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들보다는 오바마가 낫지 않을까” - 공화당의 대선경선이 서커스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치닫는 걸 지켜보면서 표밭에 감도는 요즘의 분위기다. ‘그들’이란 서로를 헐뜯는 네거티브 공방전에 돌입한 공화당의 선두주자 뉴트와 미트. 1만 달러 베팅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미트 롬니에겐 좁히기 힘든 거리감을 느끼며, 도덕적 흠집투성이 뉴트 깅리치에겐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도저히 생기지 않아 유권자들은 다시 ‘오바마’를 바라본다.
정치적 기후는 변덕스럽다. 해프닝 하나로도 요동치고 뒤집어지는 선거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직 11개월이나 남은 선거의 결과를 지금은 어느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그동안 유로존의 경제위기가 미국을 다시 침체에 빠트릴 수도 있고, 개솔린 가격이 폭락하면서 서민경제의 숨통을 틔워 줄 수도 있으며, 우선 이슈인 경제문제가 테러 공격이나 국제 위기, 혹은 대선후보의 어이없는 실수에 파묻힐 수도 있으니까.
2012년 대선전 바람의 방향이 겨울에 들어서며 바뀌고 있다. 초가을까지만 해도 장밋빛이었던 공화당의 승리전망이 차츰 퇴색하면서 오바마 재선에 솔솔 훈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엊그제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상경한 오바마 캠페인팀은 13일 첫 정식 브리핑을 갖고 각 주별 선거인단 확보를 통한 5가지 승리전략도 발표했다. 오바마 자신부터 재선이 결코 ‘슬램덩크’가 아닌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참모들은 ‘승리 선언’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무드의 변화는 감지한 듯 캠페인 진영 안팎엔 희망의 빛이 완연하다.
“봄날의 시작인지 지나가는 인디언서머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최근엔 확실히 민주당이 더 좋아 보인다”고 클레어몬트 매키나 대학 잭 피트니 교수도 진단한다.
대충으로도 좋은 징조 몇 가지는 꼽을 수 있다.
우선 공화 경선의 장기화다. 깅리치와 롬니의 대결이 인신공격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둘 다 아직 입지가 불안정해 한참을 끌고 갈 전망인데 경선이 길어질수록 후보들은 극우표밭을 의식, 극단적 보수로 치달을 것이다. 후보가 결정된 후 본선의 무소속 유권자 흡수를 위해 중도로 돌아서기엔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경제지표도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아직 뚜렷한 경기회복 체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실업률도 마침내 9% 벽을 깨고 8.6%로 하락했으며 소비자 신뢰지수도 상승세를 보인다.
오바마 지지율도 올랐다. 이번주 로이터 여론조사결과 오바마가 깅리치에겐 51%대 38%로, 롬니에겐 48% 대 40%로 우세했으며 월스트릿저널 조사에서도 깅리치 및 롬니와의 대결에서 각각51% 대 40%, 47% 대 45%로 오바마가 앞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바마 재선 ‘훈풍’에 계기가 된 것은 지난 주 캔자스주 오사와토미에서 행한 중산층 경제회복을 위한 연설일 것이다.
월스트릿 점령시위와 함께 새삼 미 전국의 화두로 떠오른 ‘소득의 불평등’을 주제로 한 이번 스피치를 통해 오바마는 2012년 대선 캠페인의 밑그림을 새로 그렸다. 지난 3년간 오바마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이 아닌 민주·공화 양당의 가치관 중 하나, 중산층의 옹호자와 부유층의 옹호자 중 한편을 선택하라는 양자택일의 선거로 끌어가려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 불평등으로 인해 미국의 중산층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제한 오바마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공정한 룰에 의해 경쟁하며 공평한 몫을 차지하여”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화당이 신봉해온 트리클다운 경제정책(감세와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물이 넘쳐흐르듯 하위계층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경제론)은 한 번도 효과를 본 적이 없이 중산층의 성장을 너무 오래 가로막아왔다고 맹공격을 퍼부으며 열정적 포퓰리즘의 기수로 나섰다.
지난여름까지 공화당과의 타협에 집착하며 입장 표명에 번번이 모호했던 그가 “이제 갈 길을 확실하게 정한 것”이라고 민주당 여론조사가 제프 개린은 해석한다. 일단 갈 길이 정해지면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다. 입장도 선명해질 것이다.
연설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다. 공화당은 즉각 “계급전쟁”이라고 거세게 비난했고 리버럴 진영은 오랫동안 갈망했던 ‘포퓰리스트 대통령’의 귀환에 환호하며 감격했다. 어쨌든 오바마팀의 전략대로 ‘중산층의 수호자’와 ‘부유층의 대변자’ 중 ‘선택’이 내년 대선의 주요 화두로 떠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진보표밭의 열정을 일깨우고 있는 새로운 포퓰리즘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무소속 중도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까. 당연히 오바마의 ‘함께 성장하는 미국’이 공화당의 ‘부유층 감세폐지 반대’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을 매일 체감하는 99%에겐 훨씬 호소력이 강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연설은 연설일 뿐이다. 실망했던 무소속 유권자들이 다시 기대를 안고 되돌아 올 수 있도록 ‘공정하게 성장하는 사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부유층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희생분담을 필요로 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것은 오바마 뿐 아니라 어느 후보에게도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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