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어느 모로 보아도 뉴트 깅리치에겐 친절한 달이 아니다.
동부지역에서 초기 4개 경선을 치른 공화당 대통령 후보선출 콘테스트는 이제 대륙을 횡단해 서부로 건너가면서 본격적 전국 캠페인으로 접어들었다. 4일 네바다에서 서부지역 첫 경선이 실시되는 2월의 일정은 빈손으로 사막을 건너가듯 깅리치에겐 시작부터 고단한 행군이다.
무엇보다 모르몬 밀집지 네바다에서 미트 롬니의 고향인 미시간에 이르기까지 7개 경선지역 대부분이 이미 롬니 강세로 꼽힌다. 롬니가 약간 주춤한 미주리, 깅리치 지지도가 높은 미네소타에선 릭 샌토럼과 론 폴이 각각 눈독을 들이며 집중공세를 펴고 있다. 티파티 입김이 강한 애리조나가 그중 기대를 걸만한데 반이민 성향이 강한 곳이어서 이민강경책을 들고 나온 롬니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게다가 돈과 조직이 부실한 깅리치에게 그동안 최고의 홍보 수단이 되어준 TV중계 공개토론이 앞으로 3주 동안은 열리지 않는다. 오아시스조차 없는 사막이다.
그러나 플로리다 경선에서 롬니가 압승을 거둔 지난 31일 깅리치는 중단 없는 전투 강행을 선언했다. 투표 전부터 결과에 상관없이 8월말 전당대회까지 계속 싸워 “결국 승리할 것”을 거듭 다짐해왔다. 승자에게 건네는 축하인사의 기본 매너조차 생략한 이날 밤 지지자들 앞에서의 스피치도 마치 후보수락 연설처럼 장황하고 강경했다. “46개주가 남았다(46 States to go)”고 쓰인 연단 앞 배너가 전국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깅리치의 급상승으로 패닉상태에 빠진 공화당 지도부의 ‘깅리치 죽이기’ 물밑작전이 성공을 거두었고, 플로리다 지지율 1위를 내주고 정신이 번쩍 든 롬니진영에서 1,5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네거티브 광고 폭격이 눈부신 효과를 거둔 덕분으로 깅리치 돌풍은 불과 열흘 만에 잦아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상 경선은 끝났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확실히 플로리다 압승으로 선두주자 롬니의 입지는 강화되었다. 그동안 손 내밀기를 주저해오던 당 지도부의 롬니 지지도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경기종료는 아니다.
“아직 멀었다”고 호언하는 깅리치에겐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금년 경선의 환경은 예전과 다르다. 후보에 관계없이 장기전을 부추기는 요소가 늘어났다.
우선 많은 주에서 대의원 확보규정이 달라졌다. 주 경선에서 1위한 후보가 그 주의 대의원을 모두 차지하던 종전의 승자독식에서 득표율에 따라 나눠 갖는 분배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선두주자가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를 확보하는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어느 후보도 4월중순 이전에 과반수인 1,144명을 확보하는 것은 힘들다는 게 관계들의 설명이다.
만약 경선이 초접전의 치열한 전투로 계속된다면 전당대회까지 선두주자 롬니가 과반수 대의원 확보를 못 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깅리치는 득표율 배분에 따른 상당수 대의원을 확보한 강력한 2위가 된다. 전당대회 스피치에서 정강채택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파워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극우보수의 반롬니 정서는 아직 건재하다. ‘매서추세츠 중도파’에 맞서는 ‘보수 지도자’를 자처하는 깅리치로선 포기할 이유가 없다. 사막과 골짜기를 헤쳐서라도 전당대회까지의 장기전을 강행할 것이다.
잿빛 2월을 넘어 깅리치가 희망을 거는 것은 장밋빛 3월이다. 특히 3월6일 ‘수퍼 화요일’엔 자신의 텃밭인 조지아를 비롯, 테네시와 오클라호마에서, 그 다음 주엔 앨라배마와 미시시피, 4월초의 텍사스까지 보수지역 남부의 경선이 줄줄이 다가온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모멘텀’을 마련해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깅리치의 전략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가에 있다.
미디어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자금은 바닥나고, 막강조직 롬니의 공격과 당 지도부의 압력은 멈춤 없이 계속되고, 단일화를 위해 양보해야할 샌토럼은 계속 보수표밭의 표를 쪼개 가고…웬만한 후보 같으면 오래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깅리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옥스퍼드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탠리는 “깅리치를 끌고가는 동력은 그의 강한 자아”라고 지적한다.
하긴 작년 5월 경선출마 선언 이후 벌써 두 번이나 도태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한 후보가 깅리치다. 지난여름 캠페인 참모들의 집단사퇴로 조직이 거의 와해되었던 적도 있었고 지난 연말 선두주자로 뛰어올랐다 롬니 수퍼팩의 융단폭격에 곤두박질치며 하락도 했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4위로 추락했다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1위로 치고 오른 불사조인데 “플로리다 패배쯤 왜 극복 못하겠느냐”고 깅리치 참모들은 오히려 반문한다.
68세의 깅리치에겐 중도사퇴할 이유가 없다. 2008년의 롬니나 금년의 팀 폴렌티처럼 차기를 기약할 것도 아니니 잃을 것도 없다. 처음부터 백악관 아닌 ‘자유주의’ 메시지 전달이 목표였던 론 폴 역시 끝까지 갈 것을 다짐한다. 적 많고 흠집 많은 깅리치가 혹 자폭할 경우 반롬니 보수후보로 등극할 ‘기적’을 기다리는 샌토럼도 아직은 한참 강행할 태세다.
…수퍼팩의 무제한 머니파워에 휘둘리며 사상 최악의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치닫고 있는 공화경선은 이래서 당분간은 제동이 걸리지 않을 듯싶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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