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후 파킨슨 병으로 수 년간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치매 증상까지 겹쳤다. 간혹 당신 아내인 엄마를 보고도 “아주머니는 뉘시요?” 하시지만 눈빛이 어린애 같이 순해지셨다. 어려서 내가 본 아버지는 신통력이 대단한 선생인지 학생 얼굴만 봐도 대강 성적이 몇등인지 알아 맞추셨다. 얼굴은 영화배우 뺨치고 눈빛은 총기가 넘치는 ‘명강의’ 라는 별명이 붙은 인기좋은 선생이셨다. 엄마와 자녀들 모두 기독교인이지만 아버지는 안티크리스챤이었다. 노년에 엄마는 아버지 대소변까지 병수발을 극진히 하면서 가끔은 아내도 몰라보는 남편에게 “아이고! 우리 박사님이 박살님이 되셨네” 하면 그 순간은 순진한 아버지의 얼굴이 골난 어린애처럼 삐치셨다. 부모님을 우리 집에 모시고 살던 어느 날, 안락의자에 기대어 햇빛을 즐기는 아버지의 고요한 얼굴이 천진해 보였다. 무서운 아버지가 종이 호랑이가 되셨으니 지금이 찬스이다. 예수님을 영접시키고 구원을 받게 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아버지! 예수님을 믿으셔야 해요. 그래야 구원 받으세요.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어요. ” 그 순간, 치매 증상으로 지난 며칠간 어리숙한 아이같던 아버지의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셨다. “그래! 비교 종교학적으로 볼 때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우월한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만 믿어야 구원 받는 다는 것은 너무 편협적이라서 싫다” “예?” 갑작스런 아버지의 정상인과 같은 반응에 나는 어이없어 소스라쳐 놀랐다. 아버지 앞에서만은 겁쟁이 예수쟁이인 나는 기독교 복음에 대해 그 분 앞에서 노골적으로 말해 본 적이 없다. 들을려고 하시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나도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서 논쟁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능이 아이처럼 된 아버지에게 담대히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인데…. 과연, 치매 중에서도 지리와 역사 선생다운 말씀이셨다. 갑자기 똘똘해지신 아버지가 설명까지 덪붙이셨다. “ 세계 지도를 놓고 보면 기독교를 믿는 나라가 타 종교를 믿는 나라에 비해 문화가 발달하고 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비교 종교학적으로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만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편협함이 싫어서 나는 예수 안 믿는다.”
그 말씀을 하시고는 다시 초점이 흐트러진 눈빛으로 당신 만의 세계 속에 갇히셨다. 임종을 앞두고 아버지는 많이 고생하셨다. 몇 달을 밤에 악몽에 시달리고 환상, 환청에 시달려 비명을 지르셨다. 피골이 상접한 아버지의 눈빛은 정상이 아니셨다. 이제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세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 그래! ” 간단한 한마디의 긍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의 초점 잃은 눈에서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을 보았다.
그 때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아버지께 그 다음 말을 잊지 못한 것이 가슴에 남아있다. “ 아버지! 맞아요. 기독교는 편협적이예요. 그러나 기독교가 편협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예요. 세상에서도 참 사랑은 하나 뿐이잖아요. 사랑은 편협적일 수 밖에 없잖아요. 내게 땅의 아버지는 당신 한 분이고요. 소중한 사랑인 남편도 아내도 하나 뿐 일 수 밖에 없듯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도 오직 한 분이세요. 기독교는 착한 일 많이하면 천당가고 나쁜 일하면 지옥간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예요.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예요. 착하다 악하다는 기준은 인간의 잣대일 뿐, 거룩하신 분의 눈에 우리는 모두 미달이예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지만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 만은 말씀으로 못하세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그 분의 형상을 닮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를 로버트처럼 당신 맘대로 조종하지 못해요. 선택권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요. 그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아담 이후로 긴 세월을 기다리시고 드디어 그 아들을 보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어요.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에 위배되기 때문에 형벌이 있어요. 역사 선생이신 아버지가 아시는대로, 세계 역사는 예수님 탄생을 기점으로 BC 와 AD 로 나뉘고, 예수님의 탄생, 죽으심, 부활도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잖아요.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착한 일 많이 하면 천당 보내고 죄 지었다고 버리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영접해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기에 비록 완전하지 못하지만 천국에 가는 거예요.”
아버지는 편협적인 기독교의 하나님 사랑을 받아 들이셨고, 그 후 일년을 더 생명을 연장받아 우리 가족이 미국 이민 길에 오를 때 함께 이곳에 오셨다가 와싱톤 허스피틀에서 아내와 자녀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중 평안히 천국으로 돌아 가셨다.
(산호세 성결교회 교육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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