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도시로 불리는 로스앤젤레스, 미 서부의 대표적 중심도시이고 미국 전체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약 38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1781년 프란시스칸 수도사들에 의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물론 훨씬 이전인 1542년에 탐험가인 후안 R. 카브릴로가 현재의 로스앤젤레스의 한 지역인 인디언 마을 ‘양나’를 발견하였고 1700년대에 이탈리아의 한 성당의 이름을 딴 천사의 여왕이란 뜻으로 부른 데서 유래한다.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이었던 이때 정복지의 선교를 위해 캘리포니아 연안에 차례차례 지어졌던 스물한 개의 미션 중의 하나인 샌개브리엘 미션이 LA의 동부 쪽에 지어졌고 1800년 스페인 총독 베네는 북부 멕시코에 군대를 파견하여 이주민을 모집하고 그들에게 땅과 가축 그리고 연장을 지급하여 315명의 정착민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하며 농업과 목우가 주민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던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일부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였으나 1848년에는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LA는 오랫동안 별 발전이 없이 평범한 농촌에 불과했으나 1850년에는 1,600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발전되고 캘리포니아도 미국의 한 주로 승격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대륙횡단 철도가 개통되고 샌피드로에 항구가 건설되어 로스앤젤레스는 교역의 중심이 되며 도시답게 발전하여 갔다. 거기에 20세기 초에 영화산업이 들어오며 따라서 여행객들이 몰리자 관광산업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그동안 계속되었던 석유 채굴산업이 더욱 번창하였다. 그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항공기 산업이 활발해지니 로스앤젤레스는 급격히 발전하며 대도시의 틀이 잡혀 갔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일어난 경제 대공황은 도시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수많은 실업자와 타지에서 들어온 노숙자들로 도시는 원치 않는 모습으로 인구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며 항공산업과 군수산업 등으로 도시는 회복되기 시작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인구가 계속 늘어나며 주택경기도 활성화되었다.
이렇게 로스앤젤레스는 제조업이 발달하였고 항공우주산업과 영화산업의 메카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특별히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해변과, 온화한 기후, 그리고 많은 유적지들이 몰려 있는 미국의 두 번째 도시이다.
이런 로스앤젤레스는 몇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코리아타운이 속하여 있는 미드윌셔 지역이다. 이 미드윌셔 지역은 북쪽으로 멜로즈, 남으로 10번 프리웨이, 그리고 동서로는 후버 길에서 라시에네가를 잇는 넓은 지역으로 주위에 미라클 마일과 행콕팍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고, 북서쪽으로 베벌리힐스가 맞닿아 있는 곳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서쪽과 동쪽의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구실을 하고 있기도 하다.
1780년대 로스앤젤레스가 처음으로 세워질 때에는 후버 길이 도시의 서쪽 끝이어서 지금 한인타운을 포함한 미드윌셔 지역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한가한 농촌지역이었으나 1890년대 대규모의 석유 채굴이 시작되면서 필요에 따라 전차(street car) 라인이 생겨 다운타운부터 멀리 서쪽으로 샌타모니카까지 연결이 되며 미드윌셔 지역은 도시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물론 LA에 무역항이 세워지며 이 지역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이는 등 미드-윌셔 지역은 지리적으로 LA의 중심 위치에 있으면서 도시와 함께 성장 발전하여 왔다.
이곳의 주민 구성은 1950년대 중산층 유대인들과 흑인들이 모여들어 지금은 도시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살고 있고 어떤 면으론 도시의 표본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들이 70년대 톰 브래들리 시장이 당선되어 흑인시장으로서 20년 가까이 재임하며 훌륭한 업적을 이루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드윌셔 지역의 주택들은 그 지역 주민의 성격을 대변하듯 규모가 작고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1980년대 한국 이민자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며 코리아타운은 한인들뿐 만 아니라 주류사회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경제적으로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게 된다.
특별히 1992년의 폭동은 우리 동포사회에 큰 타격을 준 돌아보기도 마음이 아픈 일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론 미드윌셔 지역도 크게 영향을 받아 윌셔가를 비롯한 이 지역의 고급 오피스 빌딩에 들어 있던 세입자들은 센추리시티를 비롯한 서쪽 지역으로 모두 옮겨가 빌딩의 공실률은 올라가고, 윌셔가의 명물 중의 하나였던 블럭스 백화점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만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폭동 이후의 행콕팍 주택 평균가격은 20만달러대까지 떨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이 공동화되며 부동산 값이 떨어지고 그동안 자본을 축적해 왔던 한인 투자자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어 지금과 같이 윌셔가의 많은 빌딩들이 한인들의 소유가 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내에서도 특별히 다양한 인구 구성과 직업, 그리고 소득의 격차도 크고 그래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이기도 한 이 지역의 중심에 한인타운이 있다. 이런 면들이 한류 열풍과 함께 타인종들을 코리아타운으로 끌어들이는 모멘텀이 되고 있다.
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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