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전 노인들을 위한 정부의료보험 ‘메디케어’ 법안에 서명한 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의 약속을 선언했다 :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노인들은 치료를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질병도 이들이 평생 모아온 재산을 탕진시키지 못할 것이다”
노인건강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아온 메디케어가 도마에 올랐다. 정부 보험을 없애고 보험료를 지원할테니 노인들도 민간보험에 가입하라는 ‘민영화’ 추진이다. 5일 공개된 연방하원 공화당 2012년 예산안 중 가장 위협적인 핵심요소의 하나다.
워싱턴의 예산전쟁이 점입가경이다. 통과시한을 6개월 이상 넘긴 2011년 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첫 라운드가 아직 끝나지도 못했는데 제 2라운드, 2012년 예산전쟁이 미디어의 요란한 각광 받으며 시작된 것이다.
자칫 연방정부 폐쇄사태를 초래할 1라운드의 대결도 치열하지만 진짜 중요한 싸움은 2라운드다.
1라운드의 쟁점은 삭감의 폭이다. 6일 현재 민주당은 330억 달러에서 더는 못 깎는다고 버티고 공화당은 최소 400억 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겨우’ 70억 달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해 정부 문을 닫게 생겼는데 비해 2라운드는 삭감의 규모부터 몇 조 달러로 대폭 늘어나는 통 큰 싸움이다. 쟁점도 어디서 얼마를 깎느냐 만이 아니다. 양당의 통치 철학으로 맞서는 정부의 규모 및 역할 변화다.
그래서 2라운드는 양당 모두에게 단순한 예산전쟁에 그치지 않고 2012년 대선의 결과까지 걸린, 꼭 이겨야할 필사의 전투다.
2012 회계연도 예산논의를 시작부터 전면전으로 확대시킨 불씨는 공화당 예산안이다. 공화당의 ‘떠오르는 별’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이 작성해 발표한 예산안은 연방정부의 엄청난 부채해소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번영으로 가는 길”이란 제목이 붙은 라이언의 플랜은 앞으로 10년간 6조달러 지출삭감을 단행하여 2040년부터는 흑자예산으로 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바마의 새 헬스개혁법을 폐지하고 교육·과학연구·질병통제에서 펠그랜트, 공무원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출에 대한 삭감 혹은 동결과 함께 복지제도 및 세제 개혁 등의 균형예산 실현 방안이 담겨 있다.
천문학적 숫자가 난무하는 복잡한 예산안이 엊그제 발표와 함께 미 전국의 비상한 관심을 끈 것은 이 예산안이 메디케어 ‘개혁’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민영화로 바꿔 1957년 이후 출생자가 65세가 된 후 민간보험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하면 그 보험료 중 일정부분을 정부에서 보조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정부운영 노인의료보험 메디케어는 아예 사라진다는 뜻이다.
“라이언의 메디케어 개혁은 연방지출 삭감에 도움이 될까? 물론이다. 수혜노인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절대 아니다” - MIT 교수 안드레아 캠벨의 평가다. 민간보험 쇼핑부터 쉽지않은 노인들에겐 재정부담이 커지고 의료혜택은 줄어들어 은퇴 후 재정 불안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메디케어 민영화는 결국 연방정부가 의료비 상승의 고삐를 잡는 노력을 하는 대신 관련된 모든 골칫거리 부담을 수혜노인 각자에게로 넘겨주겠다는 셈이다.
다행히 현재로선 라이언 예산안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선 통과할 수 있겠지만 민주당 주도의 상원에서부터는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앞으로 예산안 토의는 라이언의 제안을 주요 쟁점으로 삼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그리고 소셜시큐리티에 칼질하지 않고는 시급한 당면과제인 부채 해결의 묘안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메디케어와 함께 저소득층 의료혜택인 메디케이드(메디칼)에 대해서도 변경에 의한 대폭 삭감을 제안한 라이언의 예산안에 대해 민주당은 “노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 가혹한 제안”이라고 맹공의 포문을 열었지만 공화당 의원들 역시 그리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수천만 수혜자를 분노케 하는 메디케어 ‘폐지’는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한 도박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75%는 메디케어 삭감조차 반대한다. 지난 달 CBS조사 결과다.
지금까지 양당 지도부와 오바마, 어느 누구도 손대기 겁내온 메디케이드 개혁을 제안한 자체만으로도 라이언의 용기는 인정할 만하다는 평가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라이언의 세제개혁에는 대기업과 최고 소득층 개인에 대한 대폭 감세가 포함되었다. 부유층의 이익을 감세로 보호하면서 사회의 가장 약자인 저소득층과 노인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을 용기라고 할 수 있을까.
예산 균형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기위해 특권층은 보호하고 약자를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번영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이번 라이언의 플랜은 본인의 표현처럼 “예산이 아닌 신념”으로 공화당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작은 정부’ 실현을 위한 정치선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은 정부, 큰 정부를 떠나 모든 정부의 존재이유는 전 국민에게 기본적 경제안정을 보장하기위한 공정한 사회의 실현이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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