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에서 희생된 유태인은 600만 명
2009년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유태인 인구는 약 6,544,000명이다. 유태인의 모국인 이스라엘의 유태인 인구는 5,664.000(2009현재)명 정도인데, 미국거주 유태인이 본국 유태인보다 약 1,000,000명 정도 더 많은 셈이다. 유태인 이민은 영국의 식민이 시작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이 되었다. 초기에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유태인이 주였으나 18세기 후반에는 독일계유태인이 주였다. 1830년까지 약 250,000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러시아나 동유럽각국에서 유태인의 학살, 탄압, 배척이 심해지면서 많은 유태인이 미국으로 피난을 왔다. 1924년에 이민의 국가별 쿼터제(이민제한법)가 실시되기 이전까지 약 200만이 대거 입국을 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유태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반유태주의(antisemitism)의 연장이었다고 보아야 함으로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이전에 반유태주의에 관한 사실을 어느정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반유태주의란 유태인의 종교(유태교), 문화, 민족성을 증오하고, 비하하려는 감정을 이야기 한다. 유태교는 강력한 선민사상(選民思想)이고, 배타적인 사상이며 예수님을 살해 한 사람들이고 기독교의 금기 사항인 고리대금업 등으로 축재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타 민족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증오는 직장을 얻는데도, 학교생활에서도, 사업을 하는데도 큰 장애가 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반유태주의는 세계 도처에 처참한 반 유태인 사건을 수없이 많이 남겨놓았다. 1290년 영국의 유태인 국외 추방사건, 1391년 스페인에서의 유태인 대거 학살, 스페인 종교 재판소에서의 유태인의 강제 개종(기독교로)판결, 1492년 스페인의 유태인 국외 강제 추방, 제도화 된 러시아의 유태인 학살(pogrom),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한 살인사건인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 사건이 그 예의 일부이다.
특정민족을 말살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대거 학살 행위를 ‘제노사이드(genocide)’ 라고 하는데, 20세기 후반에 있었던 유고슬라비아 내의 민족 간 대립에서 상대방을 몰살하기위한 살인행위는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는 이름으로 진행이 되었다. 특히 조직적인 대량학살을 영어로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하는데 독일의 유태인 학살은 ‘홀로코스트’라고 한다. 일면 러시아에서 행한 유태인 대량 학살은 ‘포그롬(pogrom)이라고 하는데 러시아어로 ‘말살’이라는 뜻이다.
유태인의 국외 추방이라던가 박해, 학살 사건은 중세기부터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러시아의 ‘포그롬’, 히틀러 독일의 ‘홀로코스’는 그 뿌리를 러시아 특무경찰이 날조한 유태인 음모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미상으로 되어 있지만 제정 러시아의 특무경찰이 유태인을 학대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소위 ‘유태 장로들의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라는 음모 책자가 1800년도 말엽에 출판이 되었는데, 유태인 지도층 인사 20명이 비밀리에 유태인들의 힘을 모아 세계정복을 하기 위한 합의를 하였다는 내용의 책자였다. 이 책자는 삽시간에 세계각지에 전파되어 유태인을 배척하는 활동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이 되었다.
미국 자동차계의 왕자 ‘헨리 포드(Henry Ford)’를 자극 했고,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 계획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포드는 평화주의자인데, 세계대전은 각국에서 금융계통을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들이 단합을 해서 배후에서 공작을 해서 일으킨다고 공언을 하였다.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과 같은 열강의 금융계는 유태인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에서 오는 이득을 위해서 전쟁을 선동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하였다. 포드는 ‘유태장로들의 의정서’를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에 널리 보급하였고, 세계 각국어로 번역을 해서 세계적으로 전파를 하였다. 그리고 반유태주의의 제고(提高)를 위해 노력을 하였다. 후일 유태인 조직이나 각계에서 포드의 극단적인 처사에 항의를 하게 되어 그는 1929년에 공식 사과문에 사인을 하였다.
히틀러는 반유태주의자였으며 제1차 대전도 유태인의 음모에 의해서 발발하였으며 유태인들이 독일 패전의 원인이었다고 믿고 있었고,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는 “세계의 유태인들은 우리 독일인의 순혈(純血)을 오염(汚染)하려는 음모를 갖고 있음으로 우리는 조직적으로 그들을 색출해서 사회에서 제외하여야 한다”라고 공언을 한 바 있다.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정권을 장악하면서 독일 국내 52만 명의 유태인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였으며 유태인 강제거주구역(게토-ghetto)을 만들어서 수용을 하였고 유태인은 공무원이나 의료, 농업 등에 종사치 못하도록 막았다. 이때부터 홀로코스트(유태인 대량학살)는 실제적으로 시작되었으며 2차 대전의 종말과 같이 끝이 났다.
특히 2차 대전(1939.9.~1945.8.) 중에는 학살이 본격화하였다. 점령지역 35개국의 유태인을 모조리 몰아 잡아서 현지에 설치된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학살을 하였다. 이때 히틀러의 손에 죽은 유태인은 600만 명으로 추정을 한다.
1939년 폴란드와 소련에 거주하던 유태인은 700만 정도였는데 이중 폴란드에서 300만, 소련에서 100만 명이 ‘유태인학살’의 제물이 되었다. 일부는 총살 되었고 대부분은 밀폐된 개스실에 들어가 개스중독사를 당하게 됐다. 독일은 이들 시신을 화장을 해서 흔적을 없애도록 노력을 하였다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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