이클이 더듬더듬 한국어로 말하며 빙긋 웃었다. 미주 한인들도 인종차별에 연루되어 미국 주류언론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피부색을 구별 못하는 색맹이면 좋겠다. 아무쪼록 마이클 부부의 꿈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황시엽
W.A.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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