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영업제한·불필요한 자격요건 부과·경쟁 금지…
<프랑크푸르트> 토르스텐 엠멜은 아주 순진한 꽃집 주인의 인상이다. 앞치마를 두른 채 신선한 프리지아 꽃을 다듬고 있는 그는 아주 단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법을 어기기 직전 상황까지 갔다. 그의 죄는 영업시간을 엄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게 앞 보도에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영업을 하다 적발됐다. 그날은 어머니날이었다. 하지만 시 단속관은 이 플래카드를 발견하곤 엠멜에게 일요일에 그렇게 오래 영업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경고했다. 단속관은 일찍 문을 닫든지 아니면 벌금을 내라고 말했다.
산업분야에서 격찬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나 찾아 볼 것 같은 과잉규제와 행정 경화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엠멜은 “특별한 날에는 그처럼 영업시간을 꼼꼼히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해 어머니날만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좋지 않다.
독일은 포르셰와 BMW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제품들은 전 세계의 부유한 사람들이 앞 다투어 가지려 한다. 또 독일이 생산하는 기계류들은 중국에서부터 미시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공장들을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눈부신 수출 뒤에는 독일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의 잠재력까지 좀먹는 어두운 얼굴이 숨어있다.
이 같은 경제는 경쟁으로부터의 보호를 빌미로 과잉 규제되고 있으며 변화를 거부한다. 메르켈 독일총리는 종종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그리스에 대해 좀 더 경쟁력을 갖추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독일 경제 역시 그들 국가와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부 직종에 대한 과잉보호와 새로운 비즈니스보다는 기존 비즈니스에 유리한 조닝법 등이 그것이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OECD의 수석경제학자인 안드레아 뵈르게터는 “독일은 내가 이중 경제라고 부르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대단히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경쟁적인 수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는 진입규제와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서비스 부분이 있다 이들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뵈르게터는 최근 나온 OECD 보고서를 감수했다. 이 보고서는 독일 지도자들에게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해 독일 경제는 그런대로 괜찮은 3% 성장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0.6%, 그리고 내년에는 1.9%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주 나온 한 경제관련 조사 결과도 독일경제가 모멘텀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마케팅 회사가 구매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제조업은 둔화되고 있으며 신규 주문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말 세계 4위 규모인 독일경제는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축소를 보였다. 4분기의 0.2% 하락은 당초 예상보다 그리 나쁘지 않고 이후 독일은 다시 성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독일이 과거처럼 순탄한 성장세로 진입하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독일은 경쟁을 막는 장벽들과 비효율성을 제거할 경우 향후 10년간 10분의1 정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OECD는 전망한다. 이런 성장 잠재력은 이탈리아와 거의 같은 수준이고 스페인보다 높은 것이다. 이런 사실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독일의 국내 경제가 남쪽의 이웃국가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1년 11개월 간 1,450억 유로에 달했던 독일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시멘스와 보쉬, 다이믈러 같은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동시에 독일 소비자들과 비즈니스들이 수입품 사용에 인색한 결과이기도 하다. 독일이 서비스 분야를 활성화 시킨다면 무역적자가 국가부채 위기로 이어진 그리스와 스페인 같은 국가들보부터 물건을 더 많이 들여오게 될 것이며 이것은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독일의 한 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독일이 규제를 풀어 서비스 분야를 강하게 키우면 중국이나 미국 같은 주요 시장의 부침에 크게 요동치는 일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경제가 지나치게 자동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가 더 유연해지면 최소한의 완충지대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기업가 정신을 막는 장벽들은 종종 불분명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막는 부정적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독일정부가 2년 전 국내 운송업을 자율화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도시 간을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 서비스는 아직도 규제되고 있다. 수십년 된 이 규제안은 국영 철도회사인 도이체 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둔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스탄불과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같은 외국도시들까지 버스를 운행하지만 정작 독일 내 다른 도시들 운행은 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이 나올 분위기는 아니다.
독일이 지난 10년 간 여러가지 규제를 철폐하는데 진전을 이뤄왔음은 분명하다. 지난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상점들은 저녁 6시반 만 되면 문을 닫아야 했고 토요일에는 잠깐 문을 열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규정에서 제외된 기차 정거장 내 상점들은 다른 업소들이 문 닫은 시각에 일회용 기저귀 같은 제품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지금은 각 주정부들이 영업시간에 관한 규정을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 결과 주중에는 과거 규제들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하지만 일요일 영업은 대부분의 업소에서 여전히 터부가 되고 있다. 꽃집들과 빵가게는 일요일에 단 몇 시간 문을 열수 있다.
또 바구니 짜는 사람과 바이올린 제작자 등에 요구하던 몇 년간의 자격 요건도 많이 완화됐다. 그러나 집 페인트 칠을 하거나 굴뚝 청소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 수리공 등에 대한 요건은 그대로이다. OECD는 독일 정부에 대해 건축가와 변호사, 그리고 엔지니어들의 경쟁을 막는 광고 및 관련 비용 규제를 완화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2005년 독일은 구직자들이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하도록 하고 기업들은 임시직을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노동규정을 개정했다. 그 결과 독일의 실업률은 지난 2005년 13%에서 금년 1월 7.3%로 급속히 낮아졌다. 독일의 실업률은 2009년 경기침체와 뒤이은 채무 위기 속에서도 낮게 유지됐다.
독일은 수출 경제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지만 경제에 남아있는 결점들을 찾아내 제거하려는 정치적 의지는 약하다. 이것이 계속될 경우 앞으로 수년간 경쟁력에 갭이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독일 정부의 공식적인 자문기관인 독일 경제전문가 위원회는 지난 11월 “노동시장은 인상적으로 진화해 왔지만 노동시장을 한층 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오래된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독일의 생산성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여성노동력의 기술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독일여성들의 근로시간은 OCED 34개국 중 최저수준이다. 자녀 양육 서비스가 부족하고 맞벌이 부부에 대한 높은 세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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