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 아래 첩첩 영봉 거느린 무겁고 웅대한 돌산
고산을 등정함은 진정 꾸밈없는 천고의 자연을 감상하고 모든 문명과 잡다한 삶의 도전을 발 아래서 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되니, 마음의 폭을 널펴보는 좋은 처방이라 여겨왔다. 또 운동은 물론이고 자신의 몸 전부를 쓰며 도전과 인내의 한계를 가늠해 보는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겠다.
중부 New Hampshire에 있는 White Mountains의 산들 중에 Mt. Washington은 해발 6288ft로 제일 높다. 벌써 1860년대에 정상으로 오르는 자동차 (처음은 마차) 길도, 기차 길도 만들어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으나, 발로 등정 하는 7,8개의 등산로는 처음으로 등정했다는 1650년대와 별로 다를바 없다. 이중 3,4개의 등산로를 따라 등정하기로 하고 입산하는 입구의 Bretton
Woods라는 동네에서 남쪽으로 한 10마일 떨어져 있는 Crawford Notch라는 캠프그라운드에 진을 쳤다.
밤 8시도 안돼 텐트에 들어가 일찍 자려고 하는데 하나 둘 떨어지던 빗방울이 금방 장대비로 변하고 텐트바닥은 흥건히 물에 잠겼다. 에어 매트리스 위의 슬립핑백 아래쪽도 물에 저졌다. 그래도 내일 오전 8시전에 등정을 시작 해야하니 잠을 자야 했고 백 안의 누진 감촉도 모른 체 하고 잘 수밖에 없었다. 밤새 날씨는 맑아졌고 아마 55°F는 되는지 7월6일의 새벽공기는 상
쾌했다.
아내는 1ft 롤빵에 갖고 온 햄, 터키, 치즈 등을 잔뜩 넣어 진짜 잠수함같이 생긴 것을 은박에 싸서 각자 배낭에 넣었고, 나는 프라이팬에 달걀도 붙이고, 빵도 굽고 베이컨도 지지고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몇 일간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보다 먹을 것은 더 챙긴 것 같고, 에너지를 축적해야 한다며 카페인이 잔뜩든 커피도 두 잔, 프라이팬을 거처 나온 음식은 다 뱃속에 채웠다. 해는 떴으나 짙은 숲속이라 아침 7시라도 어두컴컴했고, 통화도 안 되는 셀폰은 GPS라도 쓰게, 카메라와 같이 주머니에 넣고 배낭 두개 지팡이 두개를 싣고는, 302번 도로와 여기서 6마일 떨어진 등정길 시작점에 왔다. 정상을 오르내리는 기차 (Cog)의 역이 있는 곳으로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피난민 짐같은 제법 무거운 배낭을 울려 메고 등산화는 튼튼히 동여 멨고, 아침 8시부터 Ammonoosuc Trail이라는 등산길을 따라 나섰다. 완만한 경사에, 발에 차이는 돌은 많지 않았으나 땅속은 돌로 다 찾는지 나무뿌리가 많이 올라와 걷는데 성가셨고 진흙탕의 길도 연속으로 나오니 신발은 벌써 저졌다. 트레일은 계곡을 계속 따라가고 맑은 물줄기와 물소리가 좋은 반려가 된다. 길옆의 죽은 나무사이 음지에는 빳빳이 뻗은 오키드 잎들과 줄기가 많이 자라고 곧 꽃들이 필듯하다. 눈이 오는 10월까지 큼직한 꽃들은 계속 피어 있으리라. 인력으로는 재현 할 수 없는 이 자연의 조화를 경탄하며 한시간을 올라 왔다. 길은 점점 돌길로 변하고 어떤 때는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 위를 뛰어야 하며 어떤 때는 바위를 타고 가제의 옆걸음으로 가야한다.
70살을 전후한 우리이기에 이 험한 돌산 길의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고 서로 주의와 경고를 주고받는다. 몸과 이마에 땀이 많이 나는 것을 보면 전신이 워밍된 것 같고, 충분한 운동을 했는지 소변의 줄기도 굵었다. 주위 삼나무들의 키와 굵기는 작아져서 간혹 햇빛도 돌길을 비추고 가파른 계곡 벽계수의 소리는 더 커졌다. 왼쪽으로 따라오던 계곡수는 폭포 밑에 있는 보석탕
(Gem Pond)이라는 곳에서 돌길과 만나고, 우리는 십여 분을 쉬며 보석같이 깨끗한 물에 얼굴을 씻었다.
