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갤런당 4달러’ 개스값 표시판이 늘어나고 있다. 중동에 들불처럼 번지는 민주화 시위를 진심으로 응원하면서도 주유소 펌프 앞에선 착잡해 지는 것이 요즘 미국인 대부분의 심정이다. 리비아사태가 악화되면서 주초에 진정기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2일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미국의 역대 개스파동은 매번 중동의 불안한 정정과 맞물리면서 경기침체로 이어져 왔다. 1970년대 초엔 아랍 산유국의 엠바고로 인해, 70년대 말엔 이란혁명 때문에, 90년대 들어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쟁이 야기한 오일쇼크를 겪으며 미국은 침체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 중동과 북 아프리카에 휘몰아치는 분노한 민중과 독재정권이 맞선 유혈대결의 와중에서 유가가 요동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첫 오일쇼크 당시 미전역의 주유소마다 개스를 넣으려는 자동차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 것을 보며 닉슨이 더 이상 수입석유에 목매지 않겠다고 대외의존도 감축을 선언한 이래, ‘에너지 자립’은 백악관에 태양열 지붕을 설치한 카터를 비롯해 현재의 오바마까지 8명 대통령의 주요 어젠다가 되어왔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수입오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다. 하루에 필요한 1,900만 배럴 중 절반이 넘는 약 1,000만 배럴을 수입한다. 수입국은 캐나다, 멕시코, 사우디,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순으로 중동에서의 수입은 20%정도다. 수입량이 미미한 리비아의 수출중단과는 실제론 큰 관계가 없지만 현재 리비아의 공백까지 메워주고 있는 사우디의 왕정이 무너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엄청난 선심성 돈 보따리를 풀겠다는데도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는 보이스가 확산되는 등 사우디로부터 들리는 소식은 왠지 불길하다.
아직 오일쇼크는 아니다. 리비아 사태가 원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지금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고 일단 마무리된다 해도 사우디 등 주요산유국이 흔들리는 중동의 불안, 원유시장의 위험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예측하기 힘든 중동의 오일쇼크에 미국이 아무 통제권도 없이 전전긍긍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40년간 말로만 강조해온 에너지 대책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어떤 대책인가? 모든 대책을 다 시도해야 한다. 이념에 어긋난다고, 정치적 방향이 다르다고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버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 원칙은 수십년 똑 같다.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태양과 바람에서 옥수수까지 녹색의 대체에너지 개발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탄소 없는 미래가 실현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15년까지 100만대 전기자동차를 주행시키겠다는 오바마의 야심찬 목표도 시행 불가능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어도 거리엔 여전히 2억5천만대의 개솔린 자동차가 달리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최소 수십년 석유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드릴 베이비 드릴”로 상징되는 연안 석유시추에 의한 국내 증산도 빼놓을 수 없다. 북알래스카로부터 미 연안 대륙붕 일대에 묻혀있는 석유매장량이 미국인 수십년 소비량과 맞먹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은 이미 여러 보고서를 통해 지적되었다. 자기 석유는 발밑에 묻어둔 채 남의 석유를 비싼 돈 주고도 못살까봐 애태우는 셈이다. 지난해 3월 오바마가 신념을 깨고 어렵게 발표했던 동부연안 시추확대 허용은 4월의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전면 중단되었던 멕시코만 시추가 이번 주부터야 다시 허용되기 시작했다.
사고의 후유증인지, 공화당의 단골 정책 “드릴 베이비 드릴”은 구체적 추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에 접어들며 정말 갤런당 5달러로 치솟아 한번 가득 채우는데 75달러가 든다면 오바마도, 민주당도 반대하기 힘들 것이다. 시추확대에 대한 여론은 유출사고 후에도 60%대 22%로 여전히 지지가 높다.
소비를 줄이는 지름길은 개솔린세 인상이다. 지구에 대한 사랑보다는 주머니사정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보통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경제회복에 타격을 주지 않도록 점차적으로 몇 년에 걸쳐 개솔린 세를 올리는 것이 절약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은 스티븐 추 연방에너지 장관도 여론의 눈치 보지 않던 학자시절 강조하던 주장이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소 건립까지 더해 모든 제안이 시행된다 해도 에너지 자립의 완전실현은 불가능한데 워싱턴의 초당적 합의와 정치적 용기 없이는 증산도, 절약도 한발 전진하기 힘들다. 2012년 대선위한 준비태세에 돌입하는 양당이 정치적 계산을 멈추고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어느 정치인이 유권자의 분노를 감수하며 세금인상을 설득하는 용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에너지 자립’은 지난 40년처럼 앞으로도 오랫동안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요원한 꿈으로 남을 듯하다.
박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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