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여름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타이오가 패스(Tioga Pass)를 지나 모노호(Mono Lake)를 거쳐 395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우연히 만자나르 국립사적지(Manzanar National Historic Site)에 들렀다.
그동안 얼마나 미국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직접 미국에 와서야 실감하곤 했는데 역시나 전혀 몰랐던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 그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만자나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거주하던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이하 일본인)들이 집단 수용된 강제수용소 10곳 중 하나이다. 그곳은 1평방마일(약 783,470평) 정도의 휑한 빈 공터에 작은 기념관이 하나 있을 뿐 동쪽으로는 데스밸리(Death valley)가 그리고 서쪽으로는 미국 본토에서 제일 높다는 휘트니(Whitney) 산이 위치해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 곳에 다음과 같은 글이 방문객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일본인들을 집단 이주시키지 않았어야 했다. 그것은 미국적이지 않고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이며 기독교인답지도 않은 것이었다(It was un-American, unconstitutional, un-Christian).”
이 글을 읽는 순간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저런 고백을 하게 만든 것일까? 만자나르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출처: National Park Service)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 살고 있던 12만 일본인들의 삶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진주만 공격은 생전 공격받은 적이 없던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따라서 당시 미국 내에서는 인종차별적 편견이 극대화되었으며 향후 사회 각 분야에서 일본인들의 스파이 행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1942년 2월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전쟁기간 동안 자국의 노력에 위협이 될 경우 군사지역으로 추방할 수 있다는 대통령령(大統領令)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서부해안가에 거주하던 모든 일본인들은 재산 처분 등 주변 정리를 하기도 전에, 10군데의 급조된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그곳은 사막이나 평원, 늪지 등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척박한 곳이었다. 만자나르 역시 사막과 산맥 사이의, 모래 먼지가 끊임없이 날아오는 지역으로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가 여름에는 화씨 110도(섭씨 43.3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지대였다.
집단수용 초기 만자나르에는 한때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는데 1942년 말 발생한 소요사태에서 일본인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1943년에는 미국이 일본인들에게 충성심을 묻는 질문사항에 답할 것을 요구하면서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대다수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여부에 대한 질문사항에 거부했지만 서약을 한 일부 사람들은 강제수용소를 떠나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자원자건 징집자건 간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442부대’에 배치되어 북부아프리카나 프랑스 그리고 이태리 등지에 파견되어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만자나르에 수용된 일본인들의 ⅔는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였고 나머지도 미국에서 10년이상 살았지만 시민권이 거부된 사람들이었다. 일본인들이 만자나르에서 거주한 기간은 대략 3년 반 정도였으며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미국 정부가 이전의 보금자리로 되돌려 보내주었고 직접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었다.
척박한 데스밸리를 지나면서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이 십분 이해되었다. 하지만 기념관 내의 사진 속에 비춰진 일본인들의 표정은 점차 그곳의 생활을 즐기는 듯 밝아 보였으며 나름대로 그곳에서 사교생활과 복지를 누리는 듯 했다.
그곳에 전시된 사진 속에는 1940년대 미국의 수준 높은 생활에 맞게 일본인들이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며 여유롭게 파머를 하는 모습과 야구 등 운동경기를 하는 모습 그리고 댄스 장에서 댄스를 즐기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1988년 미국은 과거를 잘못을 시인하면서 집단수용소에 이송된 모든 일본인에게 일인당 2만 불의 배상금을 지불하였고 당시의 상황도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 이곳 만자나르에서 비춰진 성숙된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과거 한국인들에게 행한 일본인들의 모습이 대비되는 것은 혹시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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