여기서부터 돌길은 가파르게 오르고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곡예를 하게 되며 45°의 경사인지라 이백과 백오십 파운드를 끌고 가기가 여간 힘 드는 게 아니다. 옆의 키작은 관목의 가느다란 줄기도 잡아야 하고 평평하나 기울어진 큰바위를 지날 때는 기어가야 하며 Crystal Falls이라고 불리는 연속되는 폭포들 사이의 물줄기를 지날 때는 제법 큰 점프도 해야한다. 이 어려운 돌길을 한시간 정도 오니 알파인지대가 시작되고 관목들도 우리키보다 작고 줄기도 손가락같이 가늘어진다.
약 30분을 더 오르니 관목들은 없어지고 바위들만 사방에 질서 없이 어질어져 있고 사이사이에 잡풀만 돋아 있다. 기온은 별로 떨어지지 않았으나 바람은 제법 불어 시속 30마일은 될 것 같다. 별 표지 없는 길은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와 주거니 받거니 가파르고 더 험악해 진다. 뒤에 따라오는 나를 체크한다고 잠깐 서서 뒤를 보다 중심을 잃은 아내가 발을 헛딛고 선 채로 뒤로 넘어졌다. 뒷짐의 배낭이 먼저 바위를 쳤고 나는 머리를 급히 받아 큰 변을 면하니 몸에서는 진땀이 났다. 한시도 방심을 해서는 안 되는 교훈을 얻는다. 동쪽으로 고개를 쳐드니 저 멀리 돌들로 쌓인 산, Mt. Washington의 정상이 보이며 뒤로는 광활하게 펼쳐진 첩첩 산들의 능선이 부드럽게도 보인다. 바로 눈 위로는 쉼터로도, 잠자리로도 쓰이는 셀터 (Hut at Lake Clouds)도 보였다.
허벅지 근육에 자주 일어나는 발작과 경련과 통증을 줄이려면 이 근육을 비벼 주는 것이 중요하며 무리를 해 계속 걷는 것 보다 쉬게 해야한다. 다리 마사지도 하며 땀도 식히고 싸온 샌드위치의 반을 먹고 나니 다리 근육들의 부위도 빠지는 것 같다. 앞으로 한시간 반을 넘게 가파른 돌산을 올라야 하니 이에 필요한 몸의 재충전을 위해 이 셀터는 좋은 공간을 마련해 준다. 4년전 이 집을 나오고 나서 갑작스러운 짙은 안개를 만나, 지척을 볼 수 없었고 등정의 길
을 안내하는 돌무지를 찾기가 힘들었다. 추위와 세차게 부는 바람으로 정상까지 사력을 다해 2시간동안 기다시피 올라갔었다. 오늘의 날씨는 이곳의 기준으로는 매우 좋은 편이고 배낭에든 옷과 장비는 쓸데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이 셀터 주위의 평평한 능선에는 조그마한 호수 두개 (Lakes of the Clouds)가 있고 물은 여름에도 얼음같이 차다. 풍속과 방향, 온도, 기압, 강우와 적설량, 햇빛의 강도 등을 재는 계기들이 널려져 있었고, 다른 등정의 트레일 (Crawford Path)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해발 5000ft 지점인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4마일이라 이제 다 왔다는 유혹을 주나 마지막 반은 매우 어려운 급경사의 돌길이고 힘이 들었다. 나는 두 다리 근육에 통증이 심해 두 번이나 10여분씩을 주저앉아 마사지한 후에야 걸을 수 있었다.
