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측면에서 보면 공화당 대선 경선은 일단 성공적이다. 우선 흥미진진하다. 하룻밤 사이 선두로 치솟았던 후보가 다음 순간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벌써 여러 번이고 돈과 섹스 스캔들이 중간중간 섞여 들기도 했다. 죽은 줄 알았던 후보들이 잿더미에서 되살아 나는가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선두주자’는 살아도 산 게 아닌 듯 추락 악몽에 시달리니 호러무비가 따로 없다. 롤러코스터에 탄 듯 스릴도 만점이다.
미트 롬니의 ‘순항’으로 무덤덤히 지나갈 줄 알았던 2월이 깜짝 쇼를 준비하고 있을 줄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퇴압력을 받던 ‘죽은 후보’ 릭 샌토럼의 화려한 부활이다. 7일 실시된 3개주 경선을 싹쓸이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샌토럼의 트리플 경선은 아무도 예측 못한 이변이긴 하지만 승리의 비중은 주별로 약간씩 다르다. 인기투표 성격을 띤 미주리에서의 선전은 얼마쯤 예상된 결과였다. 보수 표를 쪼개 가질 뉴트 깅리치는 투표용지에 이름조차 안 올렸고 롬니 진영도 ‘미인대회’라며 별 관심을 안 쏟았으니까. 그러나 미네소타에서의 압승엔 모두 놀랐고, 롬니의 압승이 점쳐졌던 콜로라도에서의 승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의기충천 샌토럼은 이제 자신은 “롬니 대항마를 넘은 오바마 대항마”라고 선언했지만 아직은 좀 이른 듯하다. 이번 승리는 선두주자 롬니에게 어떤 타격을 주었는가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롬니 진영에선 애써 별것 아니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샌토럼이 싹쓸이한 7일은 선두주자 롬니에겐 가히 ‘굴욕의 날’이다.
미주리 경선이 아무리 대의원 배분 안하는 인기투표라 해도 그렇지 샌토럼 55% 대 롬니 25%, 하위권 후보에게 30포인트 차이로 참패라니 ‘대세론’이 무색해졌다. 미네소타에선 론 폴에게도 뒤진 3위로 처졌다. 2008년 경선에서 자신이 압승을 거둔 곳이며 팀 폴렌티 전 주지사를 비롯해 이곳 명사들의 공개지지를 잔뜩 확보해 놓은 지역인데도 87개 카운티 모두에서 패배했다.
가장 아픈 패배는 콜로라도다. 본선에선 2004년 부시가 승리했다가 2008년 오바마 승리로 바뀌었던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다. 2008년 경선에서 롬니 자신이 60% 압도적 지지로 승리를 거둔 곳이며 모르몬 신자도 많아 여론조사에서 줄곧 롬니가 선두를 기록해 안심했었다.
7일의 이변은 이처럼 롬니가 얼마나 허약한 선두주자인가를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보수진영은 여전히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불과 2년전 전국에 몰아쳤던 티파티 돌풍은 간곳이 없다. 공화표밭은 열기가 없이 시들하다. 경선의 투표율도 영 저조하다. 그의 메시지에 대한 호응도 미지근하고 ‘롬니는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조차 별로 없다.
롬니에겐 ‘호감도 결핍증’ 극복이 아직도 너무 힘겨워 보인다. 지난해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엔 롬니의 사진과 함께 이런 제목이 실렸었다 : “왜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Why don’t they like me?)” 공화당 표밭을 바라보는 롬니의 심정은 지금도 같을 것이다.
롬니 진영의 주장처럼 긴 경선과정에서의 몇 개주 패배는 모든 후보들이 겪어온 일이다. 2008년 존 매케인은 당 후보로 지명되기 전 19개 주 경선에서 패배했고 뉴욕과 캘리포니아, 오하이오 등에서 패배했던 오바마도 대통령이 되었다.
게다가 7일의 이변이 롬니에게 타격만 가한 것은 아니다. 보수후보 단일화에 빨간 등도 켜졌다. 샌토럼의 약진으로 깅리치의 기세가 꺾이면서 ‘반롬니’ 전선의 다툼이 아직 한참 갈 모양이니 롬니에겐 희소식이다.
전당대회까지 가겠다고 다짐한 깅리치는 물론이고 샌토럼에게도 중도하차는 당분간 어림없는 이야기다. 언론에 호통 치는 깅리치 같은 ‘박력’은 없지만 샌토럼은 불륜에서 로비까지 깅리치가 짊어진 ‘흠집’ 또한 갖지 않아 발길이 홀가분하다. 자금력과 조직이 약하지만 그건 깅리치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깅리치나 롬니와는 달리 사람들은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특히 ‘부자’ 롬니와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백인 근로계층과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전국지지도는 아직 4위이지만 상승세를 잡은 지금 물러설 이유가 없다.
경선은 당분간 휴지기에 들어간다. 다음 일정은 28일의 애리조나와 미시간이다. 곧이어 10개주에서 격돌하는 3월6일 수퍼 화요일이 다가온다.
‘남부 평정’을 노리는 뉴트의 순간이 될지, 샌토럼 돌풍이 1회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보수의 축제가 될지, 롬니의 대세론을 확실하게 못 박는 계기가 될지…이젠 아무도 예상을 하려하지 않는다. 선거의 결과를 정하는 것은 전문가의 분석이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이라는 걸 7일의 이변에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열을 재정비하여 대공세에 나서야할 롬니에게 앞으로 몇 주는 특히 중요한 기간이다. 샌토럼의 압승 충격은 차츰 퇴색하겠지만 롬니 자신의 고향인 미시간도, 여론조사 지지도 높은 애리조나도 이젠 안심할 처지가 못 된다. 7일의 굴욕이 그에게 준 교훈이다.
박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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