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희 교사(뉴커머스고교·뉴욕한인교사회 특수교육분과위원장)
전국 자폐인의 달인 4월을 맞아 필자는 가족과 함께 23일 필라델피아로 가벼운 여행을 떠난다. 이 글이 실리는 25일쯤이면 이미 여행을 끝마치고 다녀온 뒤겠지만… 자폐인의 달이니만큼 발달장애인을 위한 여러 행사가 많은데 필라델피아 있는 세서미 플레이스(Sesame Place)에서 자폐아동을 위한 특별행사가 있다고 해서 여행을 마음 먹게 됐다.
특히 에반이가 엘모(Elmo)와 빅버드(Big Bird)를 좋아하기에 벌써부터 환하게 웃음꽃을 피울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많이 기대가 된다. 에반이와 여행을 계획하는 그 순간부터 필자는 여느 부모처럼 준비할 것이 많아진다. 옷이나 기저귀,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간간히 먹을 간식 등을 세심하게 머리 속으로 몇 번이나 그린 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준비를 해야 모처럼 떠난 여행이 즐겁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반이와 같이 발달장애를 지닌 아이라면 부모 입장에서는 남들의 눈총을 받을 준비를 먼저 굳게 해야 한다.
평소에는 명랑하고 활기찬 에반이지만 자신이 피곤하거나 답답할 상황이 오게 되면 공공장소를 막론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울곤 한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몸이 힘들면 울면서 보채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비장애아들의 경우에는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을까" 또는 "여행 다 끝나면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거나 "다른 사람들
이 너 안 우니까 다들 예뻐하잖아" 식으로 말로 어를 수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고 언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에반이의 경우에는 한번 울기 시작하면 스스로 지쳐 그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게 되면 엄마인 필자는 이제 곧 4세가 되어 제법 몸이 튼실한 에반이를 진정시키느라 온 몸의 근육을 동원해 아이를 붙잡으면서도 주변의 따끔한 시선에 한층 마디마디 근육이 위축되곤 한다. 자폐라는 장애는 그 증상이 참으로 다양하다. 그 다양한 자폐 증상 분자의 공통분모는 현저하게 지연된 사회성일 뿐 그 외의 증상은 자폐장애인 개개인에 따라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자폐
의 가장 일반적인 증상으로 알려져 있는 몸을 반복적으로 앞뒤로 흔든다던가, 손가락이나 손바닥을 눈앞에 놓고 계속 까딱거리는 것 같은 행동이 모든 자폐인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에게는 이러한 증상만이 자폐의 특징으로 부각돼 있어서 에반이처럼 전형화 된 자폐의 모습이 보여지지 않는 아이라면 소위 멀쩡한 애한테 왜 장애가 있다고 하느냐라는 타박을 받기 일쑤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에반이가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멀쩡하게만 보이는 아이가 참으로 버릇이 없다 싶을 것이고 버릇없는 아이를 둔 필자는 애 버릇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한심한 엄마로 보이기 십상이다. 지난달에는 무척이나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등에는 에반이의 학교 가방을 메고 한 손으로는 접은 유모차와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에반이를 대롱대롱 붙잡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참으로 많이 왔기에 우산으로도 모자라 에반이와 필자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쫄딱 젖어있는 상태였다. 달리는 지하철을 좋아하는 에반이는 지하철이 오는 것을 보려고 내 손을 뿌리치고 자꾸 플랫폼 앞쪽으로 가려하고 그런 에반을 저지하려고 온 몸을 이용해 쿵푸를 하고 있는 중에 어떤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너 자꾸 애를 그런 식으로 방치해서 애가 지하철에 치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면서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같으면 이러한 불친절한 참견이라도 웃는 낯으로 매끄럽게 넘겼겠지만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이 얼굴에 마구 흘러내리면서도 에반이를 보호하려고 투쟁 중이던 상황이었기에 필자의 분노는 마음속에 꾹 눌러놓았던 화산이 폭발하듯 터지고 말았다. "우리 아이는 자폐가 있다. 내가 말을 해서 가만히 있을 아이라면 벌써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 제발 모르면 참견을 안 했으면 좋겠으니 물러가 계시라"고 지하철역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지하철이 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쫙 갈라져 자리를 비켜주며 먼저 타라고 했던 씁쓸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 쉽게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에반이를 수만 가지 선입견으로 보는 일반인들을 위해 필자는 여행을 갈 때면 에반이의 자폐 진단이 있는 의사 소견서와 수십 장의 특수 명함을 꼭 챙겨가곤 한다. 이 특수 명함에는 ‘우리 에반이는 자폐 장애를 안고 있다. 나는 에반이의 엄마로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자폐라는 장애의 특성상 아이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려드리고자한다.
만약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여행이 많이 힘드시더라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해주시면 참 감사하겠다’라는 짧은 설명의 글이다.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 필자는 주위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먼저 하고 이 명함을 나누어주어 조금이나마 여행을 즐겁고 편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다음 달이면 4세가 되는 어린 아들 에반이를 옆에 끼고 많은 곳을 누비고 다닌다. 자폐라는 장애는 눈에 쉽게 보이지 않기에 일반인들의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러한 일반인의 배려를 얻으려면 자폐아의 특성이 어떻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아이가 자폐가 있다고 해서 창피해하며 집에 꼭꼭 숨어만 있으면 아이를 보는 일반인들의 다른 배려를 어떻게 얻어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참견과 눈총을 많이 받더라도 마음으로 꾹 참아내며 찾아다니고 친절하게 자폐라는 것이 어떤 장애인지를 일반인에게 알리는 것이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좋은 치료법이라고 믿는다. 이번에도 분명히 필라델피아 여행에서 많이 웃고 마음에 상처도 제법 받고 올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친정 엄마가 누누이 말하던 것처럼 아이 키우면서 천만 번 힘들어도 아이의 한 번 웃음에 그 힘든 것이 모두 사라진다고 했던 그 말을 새내기 엄마로서 절실하게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많이 힘들어도 에반이의 환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며 즐겁게 여행을 하고 필자는 돌아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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