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머물면서 하얀 눈이 쌓인 들길을 달려 비무장지대에 가보았다. 비무장지대에서 설치 작업을 하는 프랑스의 장 미셸이라는 조각가의 설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비무장지대에 설치작업을 하도록 하고 있는 ‘국제평화 레지던시’라는 그룹의 초청으로 한달 동안 작업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커다란 손에 철조망이 매달려 있는, 철선으로 만들어져 내부공간이 열려 있는 철제 조각이 설치 되었는데 총을 들고 지키는 최전방의 군인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장 미셸은 책장이 설치된 조각을 세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책을 빌리거나 기부하도록 하는, 시민이 참여하는 설치 조각을 툴르즈, 마르세이유의 거리에 설치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곳곳에 국군장병들이 지나가고 산천은 평화로웠다. 지척에 북한이 있고 거리상으로 그토록 가까이 보이는데 오고 갈수 없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계에 남은 마지막 장벽이자 냉전의 산물인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1910년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연합국에게 항복하면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미국, 북쪽에는 소련이 점령한데서 비롯되었다.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서쪽으로는 강화도, 동쪽으로는 고성군 북단의 명호리를 잇는 25킬로미터의 휴전선 및 비무장지대가 새로 그어졌다.
이 휴전선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고 상징적으로 명명된 다리를 가로질러 존재하고 있다. 임진강이 흐르는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민간의 출입이 금지된 영역의 특성상 희귀 동식물의 안전한 피난처로 야생의 자연을 복원하고 생성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의 순결한 자연상태에 비해, 분단, 이산가족, 망향, 전쟁의 고통, 전쟁의 재발, 핵전쟁 발발의 공포감이 내재하는 상황 앞에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지상과제인 통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를 숙고해본다.
북한이라는 형제가 남한이라는 형제와는 숙적이 되고 중국과 친한 것에 대한 일종의 질투심 같은 불편한 불안을 느끼며 혹 중국이 북한이라는 형제를 삼켜버릴 까봐 걱정이 되는데도 형제와의 대화조차 쉽지 않은 이 상황이 멀지 않은 미래의 역사에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국가 대 국가의 통일이 아닐지라도 우선은 자꾸 만나고 만나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민간 경제, 문화차원의 만남이라도 더 많이 자주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분단, 단절이라는 비극적 상징성으로 인해 ‘베를린에서 DMZ까지’, ‘DMZ 대북심리전 장비전시’ 등 DMZ의 상징적 의미와 관련된 전시가 개최되어왔다. ‘국제평화 레지던시’라는 그룹은 전 세계의 예술가를 초청하여 비무장지대에 살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의 단절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탐구하게 한다. 한반도 분단에 내재된 정치적, 군사적 비극을 인간적, 감성적으로,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군인의 영혼을 시적, 문화적인 각도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통일이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일어난다 할지라도 예술작업은 보다 근원적 마음의 차원에서 만남을 시도하여 군사적 대립의 무장해제를 시도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북한 체제하에서 강요당한 예술가들의 침묵과 숙청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살상과 숙청, 망향과 탈북, 세뇌로 점철된 민족의 비극을 정치적 상상력과 하나됨의 염원으로 시도하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꿈이 현실이 되는 통일의 과정은 예술이 지향하는 만남과 자유의 이상을 필요로 한다. 꿈은 불안한 현실의 산물이고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꿈을 꾸어야만 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고 민족의 숙명이다.
이민호의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사진>라는 제목의 작업은 DMZ와 관련된 전시 카탈로그에서 발견한 작업인데 피부로 직접 인식하지 못하지만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분단의 상황을 표현한 작업이다.
통일의 여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의지를 지니고 북한의 형제들과 함께 저 만주벌판을 달리던 조상들의 기상을 다시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처참히 세상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고난과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으나 세상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들의 실의에 고개 숙여 절한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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