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수치스러운 평양방문을 마쳤다. 카터는 이번 방북 이후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으며, 미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과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카터는 김정일을 만나지도 못했으며,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죄나 비핵화 진전 등에 대해 김정일과 논의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오히려 카터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억제가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만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잔 숄티 북한 자유연합 대표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김정일 정권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한국전쟁을 연장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많은 미국 전문가들 역시 미국정부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카터의 행보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카터 방북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최근 북한의 대화공세에 카터 전 대통령이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의 대화공세는 작년 연평도 도발 이후, 아니 김정일 건강악화 이후인 2009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었다. 올해 70세를 맞이하는 김정일의 건강악화, 김정은 권력기반 형성과 내년 강성대국 달성에 대한 조급함, 국내경제 상황 악화 등으로 인한 북한의 대화에 대한 긴박감과 초조감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최근 한반도에서의 대화재개 분위기는 지난 1월 18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미중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이 필요하다는데 합의하였다. 또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 및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6자회담 재개가 필요하고, 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재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크게 3가지인데, 이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첫 번째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반대, 두 번째는 김정일 정권교체 반대이고, 마지막이 북한의 비핵화이다. 북한 핵 폐기가 마지막 순위인 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고 인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중국은 북핵문제에 있어서 김정일의 결단이 중요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차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 개선에 1년 이상이 걸렸으나, 2차 핵실험 이후에는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은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북핵문제에 있어서 김정일의 결정을 중시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태도도 다소 누그러졌다. 미국에게 있어서 북한의 정권교체는 정책적 우선순위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현재 북한과 중국의 6자회담에 대한 적극적 태도로 인해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수월하지 않은 정책적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6자회담에 적극적인 중국을 고려하여, 6자회담의 선행조건으로 남북한 대화를 우선시하고 있다. 결정권을 한국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북한 핵 폐기를 위해 유용한가에는 의문이 든다. 현 6자회담의 틀로써는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북한 핵의 폐기는 고사하고 이에 대한 방지 및 관리도 힘들어 보인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는 핵무기를 비롯한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가 명시되었으나, 2007년 2.13 합의 공동성명에서는 핵무기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핵군축 회담을 통해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에 불거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역시 6자회담 합의내용에서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6자회담 틀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노후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정도에 불과하다.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확보되기 전에는 대화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작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우리 군과 민간인은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북한의 비핵화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아무런 진전과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6자회담의 재개는 결국 내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의 3번째 핵실험을 위한 핑계거리가 될 뿐이다. 대화에는 시기와 상황이 있다.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
김현욱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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