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연방대법관도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난주가 그랬을 것이다. 겨우 스무살에 아프간에서 전사한 어린 군인의 장례식 주변에서 “군인을 죽게 한 하나님께 감사”등 악담 담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며 슬퍼하는 가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댄 종교집단의 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일에 누가 보람을 느끼겠는가.
지난주 연방대법원은 캔사스주 웨스트보로 처치의 신도들이 매튜 스나이더 일병의 장례식장 밖에서 벌인 피켓시위를 미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했다. 비정상적인 집단의 악의에 찬 표현조차도 법의 보호를 받는 기본 권리임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다.
평소 진보-보수의 이념대결로 양분되었던 대법원으로선 이례적인 8대 1, 만장일치에 가까운 판결이었다. 감성적으로는 내키지 않는 어려운 결정이었을지 몰라도 이성적으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케이스였음을 말해준다.
웨스트보로는 20년 가까이 반동성애 시위를 벌여 온 작은 교회로 신도 70여명은 대부분 가족과 친척이며 이번 재판의 교회측 변호사도 목사의 딸이었다. 몇년전부터 이들이 타겟으로 삼은 것은 전사군인의 장례식이었다. 유족들에겐 가장 고통스런 순간을 세간의 관심을 끌 홍보의 기회로 비열하게 이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무려 600여 장례식 주변서 시위를 벌여온 이들의 울긋불긋한 팻말엔 미군의 전사가 동성애를 허용한 미국에 내린 신의 처벌이라고 주장하는 갖가지 저주의 문구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2006년 1천마일 밖 메릴랜드로 날아가 동성애자도 아닌 스나이더 일병의 장례식 주변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버지 앨버트 스나이더는 고의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가한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500만 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보통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 재판인 1심에서 승소한 스나이더는 그러나 법관들만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항소심과 그리고 이번 대법원에선 패소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유일하게 반대를 표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자유로운 공개토론을 보장하는 국가적 사명은 악의에 찬 언어폭력에 대한 면허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며 얼리토가 “상식을 가진 유일한 대법관”이라는 여론의 지지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웨스트보로 집단의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판결문을 통해 “언어는 강력하다…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고 이번 케이스처럼 엄청난 고통을 가할 수도 있다. 우리는 말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그 고통에 대응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며 미국은
“공개토론을 억압하지 않기 위해 공공이슈에 대해 혐오스런 표현도 보호하기로 선택한 국가”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타인에 대한 침해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합리적 제한까지 배제하지는 않았다. 로컬 법으로 장례식장 시위의 때·장소·방법을 규제하는 것은 막지 않은 것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정 역사를 기억한다면 이번 판결은 전혀 의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면 깜짝 놀라 미 전국이 격한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것이다.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없다”를 핵심으로 한다. 국민의 가장 기본적 권리로 명시된 표현의 자유는 그렇다면 “절대적인가, 무한한가, 공공질서와 정부의 규제보다 우선 하는가” - 지난 220년 동안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와 의미는 끊임없는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다.
기본권을 빼앗긴 암울한 군사독재를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란 흠 없이 빛나기만 하는 성역이지만, 공권력의 억압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 민주사회에서 ‘표현 자유의 대가’는 생각보다 상당히 비싸다.
수차례 판결을 통해 대법원이 인정해야 했던 표현의 자유는 보통사람의 정서로는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허다했다. 인종차별집단 KKK의 불탄 십자가를 앞세운
증오의 시위를 허용해야 했고, 나치집단 학살의 생존자들 거주지역에서 행진을 벌이겠다는 신나치주의자들의 기본권을 인정해야 했으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청년공산당 그룹의 데모도 ‘합법적’ 표현의 자유여서 막을 수 없었고, 섹스잡지 허슬러 매거진이 극우보수파 제리 팔웰 목사를 근친상간 주정뱅이로 패러디한 외설 광고도 수정헌법 1조의 보호영역에 포함시켜야 했다.
허슬러가 승소한 후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인생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플린트는 영화속에서 명언을 남긴다 : “수정헌법 1조가 나 같은 쓰레기까지 보호해준다면 당신들 모두를 보호해 줄 것이다”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는 이를 남용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에 의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용납하기 힘든 표현을 보호하는 대법원의 판결도 계속될 것이다. 내키지 않더라도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표현이라며 하나둘씩 밀어내기 시작하면 그 빈자리가 언젠가는 모든 자유를 흔드는 균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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