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리비아는 미국에게 그리 ‘중요한 나라’는 아니다. 국익의 큰 이해관계가 걸린 것도 아니고 안보에 위협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우디 같은 최대 산유국도 아니고 바레인처럼 미 함대가 정박한 전략요충지도 아니다. 리비아 석유의 미 수입량은 중단된다 해도 별 영향이 없을 만큼 극히 미미하고, 오히려 카다피는 테러지원과 핵개발을 포기한 2003년 이후엔 미국의 테러전쟁을 도와왔다. 시사잡지 아틀랜틱은 ‘미 국익관련 아랍권 문제 중 리비아는 7위에 불과하다’고 꼽는다.
리비아 석유에 대폭 의존하는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에게 그곳의 정세불안은 유사시 난민유입까지 걱정해야 하는 주요 관심사지만 미국은 좀 다르다. 그러나 수퍼파워 미국이 외면할 수 없는 민간인 보호라는 ‘인도적 개입’으로 이제 리비아 사태는 미국의 전쟁이 되었고, ‘리비아 전쟁’은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 단행된 리비아 공습은 오바마로선 전혀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간, 2개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아랍권에서 주요 이해관계도 없고 승산은 더욱 없는 전쟁을 누가 시작하고 싶겠는가. 그동안 프랑스와 영국의 채근에도 묵묵부답이던 오바마는 지난 주 카다피가 반군점령지역 공격에 나서고 아랍연맹이 유엔안보리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지지한 후에야 마음을 바꾸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신중하게 숙고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리비아 공습엔 다음날부터 곧바로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제각기 자국 이해를 따지는 국제사회뿐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지지보다 공격의 소리가 한층 높다.
첫 비판은 연방의원들에게서 터졌다. 전쟁을 시작하면서 의회에 사전승인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다. 오바마는 지상군 투입 없이 극히 제한적으로 단기간에 끝낼 ‘인도적 개입’이며 작전지휘권도 나토에 넘길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특히 민주당 리버럴 쪽에선 “탄핵사유”까지 들먹이며 강하게 반발한다.
미 헌법상 전쟁선포권한을 가진 것은 연방의회다. 그러나 1950년 트루먼이 의회승인 없이 한국전쟁을 시작한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은 독자적으로 군사작전을 명령해왔다. 존슨의 베트남전, 아버지 부시의 소말리아 개입, 클린턴의 코소보 폭격이 모두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 행해졌다. 전면전 아닌 범위와 기간과 임무가 제한된 군사작전은 ‘비상시’ 의회승인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우성칠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오바마가 의회의 사전승인을 안 구한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은 아니지만 위헌은 아니라고 대부분 헌법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요즘 워싱턴 정가는 오랜만에 ‘초당적’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한 마음으로
‘오바마 비판’에 나선 것이다. 진보파와 보수파에 티파티까지 대통령을 둘러싼 모든 주요그룹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내용은 제각기다 : 왜 누구 마음대로 전쟁을 시작했느냐, 너무 늦게 대응했다, 너무 나갔다, 너무 소극적이다, 명확한 출구전략은 세웠느냐, 개입전략도 신통치 않다, 이 재정난에 돈을 또 얼마나 쏟아 부으려 하느냐…리버럴 진영에선 “전범이 되려느냐” “노벨평화상 반납하라”는 극언이 튀어나오고 보수진영에선 ‘최고사령관(commander-in-chief) 아닌 최고구경꾼(spectator-in-chief)’이라는 뉴트 깅리치의 야유에 박수치며 오바마의 결단력 부족을 공박하고 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나쁘다, 더 나쁜 것은 그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란 옛말이 알려주듯 온갖 비판을 잠재울 특효약은 한 가지, 승리뿐이다. 그것도 오래 끌면 안 된다. 속전속결이라야 한다. 그런데 이번 리비아 전쟁은 무엇을
‘승리’라고 해야 하는 지부터가 불확실하다. 민간인 보호가 목적인데 현실적으로 카다피 축출 없이는 민간인 보호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 작전 초기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대답은 나오지 않은 채 의문만 줄을 잇는다 : 미군의 정확한 임무는? 얼마나 걸릴까? 경비는? 실행 가능한 출구전략은? 인도적 개입의 한계는? 카다피 항전이 장기화 되면? 만에 하나 카다피를 축출한다면 집권할 반군은 정확히 누구인가? 다시 내전이 발발해 민간인 보호가 필요하면 미국은 또 개입할 것인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는 오리무중 ‘리비아 전쟁’에 달린 것은 리비아의 앞날만이 아니다. 자칫 오바마의 정치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 나토에 작전권을 넘긴다 해도 미국이 다국적군에 남아있는 한 리비아전쟁은 돈, 기술, 인력을 보유한 미국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아직 미국내 여론은 오바마 편이다. 지난 주말 CBS조사 결과 ‘민간인 보호위한 리비아 공습’에 대한 지지는 68%에 달했다. ‘민간인 보호’를 빼고 질문한 갤럽조사에서도 지지가 47%로 반대보다 높았다.
리비아사태가 백악관의 희망대로 카다피 축출까지 신속히 마무리 된다면 오바마는 ‘새벽3시 비상전화’로 비유되어 온 외교력 결핍의 약점을 극복하고 위기관리능력을 갖춘 강력한 리더로 올라설 것이다. 그러나 지지부진 계속되며 또 하나의 전쟁으로 확대된다면…오바마에겐 재선을 위협하는 끔찍한 악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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