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미트 롬니의 스피치도 오바마를 겨냥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를 뽑는 첫 투표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의 승리가 거의 확정되어 가던 3일 한밤중, 지지자들 앞에 선 롬니는 마치 본선 유세에 나선 듯 “나이스 가이”이기는 하지만 “단임으로 끝내야 할 실패한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했다. 눈앞의 라이벌 릭 샌토럼과 론 폴에겐 오히려 선전을 축하했고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 뉴트 깅리치의 도전은 아예 무시했다.
‘명목상의 선두주자’에서 ‘사실상의 당 후보’로 굳어가는 입지를 과시하려는 치밀한 전략의 일부 일 것이다.
정치에선 ‘기대치’가 많은 것을 좌우한다. 4년 전 아이오와에서 1천만 달러를 쏟아 붓고도 마이크 허커비에게 참패했던 당시의 롬니에겐 높은 기대치가 급격한 추락의 요인이었다. 두 번째 도전하는 롬니의 전략은 신중하다. 극우보수 표밭인 아이오와에 대한 기대치를 일부러 낮추고 초반엔 포기한 듯 다음 경선지인 뉴햄프셔에 집중해왔다. 4년 전 50명이었던 스탭을 5명으로 줄였고 TV광고도 상당히 절제했다. 그런데 승리한 것이다. 비록 8표차이로 이겼지만 불리한 지역에서 비교적 값싸게 얻어낸 귀중한 첫 승이다.
이번 코커스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롬니의 승리 가능성”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객관적 후보 요건을 갖춘 깅리치와 릭 페리의 생존 여부였다. 결과는 둘 다 참패, 롬니의 두 강적이 첫 경선에서 추락한 것이다. 롬니에겐 “최후 승자를 예언하지는 못하지만 패자들은 솎아낸다”는 종래 아이오와 코커스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셈이다.
아직 두 후보가 하차한 것은 아니다. 수백만 달러를 들이고도 하위권으로 주저앉은 페리는 텍사스로 귀향하려다가 21일 보수지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프라이머리에 한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다. 압도적 선두주자로 뛰어 올랐다가 롬니 후원단체의 네거티브 광고에 호되게 얻어맞으면서 곤두박질친 깅리치는 ‘롬니 때리기’를 벼르며 끝까지 싸울 태세다. 둘 다 ‘부활’하려면 강력한 동력과 획기적 모멘텀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주 미디어의 스타는 아무도 관심 안 갖던 하위 후보에서 며칠만에 ‘롬니 대항마’로 급부상한 신데렐라, 샌토럼이다. 76세 고령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극단적 자유주의자 론 폴도 3위로 선두권에 포진했다. 무명의 샌토럼과 비주류 폴을 주요 라이벌로 삼아 싸운다? 롬니는 대진 운도 좋은 편이다.
깅리치와 페리가 아닌, 샌토럼과 폴이 선두권으로 부상했다는 것은 롬니에겐 행운이다. 폴과 샌토럼의 후보지명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로선 그렇다. 대선 후보라기보다는 자유주의 메시지 전도사로 자처하는 폴은 스스로도 가능성 제로를 인정할 정도다.
53세 젊은 샌토럼에겐 갈 길이 너무 멀다. 모든 여건 갖춘 롬니에 비해 돈도 조직도 가진 게 없어 험한 장기 경선을 버티어 낼 저력이 있을까, 우선 의심된다. 게다가 아직 검증을 받지 않았다. 불과 며칠만에 급부상하면서 바로 선거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라이벌이나 미디어들이 그의 경력과 자질을 파헤치고 살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르다. 페리와 깅리치, 허만 케인등을 추락시킨 가혹한 검증의 잣대가 그에게도 적용될 테니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마도 몇 주안에 결판날 것이다.
롬니에게도 따 놓은 당상은 물론 아니다. 보수진영의 신뢰 얻기는 여전히 롬니의 최대 과제다. 백악관 탈환을 열렬히 기대하는 핵심 보수진영이 그를 뜨악하게 바라보니 표밭에 열기가 있을 리 없다. 아이오와에서도 결국 지지율 25%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주류미디어의 롬니에 대한 아이오와 평가는 대체로 인색하다.
8표 차이의 신승이어도 승리는 승리다. 막강한 자금력과 탄탄한 조직, 선거경험, 본선 당선가능성에 더해 적수들이 참패한 첫 승을 딛고 뉴햄프셔의 압승 향해 돌격하는 계기까지 잡은 것이다. 한 달 전만해도 위태위태해 보였던 ‘롬니 대세론’이 드디어 날개를 얻은 셈이다. 날개의 역량은 미지수다. 늦여름 전당대회까지 어떤 돌발 변수에도 꺾이지 않고 힘차게 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현재의 여건은 롬니에게 호의적이다. 어제 존 매케인의 지지선언을 시발점으로 공화당 주요인사들의 공개지지가 잇달을 것이다. 등록유권자 1만명의 지지선언을 받아야 하는 버지니아 규정에 의해 버지니아 경선출마 자격을 갖춘 후보도 롬니와 폴 2명뿐이다. 오바마 지지율이 상승세여서 상당수 공화당 유권자들이 ‘할 수 없이’ 롬니를 바라본다.
무엇보다 롬니를 거부하는 보수진영의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롬니는 페리, 깅리치, 샌토럼, 폴이 끝까지 남아 서로 싸우며 보수 표밭을 쪼개 갖기를, 샌토럼은 모두 하차한 후 보수진영이 자기를 중심으로 결집하기를, 지금쯤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선거결과에 베팅하는 인트레이드의 4일 현재 롬니의 지명 가능성은 절대적인 81%다. 이어서 깅리치 6%, 샌토럼 5%의 순이다. 롬니가 강력한 후보여서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다.
인트레이드의 오바마 재선 가능성은 51.3%, 그러나 그건 10개월 뒤, 먼 이야기다. 누가 뭐래도 3일 밤, 롬니는 캠페인 시작이후 가장 단잠을 잘 수 있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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