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인의 기억으로도 “30년 안에 캘리포니아에 빅 원이 올 것”이란 지질학계의 경고를 처음 접한 게 20여 년 전이다. 그렇다면 “그날”은 이제 10년도 채 안 남았다는 말인가.
규모 9.0의 강진, 40피트 콘크리트 방파제를 단숨에 넘어 제트기의 속도로 덮쳐든 쓰나미, 그리고 이제 방사능 누출의 원전사고까지 일본 대지진의 참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재산피해는커녕 아직 인명피해도 파악 못하고 구호품 배달조차 안 되는 재난의 현장에서 일주일 가까이 전 세계가 눈을 떼지 못한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특히 그렇다.
그들처럼 바닷가 지진대 위에 대도시를 이루고 원자력 발전소를 곁에 둔 채 사는 우리에게 지난 11일 발생한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남의 일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지각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남가주에서만 매년 1만 번의 지진이 발생한다. 대부분 진도가 약해서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다. 지구표면을 조각보처럼 잇고 있는 거대한 땅덩어리인 10여개 판들의 움직임 때문에 발생하는 지진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도리는 없다. 태풍이나 눈보라처럼 정확한 예보가 있어 대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별다른 징조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지진은 아마도 인간을 향한 자연의 가장 무례한 표현일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무력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생존을 위한 대비뿐이다.
1856년 LA 60마일 북쪽에서 규모 8.0을 넘는 강진이 발생했다. 희생자는 2명뿐이었다. 당시엔 미개척지였던 그곳에서 지금 같은 지진이 발생한다면 사망자는 2만 명을 넘어설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진 그 자체가 아니다. 무너지는 빌딩과 프리웨이, 터지는 가스관, 누출된 방사능…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이다. 대비할 여지가 있다는 뜻도 된다.
수세기동안 계속되는 자연재해 속에서 공동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온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공동체의식과 질서의식이 투철한 사회로 진화되어 왔다. 여기에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최대로 도입한 일본의 철저한 대비가 그러나 자연재해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그것이 모두를 두렵게 한다.
지난해 아이티에 강진이 덮쳤을 때 그 피해의 참혹함에 놀라고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면서도 한편 훨씬 안전한 우리의 건물과 대비플랜에 위안을 얻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전대국’ 일본의 대지진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9.0 지진에 대비하고 있는가. 무엇을 가장 우려해야 하는가:고층빌딩? 빈민지역? 급수시스템? 새로운 주택단지? 어떤 대비책이 가장 신뢰할 만한가.
플랜은 크게 두 가지다 :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건물과 기간시설을 설계하고 보강하는 대비책과 지진발생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피를 위한 훈련과 계몽교육이다.
71년의 실마 지진, 89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94년 노스리지 지진 등을 겪으며 캘리포니아의 건축안전규정은 대폭강화 되었고 공공건물의 내진보강 공사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주내 건물의 80% 이상이 내진규제 강화 이전에 세워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아파트, 1960년대 이전에 지은 LA의 콘크리트 주택과 상가건물은 강진발생시 견디지 못할 것이다.
더 취약한 것은 프리웨이에서 급수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노화된 기간시설이다. 강진이 발생하면 최소 몇 달간은 전기도, 수도도 끊어진 채 견디어야 할 것이라고 칼텍의 지질학자 루시 존스는 예상한다. 기간 시설들이 너무 낡아 보수가 아닌 신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을 통한 대피훈련은 실시되고 있지만 지난 한해 훈련에 참가한 캘리포니아 주민은 790만 명에 그쳤다. 불참자가 3천만 명이나 되니 일본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그나마 캘리포니아는 나은 편이다. 유타와 오리건은 학교건물의 절반이상이 지진대비 안전규정에 미치지 못하고, 일부 지질학자들이 대지진 발생가능지역으로 꼽는 미 중부의 주민들에게 ‘지진’은 먼 나라 이야기다.
미국의 재난대비 상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이미 낙제판정을 받은 바 있다. 아직도 크게 개선되지 못했고 지진대비는 서부에서 조차 우선순위에서 자꾸 뒤로 밀리는 실정이다. 요즘 같은 각 주정부의 극심한 재정난 속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의 경고에도 바뀌지 않고 여전히 대비에 소홀하다면 너무 무모하다. 이번에도 우린 아니라는 안도의 긴 숨이나 “설마”의 안일한 무관심은 위험하다. 지질학자들이 강조하는 미국 내 지진발생은 “If”가 아닌
“When”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엊그제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재앙은 언제나 손 쓸 틈 없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왜 한 순간에 오는 걸까요? 너 나 없이 더 겸손하고, 더 살피고, 더 조심하라는 뜻 아닐까요?” 정부에게도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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