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기상 변화인지 요즘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는 요세미티 국립 공원에서 사흘을 보냈었는데, 고산 지역에서는 눈이, 밸리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려 무슨 계절에 이 공원을 찾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산 트레일도 눈으로 완전히 덮혀 1마일 가는데 두시간이 걸렸다. 오월 초면 활짝 피는 도그우드 (dogwood) 꽃도 한달이 지난 후에야 피고 있었으니, 차라리 해롤드 캠핑의 종말론을 받아들여야하나 싶기도하다.
지난 주말에는 베이 지역에도 비가 내려서 하이웨이 87번에는 한꺼번에 네곳에서 자동차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이제, 겨울에만 비가 온다는 역사적인 기록들도 올해의 기상이변에 고개를 숙이게되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비가오니, 그 옛날의 팦송인 에벌리 브라더즈의 (Everly Brothers) “비 속에서 하염없이 울겠노라 (I will do my crying in the rain)”가 이 지역의 실연하고, 상처입은 많은 주민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것같다. “상처입은 내 가슴이 얼마나 나를 괴롭히는지 당신께는 결코 모르게 할 것입니다 (I will never let you see the way my broken heart is hurting me.) / 나도 오기가 있어 내 모든 슬픔과 고통을 모른 척 감출 수있습니다 (I’ve got my pride and I know how to hide all my sorrow and pain.) / 빗줄기 속에서 울겠습니다 (I will do my crying in the rain.)…”라는 가사는 남이 눈치채지못하게 비 속에서 펑펑 울고싶은 사연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지난 토요일은 모친이 세상을 떠나신지 43년 되는 날이었다. 때마침 비가 쏟아졌다.
선친이 가시던 길이 아닌 엔지니어의 길로 가도록 이끄신 분이시다. 세월이 정말 유수와 같이 흘러 내 나이도 부모님들 생전의 연세를 훨씬 넘어섰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추억을 되살려본다. 기억을 되살릴수록 빗줄기가 드세어지는 것같다. 이것이 추억을 지닌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점인 것같다.
이웃에는 딸의 중국인 소꼽친구가 살고있다. 두 집안이 이제는 동네에서 터줏대감이 된 셈이다. 한 때는 그 집의 안주인이 자신의 남편과 나를 비교하는 바람에 적이 되기도했었다. 아무개 아빠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하면서 남편에게 빈정대며 사기를 꺾어 괜스레 미움을 샀다. 하지만, 이웃 사촌이라고 집 앞을 지나가는 그녀의 차에서 심한 금속음이 나길래 차를 세우고는 물어봤더니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미끄러진다고했다. 그 즉시 브레이크를 봤더니 패드가 다 닳아서 바퀴를 정지시킬 아무런 마찰력이 없었다. 차를 못타게하고는 패드를 사서 즉시 바꿨다. 다행히 그 남편까지 오라고해서 고쳤으니 아무런 마찰이 없었다.
그 이웃은 오래 전부터 심협착증을 앓고있었다. 수술도 할 수없는 상황이라 그 때부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산소통을 메고 사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남편은 짜증도 안내며 가족 부양을 위해 직장에 매달렸다.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산소통을 끌고서 동네라도 다니는 모습을 보았는데, 요즘은 통 볼 수도없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안스러울 정도인데, 본인들은 어떠했으랴? 얼마 전에 아내에게 전화해서는 “이제, 호스피스에서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해주고있는데 자신은 하나님께로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다. 때때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는 마냥 낫게해달라며 매달리는 기도는 배웠어도, 떠나는 사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잊는다.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라,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보는 일이 있으면 피하려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집을 부리다보니 이혼율도 늘어난다. 이 이웃이 거치는 과정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성경을 눈으로만 읽어가면 하나님에 관해서 배운다. 하지만, 성경 속으로 자신이 빠져들어가면서 읽으면 하나님을 배운다. 하나님에 관해서 배우는 것과 하나님을 배우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사항이다. 남의 고통 속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면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하는 것같다. 배우도 연기를 잘하려면, 자신의 배역에 빠져 들어야한다.
그 비 쏟아지던 토요일, 다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람들을 만나면 감정이 북받쳐 울게되고, 울면 호흡을 할 수가 없으니 만날 수가 없다며, 그 동안 자신과 가족들에게 베풀어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잊지않겠다는 고별 전화였다. 그 옛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눈을 가렸을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들의 자녀들이 다시 옛날의 나의 슬펐던 모습이 될 것을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흐른다. 유월이라도 때마침 비가 내리고 있으니 밖으로 나가 그녀의 집을 향해 그녀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빗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요단강 건너가 다시 만날 소망의 삶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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