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물교환 시대를 거쳐 화폐로 거래를 형성하면서 인간들은 급속도로 이기심을 펼쳐나갔다. 화폐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대신 노동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으니, 화폐가 통용된 이후로 인간들은 육체적인 힘의 경쟁보다는 두뇌의 경쟁으로 역사를 써나갔다. 동물들에겐 장기나 바둑, 포카 등 두뇌를 그토록 써야하는 훈련이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교육 제도까지 만들어서 두뇌 훈련을 시킨다.
화폐가 어떤 물건이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지불되지 않고, 불법적인 목적에 통용되면 뇌물이 된다. 출근길에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며 조금이라도 빨리 가보려는 얌체를 본다. 때로는 카풀 레인에 혼자 천천히 운전하면서 경찰이라도 보이면 즉시 차선을 바꾸려는 얌체도 본다. 모두 인간 스스로 만든 경쟁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자신 소유의 화폐를 포기하려는 행동의 발로가 뇌물로 이어졌다. 뇌물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뇌물에 빛이라도 비추게 되면 범죄로 드러난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군 복무가 마지막이었다. 군 복무 시절, 사병 몇 명을 인솔해서 더운 여름에 군용 열차를 탄 적이 있었다. 군용 객차는 거의 텅 비어있었지만, 옆 칸의 일반 객차는 더위 속의 찜통이었다. 그래서 민간인들이 군용 칸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특별 임무가 있어서 나가달라고 했더니 이 민간인들이 “얼마 드리면 되겠습니까?”하고 묻는다. 불로 소득이 생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이 불로소득에 쉽게 몰락한다. 각자 사회에서 맡은 일에 대해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사회가 병든다. 작은 바이러스가 나중에는 크게 번져서 사회를 마비시키는 일도 역사에서 많이 배워왔다. 우리 개개인은 ‘사회’라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한번은 신참 사병의 형이 만나자고 했다. 돈 있는 집안의 자식들의 모임인 것 같았다. 거기에는 ‘있는’ 집안 자식들의 걸 프렌드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술도 못 마시는 나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그러면서 당시 돈 3만원을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안 받겠다고 하니 그냥 쓰란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 대한민국 최고의 무역회사를 운영하셨던 선친 덕분에 KNA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던 나 자신이, 선친이 계속 살아 계셨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되었겠구나 싶었다.
주저하지 않고 그 돈을 사병들에게 아무개 형이 주는 것이라며 회식하라고 줬다. 자기 동생이 자주 집으로 외출할 수 있도록 주는 일종의 뇌물이었다. 뇌물을 받으면 약해진다.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지기도 하고, 공돈이 생겨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뇌물 준 사람에게 코가 꿰어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어느 뇌물을 준 사람의 “이제 소금을 먹었으니 물이 안 켤까?”라는 이야기가 걸작이다. 자신의 자유를 뇌물과 바꾸는 일인데, 나중에 들통이 나면 그 귀한 자유는 사라진다. 뇌물을 바친 사람은 얼마나 조소의 웃음을 던지고 있을까?
옛날, 직장에서 일용직 백인 엔지니어가 한명 왔다. 일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크리스마스가 오니 웬 캔디를 갖다 준다. 고맙기는 하지만 받을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를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는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의 표시라고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자기 훈련과 성찰이 더없이 요구됨을 명심해야한다. 그래서 정 없어보이는 미국 사회가 정(情)과 연(緣)으로 얽혀있는 한국 사회보다 깨끗해 보인다.
한국은 땅이 좁아 서로 얽혀있다. 공직자는 연을 끊어야 올바른 직무 수행을 할 수 있다. 학연에 얽히고, 혈연에 메어있고, 지연에 엮여있으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한사람 건너 동창이고, 친척이고, 동향 사람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는 투철한 사명감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이다. 미국에서 “한번만 봐 달라”는 말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해야 빠져나올 수 있을까?
초유의 농협전산망 마비와 현대캐피탈 해킹 사태로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전산망에 구멍이 뚫린 데 이어 저축은행 임직원이 영업정지 조치 직전에 자기 돈을 먼저 빼돌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금융감독원까지 서로 부패의 고리를 걸고 있으니 가관이다. 법 집행을 해야 하는 판사마저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까지 해도 사표 한 장으로 처벌 없이 법망을 쉽게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사회가 너무 깊이 곪아있음을 말해준다. 세간에선 5월 21일이 종말이라고 하더라도, 뇌물과 부패의 겉은 꿀맛이지만 속은 쓰라린 맛임을 새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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