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나는 한국에 있을때 들었다.폐암이라고 했다.처음엔 가벼운 감기 증상처럼 기침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폐암이 발견됐다는 것이다.이미 양쪽 폐에 암이 생선 비늘처럼 퍼져서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 소식을 듣고 나는 한동안 큰 충격에 빠졌다.
폐암은 암중에서도 한번 걸리면 완치가 힘든 암으로 평이 나 있다.일생동안 담배 한개피도 안 피운 그녀가 왜 하필이면 폐암에 걸렸을까 하는 것을 우리는 누구도 설명할수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병애 걸리고 죽게 돼 있다.암 아니면 심장병,뇌혈관 계통의 그 한가지가 우리를 죽게 만든다고 한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것은 약 이십오년 전이다.그녀의 남편도 미국인이고 또 내 남편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우리들은 만나자마자 가까워졌다.그후로 우리들은 한달에 두어번은 꾸준히 만나왔다.나중에는 남편들도 함께 합세를 했다.
그녀는 미인은 아니지만 동그란 얼굴과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귀엽고 아담하게 생긴 여인이다.옛날 어른들이 왕후장상 같은 팔자가 가장 좋은 팔자라고 했는데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어릴때 중국에서 넘어와 처음엔 숫한 고생을 했지만 좋은 남편을 만나 단번에 신데렐라가 되고 그야말로 팔자를 고친 그런 케이스였다.중국에서 어릴때 배운 영어 덕분에 미국 은행에 취직을 해서 거기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그녀의 사주가 원숭이 띠에 원숭이 달에 원숭이 날 거기다 시까지 같다는 얘기를 듣고 아!그렇구나 하고 함께 듣던 모든 친구들이 고개를 끄떡였다.사주팔자에 해와 달,날짜와 시까지 같으면 최고의 사주라고 한다.
그녀에게 내가 인간적으로 점수를 준다면,미국에 와서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 시켰다는 점이다.남편이 고위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늘 유명한 오페라나 클라식 콘서트등에 초대 받아 다녔다.그야말로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도 귀부인이었다.미국에 살면서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애 비해 정신적인 빈곤을 느끼던 나는 내심 그런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더구나 도시에 살지 않고 교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음악회나 오페라를 보러 일부러 장시간 운전을 해서 간다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한국에 살때는 가난하기는 했으나 문화생활에서는 여기보다 단연 우위였다.빠듯하게 살면서도 좋은 외국영화나 음악회가 열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만사를 제치고 가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다.나는 사십년 이상을 미국에 살아도 아직도 하루 한끼는 밥과 김치를 먹어야 속이 편하고, 친구들과 한국말로 수다도 떨어야 사는 맛이 나는데,그녀는 이제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니 한국인이라기보다 거의 미국인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다.
작년 여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결혼 오십주년을 맞아 금혼식을 치뤘다.옛날 사진들이 영상으로 나왔는데,그 젊음의 찬란하던 모습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우리 모두가 한때는 저렇게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는데¬¬---,지금은 모두 늙고 병들었다는 것이 또 한번 슬프게 가슴을 쳤다..인간은 한치 앞도 볼수 없다더니 그 말이 실감난다.아무리 돈이 많고 성공한 삶을 산다고 해도 죽음 앞에 초연한 사람은 없다.억만금을 주어도 자신의 삶을 단 하루도 더 연장할수 없는 것이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의 운명이다.그녀 역시 처음엔 방황도 했고,하나님을 원망도 했고,왜 하필이면 나 일까를 억울해 하며 절망과 공포속에 떨었을 것이다.나 역시 십년 전에 자궁암 진단을 받고 한동안 내 정신이 아니던 때가 있었다.다행히 초기여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 완치를 한 경험이 있다.그래서 그녀의 심정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수있다.그러다보니 지금의 내 삶은 보너스의 삶이요 덤으로 사는 삶이기에 더 감사한 삶이다.그녀 역시 병을 얻고 일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좋은 신약을 복용하고 거의 폐암은 완치가 된 상태이어서 그녀 가족이나 친구들도 한시름 놓은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심한 후유증이다.밥맛이 없고,기운이 없고,의욕이 없다.그 약이 항암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기가 막힌 것은 앞으로 살고 싶다면 그약을 죽을때까지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할때 우리는 불행하다.아침에 일어나서 환한 햇살이 창문으로 비쳐들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져귈때,아!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을 시작할수 있다는 이 평범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맛 있는 한잔의 커피와 고소한 토스트 한쪽과 달콤한 과일 몇조각을 들고,우리 말로 인쇄된 신문을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읽을수 있다는 것이 더 할수 없는 행운이다.이것이 또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누군가가 말했다.진정한 승자는 돈도,명예도,권력을 가진자가 아니라 최후까지 건강을 가진자라고.나이가 들어가면서 날마다 이말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오늘도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
부디 하루 빨리 건강을 찾고 예전처럼 환한 미소로 친구들에게 달려와 달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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