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솟는 물기둥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 절로
맘모스 핫 스프링의 계단식 테라스
나는 기껏 몇몇 사람들이 둔덕에 둘러서서 뜨거운 물이 조금씩 삐죽 솟는 걸 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김이 뭉게뭉게 오르는 현장과 멀찍하니 떨어져서 야외경기장처럼 관람석 의자들이 쭉 놓였다. 자리를 못 잡아 의자 앞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았더니 따끈따끈한 천연 온돌이라 감개무량이다. 많은 관람객들이 전부 카메라를 꺼내들고 조금씩 김을 내뿜으며 준비운동중인 분기공을 이제나 저제나 주시하고들 있다. 70분 간격이던 분출이, 1995년 지진이후 간격이 더 길어졌단다. 현재는 대략 65분-90분 주기로 40-50미터 높이의 뜨거운 물기둥을 4분정도 분출한다나. 거의 규칙적으로 약속을 지키는 신의에 빗대 지은 올드 훼이스풀이란 이름값을 하긴 할 텐데 어째 영 잠잠하다. 30분이 넘도록 뽀
얀 증기와 작은 물기둥만 불쑥불쑥 솟다 잦아지며 감질나게 마냥 멈칫거렸다.
애타게 기다렸던 추정시간에서도 22분이 지났다. 어! 간간히 낮게 솟던 하얀 증기구름이 급격하게 불쑥불쑥 커지는 조짐이 어째 심상치 않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찰나! 드디어 빵! 하면서 거대한 물줄기가 하얀 증기를 뿜으며 마음껏 물기둥을 하늘로 치솟았다. 속 시원하게. 물기둥 간헐천은 세계에서 뉴질랜드와 아이슬랜드, 옐로스톤에 4개뿐인데, 여기처럼 수량이 많고 높이 솟는 게 없다더니 과연 장관이다. 명불허전이다. 저렇게 내뿜는 물이 하루 17회-21회라니 그 물이 다 어디로 가지? 주변엔 강도 없고 석회화된 바위 둔덕인데. 알아보니 대부분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터지거나 일부는 화이어홀 강 쪽으로 흘러 간단다. 하여간 지금도 화산활동이 맹렬하게 진행 중이란 생생한 증거임엔 틀림없다. 자연의 불가사의함 자체다. 위압감과 경외감에 휩싸인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아까 봤던 전체가 하얗게 고사된 나무들과 달리, 나무들이 발목에만 하얀 부츠를 신은 채 집단자살을 한곳이 여러 군데다. 이른바 나무들의 뿌리가 뜨거운 지역에 닿아 화상을 입어 죽은 거였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더 살고 싶었을까. 너무 안됐다. 이렇게 땅속 지열과 화산작용으로 고사한 나무들을 규화목
이라고 한단다. 이제 ‘산 넘어 산’이란 뜻의 몬타나주로 들어섰다. 이곳도 가을엔 바람만 불면 잎을 떤다는 사시나무의 일종인 아스팬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이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옹이랑 송진이 많다는 Gnarled Limber Pines들이 압도적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나무들이 Douglas Fir라는 전나무와 Engelman Spruce란 가문비나무 과의 전나무군 들이다. 꼭대기엔 하얀 껍질소나무와 뾰족한 형상의 고산전나무 Spire-Shaped Subalpine Fir들이다. 산 아래나 호숫가엔 자작나무도 심심찮게 자리를 잡았다.
관목들 밑엔 은색 빛에 키들이 아주 작은 세이지브러시세상이다. 이 식물은 북미 서부산 쑥의 일종으로, 옛날엔 바다 밑의 해초였는데 바닥이 융기될 때 솟아올라 점차 진화됐단다. 잎의 냄새를 맡아보니 민트보담은 강하고 역시 쑥 향에 더 가깝다. 어느 새 해는 뉘엿뉘엿, 그런데 어째 날씨가 잔뜩 인상을 쓰기 시작이다.우려 속에 맘모스 핫 스프링에 도착했을 땐 기어이 빗방울까지 긋는다. 증기를 내뿜는 약 500 갤론의 물 대부분이 해발 1900m의 맘모스 테라스에서 하얗게 석회암층을 형성하며 떨어지는 곳이다. 그런 많은 양의 온천수에 포함된 칼슘과 풍부한 미네랄이 매일매일 침전되며 석회화가 이루어져 계단식바위와 웅덩이로 변화된 곳이기도 하다. 냄새는 여전히 독해 눈이 아프건만, 지금은 떨어지는 물의 양도 규모도 축소되고 뿜어내는 증기의 힘도 약하단다. 그래도 우측 맨 꼭대기 계단에선 계속 증기가 뽕뽕거리며 물이 작은 폭포처럼 낙하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볼거리는 옥수수모양의 11미터에 달하는 탑이다. 말하자면 땅속의 광물질이 땅위로 밀려올라와 돌처럼 굳으면서 쌓아올려진 결정체다.
