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라고 하는 흑인 부동산 중개인을 알게 된 지 여러 해가 된다. 근래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의 사업은 계속 번성하고 있다. 그녀의 활동 무대는 백인 지역인 월넛 크릭, 알라모, 댄빌 등이다. 피부 색깔과 상관없이 그의 해박한 부동산 지식과 놀라운 고객관리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 어렵게 남부에서 자라다가 캘리포니아대학을 마치고 부동산 업계에 뛰어 들었다.
목소리가 고운 그는 교회 성가대도 하고 지역 사회를 위한 헌신하는 등 전형적인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미국 사람이다. 가끔 인종 문제가 나오면 어께를 으쓱하며 가정부였던 할머니와 백인 주인 사이에서 어머니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증조부는 노예였다고 한다. 백인 위주인 미국에 대한 나의 물음에 어려서는 반감도 가졌지만 지금은 별로 그런 생각은 없다고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어떤 비즈니스 모임에서였다. 회원들은 이 모임을 통하여 고객을 소개 받고 서로를 돕는다. 오클랜드의 몬클래어 지역에 새로운 지회를 시작하면서 우리 만남은 시작됐다. 각 직종에 한사람 이상은 가입 할 수 없고 18명이 되어야 창립이 된다. 3년 전에 지회 창립을 했고 현재는 47명 회원인데 50명만 되면 신규 회원은 더 받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초대회장을 하고 다음은 은행 부행장이 맡았다. 은행 부행장이 회장을 계승하면서 내가 부회장이 됐다. 차기 회장은 내 순서였는데 내 사업체와 대학 교수 일이 너무 바빠서 가까운 동료한테 회장직을 넘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금년은 그렇게 편할 수 없고 평회원을 하니 마음의 부담도 덜하다.
오클랜드 ,버클리, 알라메다 지역에 7개 지회가 있는데 우리 지회가 가장 활발하여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초대회장을 지낸 그레이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이혼 후 틴에이저 아들의 교육과 사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때 15세가 되는 아들때문에 그녀는 회의를 하다가도 학교까지 뛰어가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위 회원들의 도움을 받았고, 아들과의 위기도 여러 번 넘겼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았던 모양이다. 월넛 크릭에 사는 전 남편과 상의도 하며 살얼음 위를 걷는 그런 생활이었다고 한다. 어떤 때는 부스스한 얼굴로 매주 하는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재혼도 하고 사업과 새 가정에 충실했다. 아들에게 소외감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는 모든 게 잘되어 가는지 활발한 모습을 되찾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새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에 큰 힘을 얻어 틴에이저 아들은 학교공부에 전념 했다.
각 회원이 자기소개를 했던 지난주 회의 때의 일이다. 그동안 여러 회원에게 감사하다며, 그 말썽 많던 아들이 오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그 우여곡절을 아는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다. 그녀는 감사의 노래 한곡을 해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가 좋아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기대했다. 별안간 미국 사람들에게는 애국가에 버금가는 “America, the Beautiful(아름다운 내 조국)”을 열창한다.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받은 감사와 자기 아들을 지켜주고 길러준 이 나라에 눈물을 흘리며 노래로 답을 하는 모습에. 하나님의 섭리로 자연의 부를 누리게 하고 아름답고 풍요함을 가져다준 내 조국을 위한 그런 가사다. 끝이 나며 우리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참 감격의 순간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체면을 차리는 곳에서는 유치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부유하게 자라지도 못했고 자라며 흑인이라 심한 차별도 받았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자랑스럽지 못한 백인의 혈통이 섞이는 등 삐뚤어져 나갈 소지가 충분했는데 역경을 견디고 “아름다운 내 조국”을 부른 그녀가 위대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한 미국의 번영은 계속될 것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이렇게 나는 매일 미국을 배우며 산다.
(경영학 박사/C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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