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 클리닉 부실장
얼마 전 뉴욕의 컬럼비아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멋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일명 재능기부 프로젝트로 뉴욕 한인사회에서 형편이 어려운 고교생을 학교 강의실에 모아 총 5주에 걸쳐 SAT 시험 준비를 무료로 지도해주는 내용이다. 프로젝트는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친자매가 의기투합해 이웃을 섬기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예산 지원도 없이 작게 시작했는데 의외로 한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서 총 80명의
학생들이 신청했다. 바쁜 유학생활이지만 자신이 지닌 작은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려는 학생을 만나보며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한 신문에서 미국을 위한 교육(Teach for America)이라는 단체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단체는 1990년 웬디 캅(Wendy Kopp)이라는 프린스턴대학 학생의 졸업논문에서 발단이 됐다. 당시 21세였던 웬디 캅은 250만 달러의 초기 자금을 모금해 뉴욕과 LA를 비롯한 6개 빈곤지역에 500명의 교사를 파견했다. 2010~2011년 기준 이 단체는 전국 39개 빈곤지역에 총 8,200명의 교사가 근무할 정도로 놀랍게 성장했다. 이 단체가 눈길을 끄는 것은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 졸업반 전체 학생의 10%가 초급교사 자리에 지원했다는 점이다. 2010년 한 해 전국 350개 대학에서 4만6,000명의 졸업자가 지원해서 단지 12%가 합격했을 정도로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2009년 합격자들의 학점도 평균 3.6이 넘고 SAT성적도 1333점에 달했다. 이 정도 학벌과 실력이면 미국 상위권 로스쿨, 경영대학원, 혹은 거액의 연봉을 제공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뛰어난 학생들이 미국의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 2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지탱하는 큰 원동력이다. 나눔과 봉사의 정신은 미국사회 곳곳에 깃들어 있다. 미국에서는 2009년 한 해 민간 기부액이 3,037억 달러에 달했다. 많은 사람들은 주로 기업에서 기부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해 총 기부액의 75%에 달하는 2,274억 달러는 개인 기부자였고 기업 기부액은 14%인 140억 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기부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또한 미국인들은 돈 만이 아니라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들이 가진 시간과 재능을 남과 나누는데 매우 익숙하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내게 영어를 지도해 준 사람들도 모두 은퇴한 미국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꼭 가르친다. 아무리 똑똑하고 높은 SAT 점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지역사회 봉사기록이 없는 이기적인 인재를 받아주는 대학은 별로 없다.미국의 학교에서는 연말이 되면 학교기금 마련 기부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주로 초콜릿을 팔거나 상품구매 안내서를 들고 다니면서 물건을 판매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왜 아이들에게 이런 것까지 시키나"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교육의 일환임을 깨닫게 됐다. 미국에서는 소위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 학생들일수록 사회참여와 봉사에 앞장선다. 대학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한 상아탑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심각한 입시경쟁과 생존경쟁 속에서 남을 이기며 살아가는 법을 일찌감치 배우며 자라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해 주는 직업을 갖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단지 자녀의 출세와 성공만이 양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공을 향한 열망과 노력이 자신의 안위에 맞춰진 사람과 타인을 품어 안고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시작점은 같을지 몰라도 종착역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남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인생에는 여유가 넘쳐나고 행복이 깃든다.
글머리에 소개된 재능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한 컬럼비아 교육대학원생들에게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했던 것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저희들에게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셨고 또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자연스럽게 봉사의 마음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 멋지게 자라지 않았는가? 한국에서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오고 명문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이
학생들의 핏속에는 나눔이 흐르고 있었다. 이들을 키운 부모가 자랑스럽다. 나도 우리 아이를 그렇게 키웠으면 좋겠다. 아이가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양육의 진정한 목표라면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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