5마일 거리에 있다는 둘째 날의 쉴 곳인 몬타나주의 가디너로 향했다. 가디너는 해발2356m에 있는 130평방의 작은 마을이다. 광부들이 개척한 인구 500명의 그야말로 산골미니도시다. 시골스럽고 투박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으로 스테이크와 아이다호 통감자를 먹었는데 감자 맛이 역시 끝내준다. 그 다음날 새벽, 늦었다며 짝꿍이랑 급히 뛰쳐나간 시각이 5시 10분이었다. 그런데 어째 버스 주변이 안개에 폭 잠겨 적막하다했더니 집합시간이 5시가 아니라 5시 40분이란다. 갑자기 자유시간이 공짜로 떨어진 덕에 늦었다고 포기했던 새벽산책길에 나섰다. 외진 산골마을에서 깜박이는 불빛들과 동무하며, 희붐하게 자태가 드러난 산 뒤에 숨은 고고한 설산의 청량한 정기를 마시며 걸었다. 언제 또 너와 내가 이런 산골데이트를 하겠느냐면서... 가디너에서 공원입구까진 1마일 쯤 될까? 조식 후 출발했는데 외양만큼은 딱 우리의 독립문인
돌문이 보였다. 반갑기 그지없다. 독립문과 달리 양옆으로 잇대어 20미터정도씩 낮은 돌담이 있고 문 가운데로 차량들이 통행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개선문이라고 여길 그 문의 진짜 이름은 Roosevelt Arch다. 옐로스톤을 1872년에 국립공원으로 서명한 건 그란트 대통령이지만, 누구보다 옐로스톤을 사랑해서 시설을 확충하고 도로정비며 숙소를 건설하게 했던 사람은 테디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이 독립문도 그가 이곳에서 제막식 연설을 한 기념탑이다. 독립문 위 정중앙엔 ‘For the Benefit And Enjoyment of the People’이라고 새겨져있다. 바로 앞 길가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오리지널 북쪽 입구’라고 크게 쓴 사인보드가 서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독립문을 지나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와이오밍주로 들어서니 집 모양들이 조금 전과 확연히 다르다. 몬타나주의 규격화된 개성 없는 집들과 달리 벽면과 지붕까지 Lodgepole Pine통나무로 지은 집들이다. 전원적인 배경과 어울려서 그지없이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여운을 준다. 옛날, ‘7인의 신부’라는 미국 영화에 나오던 산장모양의 집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 산이 온통 새까맣게 그을린 검댕이 모습이다. 최근에 산불이 났던 지역인가 보다. 느닷없이 검은 생채기의 처참한 흔적과 맞닥뜨리니 너무나 아깝고 참담해 말없음표다. 더구나 한군데도 아니고 안타깝게 연속으로 나타난다. 나무들의 고통이 가감 없게 전달돼 가슴이 쓰려죽겠다. 그렇게 온통 소사해 몰살된 지역에도 용케 바람이 비켜간 탓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천운의 나무도 섞여있다. 기적의 소생이겠다. 엄청난 대화재도 이겨냈으니 스스로 치유할 것을 믿으며 억지로 위안한다. 와중에 불가사의 하게 싹을 내민 곳도 있어 신통하고 장하다. 그런데 공원관리국에선 왜 까맣게 타죽어 픽픽 쓰러진 흉물들을 안 치우고 방관하지? 치울 건 빨리 치우고 보충조림하면 더 빨리 회복되련만. 의아스럽다. 나중에야 ‘철저한 인공배제’가 국립공원의 방침인 걸 알았다. 웬만한 산불도 자연적인 숲 순환의 일부로 간주해 묵과한 다음, 오로지 ‘자연에 의한 복구과정’을 관찰기록 한단다. 일리 있다. 최상의 자연보호는 한 점 인간의 간섭 없이 자연의 힘에만 맡겨두는 거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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