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컬럼비아대학 사회과교육 박사학위 과정)
뉴욕한국학교에서 한국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역사의 흐름에 따른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화, 예술의 발전과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다문화적 시각을 통해 가르치고자 노력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한인 2세들에게 한국어, 한국인의 음식과 풍습 등 문화적 특성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이들이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타인의 문화와 삶의 존중하고 관용의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1세기 국제사회 특히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과 같은 다문화사회에서 자라는 우리 한인 2세들에게 다문화적 관점과 관용,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내가 가르쳐온 많은 한인 2세 학생들은 가정에서 부모, 조부모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한국식 예
절과 문화, 언어를 습득하고 학교에서 다인종,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어울리면서 다문화적 자질을 훌륭히 기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유달리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의 자세다. 나는 우리 한인 2세 청소년들이 자신의 종교를 잘 알고 신념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타인의 종교와 그에 기반한 문화도 소중한 것으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를 키울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한국역사 시간에 고려불교와 미술에 대해 가르치면서 일어난 일이다. 나와 학생들은 다양한 고려시대의 예술작품과 건축양식에 대한 사진을 감상, 분석하면서 불교가 고려시대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토론했다. 내가 고려시대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불교를 믿었다고 이야기하면서 부처와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이야기 해주자 몇몇 학생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려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신은 오직 하느님 한명 뿐인데 왜 이상한 종교를 믿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에 불교를 믿었다고요? 말도 안돼!" "스님들은 다 우스운 차림새를 하고 있어요." " 선생님은 왜 우리한테 불교 이야기를 하세요? 선생님이 불교를 믿기 때문에 우리한테 가르치시는 것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의구심과 질문을 바탕으로 우리는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에 전파되고 중국과 많은 정치·경제·문화적 교류가 있었던 우리나라에도 불교가 전파됐으며 많은 승려들이 불교를 공부하고자 유학을 가기도 했다고 말해줬더니 학생들이 종교가 그 옛날에 국제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지정돼 왕도 불교를 믿고 승려를 가까이 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과 문화,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며 사진을 보여주자 학생들은 매우 흥미로워했다.
"어!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연꽃무늬가 있어요. 이것도 불교가 영향을 미친건가 봐!" "고려 사람들도 성경을 읽듯이 불교를 공부하고 책을 만들었나봐!" 그 이후 나는 선생님은 불교를 믿지 않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과 생활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믿음이 나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해줬다. 또한 오늘날 한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일부는 기독교를, 일부는 천주교를, 일부는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표를 보여주며 설명해줬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몇 학생들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음주 토요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집에 갔던 한 학생이 내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집에 가서 엄마 아빠랑 이야기 해봤는데요. 정말 한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대요.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도 불교 신자래요. 저는 불교는 이상한 종교이고 한국 사람들도 이상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믿었다니 신기해요." 나는 이 학생의 사고의 변화와 참 기특하면서도 다행스러웠다. 이상한 종교인 불교를 믿었던 고려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고, 한국도 이상한 나라라고 말하던 어린 학생이 집에서 부모님과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조부모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며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학생은 이후에도 몇 번이나 내게 불교신자이신 조부모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가족이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 신기하고도 재미있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나는 이와 같이 학생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조부모의 종교와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신 이 학생의 부모에게 매우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초등학교 5학년 어린 학생은 학기말 과제로 고려불교와 예술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요즘 열의를 불태우고 있으며 내게는 더 많은 사진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조르고 있다.
우리는 한인 2세 학생들이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배우면서 다문화사회를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신념을 유지하고 자부심을 갖는 동시에 종교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시각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의 자세를 보다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뉴욕과 같은 다문화사회에서 자라나면서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는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고 학교와 직장에서 유대인들과도 교류하며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도 서로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각과 자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자질은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음식과 풍습 등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한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뿌리가 될 것이다. 다양한 민속신앙과 풍습을 발달시켜 온 한국의 역사도, 불교에 깊은 뿌리를 둔 고려시대의 문화와 삶도, 유교라는 철학과 종교에 기반한 삶을 이어온 조선시대의 모습도 우리 한인 2세들이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학습하며 다문화적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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