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는 동유럽은 물론 전 유럽에서도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이다. 특히 루마니아를 가로지르는 카르파티아(Carpathia)산맥에는 전 유럽에서 군생하는 식물군의 1/3 이상이 분포하고 있고 또 곰, 늑대, 붉은 여우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미국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야생 곰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두 국가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또 이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의미일 게다. 미국에서는 흑색 곰(black bear)이 그리고 루마니아에서는 갈색 불곰(brown bear)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세계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유럽에서 야생 곰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나라는 루마니아이다. 루마니아 동물학자들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중심으로 현재 약 6,000-7,000마리의 곰이 서식하고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동물학자들은 “미국 내 흑색 곰의 개체수가 지난 20년 동안 1만여 마리에서 3만 8천 마리로 늘어나면서 먹이를 찾아 주거지역까지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곰이 많아서 그런지 루마니아 인들에게 카르파티아 산맥의 야생 곰에 대해 물어보면 마치 일상생활의 일부인양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들려준다.
90년대 초, 필자는 난생 처음으로 야생 곰을 보았던 루마니아 휴양도시 시나이아(Sinaia)에 휴가를 갔었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진주’로 불리는 이 도시는 해발 800-1,000m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은 수도 부카레스트(Bucharest)의 기온이 한 여름에 섭씨 35-40도까지 올라갈 때에도 초가을의 날씨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제법 쌀쌀해 긴 옷을 준비해야 한다.
당시 필자가 묵은 호텔은 해발 1,400m에 위치한 어느 한 호텔이었다. 그곳에서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머물면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음료수를 사기 위해 차를 몰고 시나이아 시내로 내려가는데, 하산 도중 아기 곰 한 마리를 보았다. 재빨리 자동차를 세우고는 아기 곰을 잡으려고 했지만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이미 산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루마니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래 곰이라는 동물은 아기 곰이고 어른 곰이고 아주 빠르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느린 것 같지만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는 것만큼이나 빠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라톤 선수가 달리는 평균시속이 19km이고 또 사이클 경기에서 자전거 속도가 30km인데 비해 곰은 시속 50km 전후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
2006년 여름, 필자는 부카레스트에서 기차를 타고 시나이아 시 근처에 있는 부체지(Bucegi) 산으로 향했다. 마침 기차 안에서 프레데알(Predeal) 시에 있는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는 루마니아 한 가족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50세 중반 정도 되는 루마니아 중년 신사는 자신이 몇 년 전에 공무원이었지만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또 자신의 가족이 머무를 별장은 카르파티아 산맥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는 등등 자기 가족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던 도중 필자는 별장이 카르파티아 산맥의 중턱에 있으면 곰이 내려오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조금 생각하는가 싶더니 작년 여름에도 별장에 곰이 내려왔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 모든 가족이 여느 때처럼 식사를 마치고는 TV를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또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그의 어머니가 거실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고 한다. 당시 별장이 위치한 곳은 카르파티아 산맥 중턱이라 기후 변화가 심해 그날 저녁에도 가랑비가 내리면서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화장실에 갔다 거실로 돌아온 어머니는 “애비야!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키가 아주 크고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우리 집 안마당을 지나가기에, ‘부너 쎄아라(Bună seara!; Good evening!에 해당)’라고 인사를 건넸는데도... 글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더구나!”라고 말했다고 했다. 순간 그 중년 신사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 살펴보았지만 인기척은 없었고, 잠시 후 안마당을 살펴보았는데 그곳에 커다란 곰 발자국이 카르파티아 산맥의 정상을 향해 새겨져 있었다고 했다.
만약 곰이 마을로 내려오는 도중에 자기 어머니를 만났더라면 아마도 큰 봉변을 당했겠지만 근처 민가에서 배를 채운 후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천만다행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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