정상은 바람도 몹시 불었다. 온도는 45°F로 7월 초순으로는 추운 편이었고 체감온도는 겨울 같았다. 낮 1시 30분에 정상에 오르니 장장 5시간 반이 걸렸고 다리는 후들 거렸다. 정상의 운무는 가셨고 저 밑에서 뭉처가는 구름떼가 장관이며 첩첩으로 쌓인 영봉들을 발치 아래에 거느린 이 무겁고 웅대한 돌산에 위압을 받는다. Tip Top이라는1850년대에 지은 호텔에 잠깐 둘렀다. 160년전 이곳에 호텔을 지어 영업을 했다니 선구적인 아이디어이라고나 할까? 차나 기차로 올라온 무수의 관광객 틈에 끼어 남은 6인치 샌드위치를 마나님은 커피, 나는 크램 차우더를 곁들여 잘 먹었다. 약 10명의 젊은 자칭 등산애호가들과 등정에 얽힌 사연들을 얘기도 하고, 다리도 주물고, 왔다 갔다 하는 기차의 기적 소리도 듣고, 벌써 한시간을 넘게 정상에 있었다. 오후 늦게 번개를 동반한 큰비가 온다고 했고 그래서 하산 시간을 2시로 잡았는데 2시 반도 지났다.
지난번처럼 내려 올 때는 Gulfside와 Jewell Trails를 따라 가기로 했다. 훨씬 멀기는 해도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지라 돌 사이를 점프하고 돌층들을 내려가는데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다. Gulfside 트레일은 정상 주위를 도는 돌길로 일정구간은 기찻길을 따라 가고, 어떤 구간은 그 이름대로 2000ft나 파진 깊은 계곡의 낭떠러지 바로 옆을 지나간다. 돌과 풀 포기밖에 없는 곳
이라 여기서 발을 헛 딛으면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2천 피트를 떼굴떼굴 굴려야 하니 위험스럽고 두려움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 트레인은 정상에서1.8마일까지 계속 되나 비교적 완만해서 힘이 별로 안 들어 재미도 있고, 저 아래에서 숨가쁘게 기어올라오는 디젤기차의 힘든 모습도 옆에서 볼 수 있으며 어떤 곳에서는 우리와 기차가 같은 속도 내려간다고 느끼는 곳도 있다.
White Mountains의 장관을 관상하며 내려오기도 잠시 그 지긋 지긋한 바위와 험한 돌길의 연속인 Jewell 트레일로 들어서야 하고 험한 하산길이라 잠시도 눈을 떼서 사방을 조감할 여가도 없어진다. 알파인 지대라 무릎까지 올라온 관목들이 바위 사이에 깔려 있지마는 밑을 알 수 없으니 디딜 수도 없고 바위만 타고 내려 올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청천벽력으로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새까만 구름 떼가 몰려오고 우비로 마련한 판초를 배낭에서 꺼내 둘러쓰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앞으로 2시간 반을 미끄러운 바위를 밟고 내려가야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이왕 젖은 몸, 거추장스러운 판초도 벗어 버렸으나 젖은 아랫도리라 걸음 폭은 짧아졌고 배낭은 무거워 졌다. 한동안은 내가 앞에 서며 아내의 손을 잡아야 뜀으로 내려 올 수 있는 길이였고 낮은 관목이 키를 넘는 나무로 변할 때까지 이 험한 길은 좁기까지 하다. 앞도 안보이고 비는 계속되고 무릎과 발목은 벌써 타박상을 입었고, 저 멀리 기차의 기적소리만이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걸어도 점프를 해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이 트레일이 지겹게 느껴지는 것은 계속되는 장대비 때문이리라. 그전에도 힘은 들었으나 이번의 하산 길은 유난히 어려웠다. 다른 곳에 비해 날씨의 변화가 심하고 불순한 것이 이 산의 등정이 위험하고 어렵다고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절실히 느낀다. 기차 정거장이 가까이 올수록 길은 진흙탕으로 변했고 하산길 4시간중 3시간은 돌산길, 1시간은 돌과 흙탕길이였으니 다리를 휘청대다 넘어지면 궁둥뼈가 바위에 바치고 무릎이 바위에 차인 것은 고사하고 입고 있는 옷의 꼴도 말이 아니다. 흙탕물에서 나온 새양쥐처럼 하고 철로를 건너고 쩔뚝거리며 마침내 파킹장에 왔고 차를 타기 전에 언덕에서 내려오는 빗물로 몸을 씻었다. 인내의 한계에 다달은 여정이였지만은 큰 사고 없이 등정과 하산을 할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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