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예산전쟁의 막이 올랐다. 연방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팽팽하게 맞설 논쟁과 공방은 앞으로 몇 달, 아니 내년까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천문학적 숫자가 난무하고 갖가지 정치 전략이 동원될 복잡하고 지루한 전쟁이다.
지금 당장의 중대 사안 뼈대만 추려도 서 너 가지가 얽히고설켜 있다 :
14일엔 오바마가 2012회계연도 예산안을 제출했다. 이를 출발점으로 의회의 예산논의가 시작되는데 상하양원은 4월경에는 각각의 예산안을 마련해야 한다.
15일부터는 하원이 2011회계연도 지출삭감안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다. 공화당은 1천억 달러 삭감 강행을 다짐하고 오바마는 거부권을 위협한다. 3월4일까지 2011년 최종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연방정부 잠정폐쇄 사태에 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정부 부채 법정한도는 5월16일까지 14조290억 달러인데 빚으로 연명하는 적자살림이어서 4월 전에 이 한도액에 다다를 전망이다. 의회가 그전에 부채 한도를 올려주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채무불이행 사태, 이른바 디폴트를 맞게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예산운용이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치열한 싸움의 주제가 우리가 낸 돈인데, 어느 쪽을 왜 지지해야 할까 정도는 우리도 알고 싶다.
오바마의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워싱턴에 자주 등장하는 두 개의 용어는 기억해둘 만하다.
하나는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을 총칭하는 Entitlement program, 정부가 수혜를 보장하는 서비스로 지금까지 예산 삭감의 ‘성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다른 하나는 kick the can down the road, 결정을 미루거나 어려운 이슈를 회피하는 정치가의 행동을 비유할 때 즐겨 쓰는 슬랭이다.
가장 기본 숫자로만 보면 오바마의 예산은 한심하다. 수입은 2조6천억달러인데 지출은 3조7천억달러, 1조1천억 달러가 적자다. 사방에서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출 줄이기, 경제성장 위한 투자, 증세 등이 골고루 포함되었지만 사방 모두가 불만이다.
진보진영은 대학생 학비보조 펠그랜트와 저소득 난방비 지원까지 깎다니, 이 어려운 때 가난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모느냐고 분개하고 보수진영은 “말이 좋아 투자이지, 또 다른 지출”이라고 고개를 돌린다.
더 거센 비판은 적자해소 부분이다. 재정문제 해결위한 첫 과제인 적자해소의 장기적 근본대책에 대해 kick the can down the road, 이슈자체를 아예 피해갔다는 지적이다.
예산의 60%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entitlement program이다. 그런데 오바마의 2012년 예산안은 이 프로그램의 개혁은 건드리지도 않고 전체예산의 12%에 불과한 정부재량예산에서 ‘조금씩’ 삭감하여 향후 10년간 겨우 1조달러의 적자를 줄이려고 한다는 것(2011년 한해의 적자만도 1조6천억달러)이다.
정부수혜보장프로의 개혁 없이는 적자의 심연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단언한다. 1년전 오바마 자신이 임명 구성한 초당적 적자해소위원회의 보고서 내용도 같다. 정부수혜보장프로 및 국방 예산의 지출을 삭감하고 세제를 개편하고 현행 감세혜택을 폐지하는 등 ‘성역’ 없이 온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면 향후 10년간 4조달러의 적자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정부수혜보장프로 삭감을 거론 안하긴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충실한 유권자인 수천만 노년층의 분노가 두려운 것이다. 퓨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부수혜보장프로 지출삭감 지지율은 12%에 불과하다. 노부모의 메디케어가 삭감되고, 자신들이 노후를 기대려는 소셜시큐리티 연금이 깎여나가는 것을 누가 선뜻 지지하겠는가.
재선을 위한 전략이든 초당적 타협을 위한 단계적 조치이든 간에 오바마의 이번 예산안은 정치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민주당 전략가들은 평가한다. “리더십을 포기한 속임수”라는 비판을 쏟아낸 공화당이 인기 없는 소셜시큐리티-메디케어 삭감 대책을 먼저 꺼내야 할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공이 아닌 폭탄을 공화당에게 넘겨준 셈이 되었다.
어제 뉴욕타임스에 한 은퇴부부의 독자편지가 실렸다. 정치인들에게 진정한 용기를 촉구하며 말했다 : “자식과 손자들도 우리와 같은 은퇴혜택을 누리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희생해야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십시오. 부유층의 세금혜택을 먼저 폐지한 후 우리 중산층에게도 세금인상을 요청하십시오. 국가예산에 대해 진실을 알려주었다면 표를 얻는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국익과 후세를 위해 필요한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성인으로 대하기 바랍니다”
매일의 빠듯한 생계에 숨이 차 여분의 노후대책은 엄두를 못내는 서민들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복잡하고 지루해도 예산전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박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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