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말, 동유럽 국가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씩 소련에 의해 공산화되었지만 80년대 말에는 정반대로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되는 역(逆)도미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우리나라 외교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남북통일이라면, 90년대 동유럽 국가들이 추구한 외교의 최고목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가입이었다. 과거 소련의 붉은 군대에게 짓밟힌 아픈 역사가 있는 동유럽 국가들로서는 NATO가입이야 말로 향후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는 최선의 길이었다.
냉전 시대 때 서유럽에 NATO가 있었다면 동유럽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있었다. 소련의 붕괴로 바르샤바조약기구는 1991년 폐지되었지만 NATO는 그간 회원국 수를 꾸준히 늘려 2009년에는 창설 60주년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구(舊)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국이던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등 거의 모든 동유럽 국가들은 그간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NATO 가입을 완료한 상태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요즘 러시아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음을 인식한 듯 NATO와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그 예로, 2009년 러시아가 미국, 유럽 그리고 구소련국가를 포함하는 ‘NATO대체 안보기구 신설’을 제안한 것과 2010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에서 NATO군이 사상 처음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행진한 것을 언급할 수 있다.
NATO 동맹의 중심이 되는 핵심조항은 제5조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약국은 [...] 한 국가 또는 여러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행위로 간주하며, 조약국 중 한 국가가 그러한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 집단의 자위권(自衛權) 발동에 따라 나머지 조약국들은 [...] 무장한 군대사용을 포함한 모든 행동을 [...] 즉각 활용함으로써 공격받은 국가를 지원한다.”
이 말은, 어떤 국가가 NATO의 한 회원국을 공격할 경우 모든 회원국은 이를 NATO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NATO헌장 제5조를 적용해 공동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조항이다. 이 조항을 보면 국제사회의 질서가 얼마나 냉엄한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만약 NATO를 국가가 아닌 ‘개인’을 회원으로 하는 조직이라고 가정해보면 이해가 더 쉽다. 즉 NATO에 속한 한 회원이 어떤 외부사람으로부터 구타를 당했을 경우, 모든 회원들은 이를 NATO 전체 회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으로 그 사람을 손보겠다는 의미이다. 주먹세계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개인 간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내용이 바로 유럽의 가장 대표적인 국제기구 중 하나인 NATO헌장 제5조에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개인 간의 질서와 국가 간의 질서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개인은 평등하고 또 개인 간의 갈등은 상위의 개념인 국가의 중재나 법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간에 분쟁이 있을 경우 어떠한가! 국가 간의 분쟁은 바로 힘의 논리가 적용된다. 국가를 중재하는 상위의 개념은 없다. 물론 UN 안보리,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국제기구도 있지만 대개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북한의 핵무기가 좋은 예이다. 북한 지도부는 미국이 수천 개가 넘는 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북한은 하나도 못가지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 간의 질서에서 즉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능할지 몰라도 바로 이것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강대국의 우월적 권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강대국을 포함한 많은 우방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또 동유럽 국가들처럼 자국의 안전을 위해 NATO 등 국제기구에도 가입한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개인 간의 질서로 착각하고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한국의 대표적인 우방국인 동시에 비난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유럽에 있는 NATO는 유럽인들이 유럽국가들 중심으로 창설한 유럽의 대표적인 국제기구이지만 현재 NATO 최고사령관직은 미군사령관이 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인들은 미군철수를 그리 외쳐대진 않는다. 정반대로 루마니아 폴란드 등과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원하고 있다. 미군주둔으로 인한 경제, 안보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냉혹한 질서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우방국을 내치는 어리석음을 자행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외대 교수/ 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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