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그로 인한 최악의 원전 폭발사고와 방사능유출이라는 연쇄적인 사건이 있었다. 상황이 심각한지라 급기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직접 나서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대국민 영상메시지까지 발표했지만 일본인들의 심리적 불안감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방사능 공포가 만연하면서 그동안 세간에는 일본인들의 엑서더스(exodus)가 있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는데 최근 그 조짐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방사능 공포에 휩싸인 일본인들은 비교적 일본과 가까운 부산이나 서울 강남지역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주택 임대 및 매입문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단기간 체류를 원하는 일본인들은 TV 냉장고 등 전자제품이 갖춰져 있는 곳을 원하지만 상당수는 장기임대는 물론 심지어 매입문의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직 그 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예 한국으로 귀화하기 위한 문의도 최근 들어 2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필자처럼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소설 등 문학작품 속의 인물이 어떠한가에 관심이 많다. 작중인물들이 내뱉는 말과 행위를 추적하면서 그들의 심리를 파악하려 한다. 이번 일본 대지진 발생 후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본 인물은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 도쿄전력(TEPCO) 시미즈 마사다카(淸水正孝) 사장이다.
전후 일본 최대의 재앙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동안 일본 총리와 도쿄전력 사장이 보여준 리더십은 실망 그 자체였다. 리더십은커녕 부정적 팔로워십에 가까웠다는 표현이 옳을 성 싶다. 간 총리는 지진 발생 이튿날 재해현장을 방문했지만 헬기를 타고 한번 쭉 둘러보았을 뿐 피해주민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고 또 열흘째 되는 날에도 현장 방문을 계획했지만 이 역시도 취소되었는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가 그 이유였다고 한다. 간 총리는 총체적인 국가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국가 피해와 국민 희생을 최소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했지만 아쉽게도 총리에 걸맞은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지진과 쓰나미 악몽으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일본인들 중 30여명이 임시 대피소에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의료품 부족 등으로 한 명씩 죽어 나갔다.
도쿄전력 시미즈 사장은 행보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문학작품 속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당연히 세계적인 캐릭터인 돈키호테와도 비교되는 유일무이한 그런 인물일 게다. 물론 부정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의 국운과 직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일본 언론들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보를 일일이 언급할 순 없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시미즈 사장과 간 총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들 모두가 전면에 나서 사고 진화에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살짝 한 발짝 뒤에 물러나 있는 형국이다. 간 총리는 국무를 책임지는 사람이고 또 시미즈 사장은 사건 발원지의 총책임자이지만 리더십이 결여된 이들의 행동을 보면 마냥 아쉽기만 하다. 도쿄전력의 경우, 시미즈 사장대신 부사장이 임시대피소를 방문하는 등 전면에 나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 총리도 지진 발생 초기에는 기자회견을 하며 TV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방장관에게 자신의 역할을 대신 수행케 하고 있다.
리더십은 없고 팔로워십만 있다!는 표현은 일본 총리와 도쿄전력 사장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십분 이해하지만 앞으로 일본인들이 좀 더 역동적이고 활기찬 개개인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문화의 우수성도 익히 알고 있고 또 이번과 같은 대재앙 속에서도 차분하게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도 높게 사지만 임시 대피소의 추위와 배고픔에도 아우성치지 않고 조용히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그들의 차분함은 한편으로는 감동적이지만 왠지 팔로워십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피해복구 시기를 올해 말로 예상하면서 일본경제의 본격적인 성장을 내년 상반기로 전망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지구의 역사가 전쟁 등 아픔을 통해 건강해진다고 말이 있는 것처럼, 현재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아픔을 일본인 모두가 함께 딛고 일어설 때면 그간 잠자고 있던 거대한 일본경제도 서서히 기지개를 켤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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