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신체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기억력이 감퇴하고 반응시간이 길어진다. 불면증과 우울증도 노화의 신호이다. 지난 수십년간 과학자들은 노화의 주범을 잡아내기 위해‘총력 수사’를 펼쳤다. 그 결과 콜레스테롤과 비만, 심장질환과‘앉은뱅이’ 생활습관이 강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 의심을 받는 단골 용의자들이다. 그런데 근년 들어 뜻밖의 공범이 걸려들었다. 바로 노쇠해진 눈이다.
신체의 다른 기관들처럼 눈도 나이를 먹는다. 눈의 수정체가 점진적 황변(yellowing)을 일으키고 조리개 역할을 하는 동공이 축소된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눈의 렌즈가 조금씩 노랗게 변색되고, 안구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동공이 작아진다.
눈은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뇌와의 ‘대화’를 통해 인체의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눈이 노쇠해지면 수정체를 통해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층에 도달하는 빛의 양이 점차 줄어든다. 문제는 이 광수용체 세포층이 빛에 의지해 ‘생체시계’를 조절한다는 점이다.
캔사스대 메디칼 스쿨의 안과학 교수인 패트리샤 터너 박사는 “눈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에야 알려졌다”고 말했다. 터너 박사와 그녀의 남편 마틴 메인스터 박사는 눈과 건강 사이의 영향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이 방면의 ‘파워 커플’이다.
이들에 따르면 생체리듬은 호르몬 분비와 생리주기를 조절해 아침에는 원기를 돋워주고, 저녁에는 휴식 모드로 몸 상태를 돌려준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게 만드는 동력은 빛이다. 생체시계는 눈이 받아들이는 빛의 양에 바탕해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날이 밝으면 코티솔을, 해가 지면 멜라토닌을 분비하도록 뇌에 메시지를 전하는 기막힌 명품시계다.
몸 안에서 작동하는 이 시계가 망가져 생체리듬이 깨질 경우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 불면증이 찾아들고, 심장질환과 암 등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잦은 야근근무를 하게 되면 생체리듬이 헝클어진다. 수시로 밤과 낮을 바꿔 사는 셈이니 빛에 의지해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몸 안의 시계가 정확하게 작동하기 힘들다.
브라운대 연구실에서 눈과 뇌의 ‘교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데이빗 버슨 박사는 “생체시계란 진화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시간기록 장치이지만 전혀 완벽하지 않으며 매일 조정을 해주어야한다”고 말했다.
망막의 광수용체는 햇빛을 흡수해 인체 내부 시계를 관장하는 뇌의 시교차상 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S.C.N.은 저녁이 되면 몸을 휴식 모드로 만들어주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아침에는 하루의 벅찬 일과를 소화할 기력을 충전해 줄 호르몬 코티솔을 분비함으로써 인체를 환경에 적응토록 한다.
멜라토닌은 여러 가지 건강촉진 기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멜라토닌 분비량이 낮다는 것은 S.C.N.이 역기능을 보인다는 신호다. 멜라토닌이 분비량이 부족하면 암, 당뇨병과 심장질환 발병률이 올라간다.
외부의 빛을 받아들여 생체리듬을 일치시키는 눈의 역할은 2002년에서야 분명해졌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의식적 시력(conscious vision)을 제공하는 시세포층(rods and cones)이 눈의 유일한 광수용체로 여겨졌다.
메인스터와 터너 박사 부부는 브리티시 안과학 저널에 게재된 논문에서 45세가 되면 광세포층은 생체 시스템을 충분히 자극하는데 필요한 빛의 50%만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밝혔다. 이 비율은 55세가 되면 37%, 75세가 될 무렵에는 17%로 뚝 떨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눈이 생체시계의 ‘밥’인 빛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니 기능이 감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인병학 전문지인 엑스페리멘탈 제론톨로지 저널에 게재된 최근의 논문은 밝은 빛이 20대 여성의 멜라토닌 분비량을 급속히 억제하는데 비해 50대 여성의 멜라토닌 분비량을 신속히 줄이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젊은 여성의 멜라토닌을 억제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푸른빛이 나이 든 여성에게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의 노화현상이 생체시계의 오작동을 유도한다는 증거다.
아침이 됐는데도 노쇠한 눈이 빛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해 인체의 휴식과 수리를 담당하는 ‘저녁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충분히 억제하지 못하면 잠이 덜 깬 듯한 멍한 느낌이 지속되고 기억이 흐릿해지며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한다.
생체리듬 저널에 발표된 또 한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푸른빛에 노출된 젊은이들은 졸음기가 줄어들고 기분이 개선되며 경계심이 강화된다.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동일한 양의 푸른빛에 노출된 후에도 이런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
이 역시 눈의 노화로 수정체가 누렇게 변하고 동공이 좁아져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필요한 충분한 양의 빛이 인체시계의 태엽에 해당하는 광수용체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증자료는 또 있다. 스웨덴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는 백내장 수술로 흐릿해진 수정체를 깨끗한 인공렌즈로 대체하면 불면증과 낮 시간대의 졸음이 상당부분 해소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다른 연구는 백내장 수술이 반응시간을 단축시키고 암과 심장질환 등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터너 박사는 백내장 수술이 빛의 수용도를 개선, 휴식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 수준을 높여준다는 가설을 머지않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터너 박사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하루 중 상당시간을 인공조명 아래서 보내지만 인공조명은 햇빛에 비해 광도가 1,000배에서 1만배가량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나이가 들수록 가급적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인위적으로 통제된 실내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천연광이 들어오도록 스카이라이트를 설치하고 여러 개의 형광등을 켜놓아 밝은 조명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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