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미국을 다녀간 한 대학생 인척으로부터 “취업 준비를 위해 졸업을 늦추더라도 1년 정도 휴학까지 하며 어학공부, 해외연수 등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모양이다.
며칠 전 한 언론이 보도한 한국 대학가의 ‘취업 스펙’이란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취업경쟁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대학 공부 외에 다른 영어 평가시험 도전, 자격증 취득, 그리고 인턴 등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 대학생들의 스펙 경쟁은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성적은 물론, 조금이라도 경쟁자들보다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기 위해 무엇이든 자신을 보강하려는 반사작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작용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한다.
대학 공부를 등한시하고, 전공과 무관한 분야까지 손을 대면서 정작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능력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이런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과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도 형성된다고 이 보도는 지적했다.
그러나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뒤처지게 된다는 강박감은 학연과 학벌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특성을 감안할 때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눈을 돌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한인학생들의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 아이들도 같은 ‘스펙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취업이고, 이곳은 입학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입시에서의 스펙은 크게 성적과 과외활동으로 나뉜다. 성적은 그렇다 치고, 과외활동은 선택과 내용에서 유연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대학 지원서 과외활동 란에 눈부신 내용들을 하나라도 더 집어넣기 위해 여러 개의 클럽활동에 참여하고, 또 자신의 활동에 광을 내기 위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자녀의 과외활동, 특히 봉사활동을 위해 부모들이 함께 뛰느라 몸과 마음이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대학 입학사정에서 과외활동 비중을 무시할 수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시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하는 것 보다는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정말 이것을 하고 싶은 것인지” “왜 하는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은 따로 없는지” 등에 대해 자녀와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지 생색내기용 스펙이라면 당연히 그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허점들을 귀신 같이 잡아내는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눈에는 이 지원자의 열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과외활동은 “했다”가 아니라 “즐겼다”가 정답이다. 그리고 개수가 아니라 깊이다. 좋아서 자발적으로 했으니 배운 것도, 느낀 것도 제법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차별화된 자기만의 활동이다.
하나를 하더라도 가치와 감동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한인학생들의 과외활동 기록은 거의 유사하다는 얘기가 대학에서 나올까.
3년 전 LA 한인타운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어린 친구가 기억난다.
물리에 흠뻑 빠져 있던 이 친구는 학교성적이 중위권이었지만, 제법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다. 그때 그가 했던 과외활동은 과학클럽 하나였다. 아무리 봐도 그 성적으로는 그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도 대학에서 이 친구를 높이 평가한 것은 한 우물을 파는 열정 때문이었다. 물론 이 친구처럼 꼭 하나만 할 이유는 없다. 본인의 역량에 따라 정하면 된다.
스펙은 단기간에 쌓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자녀의 흥미와 목표가 바탕이 돼야 한다. 주변에서 한다고 따라하는 ‘스펙 경쟁’에 휩쓸리기 보다는 실제로 자신에게 도움 되고, 좋아하는 것에 투자해야 한다.
자녀가 알차고 유익한 과외활동을 통해 성장한 자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황성락 특집2부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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