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다 :“ We can’ t wait,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오바마의 제안이라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며 안건처리를 미루는 공화당에 맞서 의회 승인이 필요없는 행정조치만으로 서민의 고통 해결에 나서겠다는 통보성 메시지이며“ 국민보다는 당 을, 다음 세대보다는 다음 선거를 우선시하는” 당파적 늑장 의회를 향한 공개적 경고다.
지난 사흘간의 서부 3개주 순방을 계기로 오바마 대통령은 작심한 듯 민생지원 드라이 브의 시동을 걸었다. 순방 첫날인 24일엔 압류 위기에 처한 주택소유주들을 지원해 주택경기 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내놓았고 25일엔 재 향군인들의 취업방안을 제시했으며 26일엔 학 자금 대출 갚기에 숨 가쁜 젊은이들을 도와주 는 상환기준 완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행정조치들은 의회가 죽여버린 오바마 의 일자리법안에 포함된 사항들이다. 4,470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법안은 이미 좌절되었고 각 항목별 처리는 유보중이지만 공화당이 결 사반대하는 백만장자의 세금인상을 재원으로 삼고 있어 의회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거북이 회복 의 발목까지 잡고 있는 상황에서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입법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들은 듣지 않는다…’ 그래서 입법에 비해 범위도, 효과도 제한적인 행정조치로라도 경제회 복을 위해 나서겠다고 오바마는 호소했다.
경기침체로 위기에 직면한 오바마가 재선 캠페인을 가속화하며 던진 승부수이기도 하 다. 첫 무대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주택압 류율과 실업률이 미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 역이다. 그리고 내년 대선의 결과를 좌우할 ‘스윙 스테이트’ 접전 주 중 하나다.
“우린 기능이 마비되어가는 의회를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가족과 경 제를 도울 때까지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습 니다. 그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내가 합니다”
10월초 공화당의 선두주자 미트 롬니가 라 스베이거스 리뷰-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주택정책과는 대조적이다.
“주택압류 위기는 그냥 바닥을 치게 두어 야 합니다” 롬니는 개인투자가들이 들어와 압류주택들을 사서 렌트를 주거나 수리하여 시장을 살리는 것이 주택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학자들에겐 합리적 인 방안으로 들릴지 몰라도 현실에서 고전하 는 주택소유주, 중산층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 에게서 기대하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헐값 에 압류주택을 사들인 기업만 돈 벌게 하자 는 건가…
오바마팀은 “역시 롬니는 서민과는 동떨어진 대기업을 위한 공화당의 후보”라며 표정관리에 애쓴다. 오바마의 경제 드라이브가 성공하리라는 보 장도 없다. 학자금과 주택, 서민생계의 가장 중요 한 두 부분에 대한 지원은 꼭 필요한 민생대책 이며 현명한 선거전략이긴 하지만 요즘 유권자 들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구제금융(bailout)’으로 비쳐질 경우엔 자칫 역풍을 초래할 수도 있다.
표밭의 분위기는 그렇게 살벌하다. 워싱턴 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민주·공화 구별없이 모든 유권자 계층에 퍼져있고, 오바마의 국정 성적표는 그의 지지자들에게도 실망스럽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어려운 경제를 오바마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니지만 오바마의 재선을 장담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백악관은 희망을 섞어 판세를 분석 한다. 조심스럽게 근거도 제시한다 : 9%라는 절망적 실업률이 계속되는데도 오바마의 지 지도는 비교적 양호하다, 공화당 어느 후보보 다도 높다, 무소속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경제 어젠다를 적극 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화 당의 대안은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의회 공화 당 지지도는 민주당 행정부보다 훨씬 낮다…
2008년의 신선하고 힘찼던 “Yes, we can” 에 비하면 2012년을 향한 ” We can’ t wait”는 소극적이고 옹색하다. 그래도 모든 것은 상 대적이다. 민주당은 내년 대선을 ‘광채는 잃 었지만 통치와 외교적 경험을 쌓은 대통령’과 ‘흠집 많고 검증 안된 공화후보’ 중 양자택일 의 선거로 이끌어가려 한다.
공화당은 실패한 오바마에 대한 신임을 묻 는 투표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경제에 대 한 불만이 너무 깊은 유권자들이 무조건 공 화당 후보를 택할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심판의 기수가 되어야할 공화당 후 보가 아직은 영 신통치 않다는데 있다. 상당 수 공화당 유권자들도 공화후보 토론회를 ‘서커스’로 경멸하며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후보를 뽑는 경선 시작이 두 달 밖에 안 남 았는데 밀입국자를 감전사시키는 국경장벽을 세우겠다는 후보가 아직도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는가하면, 창조론을 지지하고 오바마 의 출생증명서를 트집잡는 후보에게 선거자 금이 몰리고, 가장 진지하다는 후보는 때마다 말을 바꿔 ‘바람개비’로 불리는 것이 경선전 의 실정, 공화당의 고민이다.
민주당의 소원대로 ‘선택’이 될지, 공화당의 장담처럼 ‘심판’이 될지…유권자들의 분별력은 정치가들의 짐작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 하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미국에서 든, 한국에서든 선거가 필요한 이유이니까.
박 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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