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엔, 드라마틱하거나 경쾌한 스타일의 테너 아리아들보다는 부드럽고 섬세한 곡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중 내 심금을 울리는 아리아가 하나 있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요새야 유투브나 MP3 덕분에 저명한 테너들의 노래를 맘껏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나 대학 때만 해도 그럴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브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은 지금은 원로가수가 된 테너 신영조가 나 살던 도시 시민회관에서 불렀던 때였다. 맑은 음색의 목소리와 함께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피치를 끌어올리며 발성하는 그의 그 곡 연주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맴돌고 있다.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나이가 들며 생기는 변화 중 하나가 곧 이런 눈물이다.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감추고 싶은데 잘 안 감춰지는 눈물이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를 봤다. 원로배우인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가 주연한 영화다. 노인들의 풋풋한 사랑을 만남과 이별이라는 주제 안에서 잘 풀어나간 수작이었다.
그런데 영화 보는 도중 참기 힘든 눈물이 날 장면들이 많았다. 아내야 여자니까 대놓고 울 수 있지만 난 남자로서 눈물 참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내가 찔끔찔끔 짠다고 누가 뭐라 할 일도 아니고, 나 우는 거 봐봤자 그 방 안엔 나 말고 아내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 눈에서 눈물 나는 게 뭐 대단한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참느라 아주 혼났다.
하지만 이럴 때만 그러지 않는다는 게 또 문제라면 문제다. 앞서 말했듯이, 나이 탓인지 세월 탓인지, 울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 읽다가, 신문 읽다가, 조금만 찡한 대목이 나타나도 코끝이 금방 찡해진다.
얼마 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플로리다에서 한 6살 소년이 4살 된 동생이 동네 개에게 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개와 혈투를 벌였다는 기사였다.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그 어린 게 제 몸집만한 개에게 이곳저곳 물리면서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아들을 둔 부모가 자랑스럽게 느껴져서, 이런 형을 둔 동생이 부러워서, 그리고 나와 아무 상관은 없지만 그 아이가 너무 대견스러워서였다.
이렇게 변해가는 내 내면의 사태를 어찌해야 할까, 이게 숙제다. 그냥 놔둘까, 아니면 극복해야 할까? 아이처럼 되어가는 이런 나를 그냥 놔둬버릴까, 아니면 뭔가 다른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할까?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건데 남자가 나이가 들면 여성스러워진다고 한다. 바깥보다는 집을 더 좋아하고, 과묵하던 사람이 잔소리가 더 늘어가고, 지구를 논하던 사람이 동네와 집만 생각하는 축소지향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이게 나이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이란다. 이는 몸 안의 남성 호르몬은 줄기 때문이며, 또 남자 호르몬이 빠져나간다는 건 결국 여성 호르몬으로 대체됨을 의미한다는, 상당히 과학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게 그 책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자연적 현상이라면 굳이 참을 일 없겠다 싶어서다. 울 일이 안 생기는 거면 좋겠으나, 그게 감동이든 슬픔이든, 울 일이 오면 그냥 눈물을 보여 버리기로 했다. 그게 나이 드는 것의 정상적 모습이라니까.
사실 가장 확실한 울음의 기억은 신앙을 얻고서였다. 기독교의 복음을 만난 후, 그리스도를 만난 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의 울음을 울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건의 중심부에 서 있는 목사가 된 지금, 나는 복음과 신앙 때문에 우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기독교 신앙은 감격이고 기쁨이고 놀라움이라면 울 일이 많아져야 맞다.
찬양 한 구절에서, 설교의 한 문장에서,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의 변화된 느낌에서 울 일은 얼마든지 있는 게 이 세계 아니던가. 어쨌든 울음은 회복되어야 한다. 필요한 울음이며 의미 있는 울음이면 울어야 한다. 이 즈음에, 울지 못하고 울지 않는 세대를 향해 양파껍질을 준비하자는, 소설 “양철북” 저자 귄터 그라스의 제안이 생각난다.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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