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寒),소한 다 지나면 얼어 죽을 놈 없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입춘(立春)이 지났는 데도 두툼한 털 모자를 뒤집어 쓰고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어 가고 있는 한국의 거리 풍경을 보면서, 애스키모의 동토(凍土)를 생각하게 한다.
그 뿐인가 유럽의 공항 마다, 폭설로 비행기가 뜨지 못해, 공항 마다 발이 묶여 노숙자 신세가 되어 버린 많은 사람들의 얼시년 스러운 모습들과, 86년 만에 48cm의 적설량 때문에 얼어 붙은 NewYork의 차가운 도시 풍경을 보면서, 세계적인 기후변화를 다시 한번 실감 하게 한다.
그런데도 내가 사는 이 곳 북가주의 하늘은 오늘도 맑기만 하다. 그리고 간밤에 내린 봄비가 대지(大地)를 촉촉히 적시드니 낮에는 포근한 날씨가 어머니의 가슴팍 같이 포근하다. 어쩌다 오게 된 이민이기는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곳 보다 끝내 주는 기후조건과 풍부한 먹거리 때문에 이곳 북가주에 정착(定着)하게 된 행운을 오늘 따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는, 형의 가족들을 초청해 준 동생이, 용케도 이곳에 첫 이민의 터전을 잡은데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둥지를 박차고 봄 나들이 나가는 병아리처럼, 한 마리 늙은 수탉이 되어, 따사한 햇살을 차창 밖으로 받으며, 헬스-크럽으로 달려 간다. 아무리 고령화 사회라곤 하지만, 이 나이 만큼 살았으면 꽤나 오래 살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다고 말이다.
내가 자전거 패탈을 힘겹게 돌리다가 차 오르는 숨을 고르기 위해, 패탈 돌리기를 멈추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때, 옆에서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던 중년 신사가 나를 보고는 You OK ? 라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건낸다. 미국 사람들! 그들의 남을 배려하는 몸에 배인 습성의 염려에서 든진 말이긴 하겠지만, 불면 획 날라 가버릴 것만 같이 빼빼 마른 Chinese(동양인) 영감이, 좀더 살아 보겠다고 발부등 치는 모습이 칙은하게 보여서 한 말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노령(老齡)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로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다가 자빠져, 엉등이나 머리를 다쳐, 인생 종착역의 길목 같은 양노원(養老院) 신세를 지게 되는 날에는 살맛을 잊고 살게 뻔하고, 자식들에게 걱정거리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그들의 시간 마져 빼앗게 되는 날의 낭패를 면하기 위해 이렇게 다리에 힘 올리고 있는 이 노인의 속마음을 알고서 하는 말인지 궁금할 뿐이다.
운동을 끝낸 나는 습성처럼 들리는, 미국 식당 일번지(一番地)인 맥도날드로 향한다. 커피 한 잔에다 생선 햄버그를 시켜 놓고는 막 커피 한 모금을 드리 마시고 있을 때, 키가 버드나무 같이 훤칠하게 큰 미국인 노인이 여섯 살에서 아홉살 쯤으로 되어 보이는 두 손녀를 데리고 내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그들은 얼굴에 함박꽃 같은 웃음꽃을 피우며 먹고 마신다. 두 손녀를 바라 보는 할아버지 모습이 유난히도 나의 시선을 끈다. 동양인도 아닌, 핵가족(核家族) 시스템에 길들려 진 그들이, 가족의 정(情)이 넘치도록 정다워 보이는 풍경은, 캘리포니아의 날씨 보다 포근하고 어느 유명 화가가 그린 아름다운 수채화(水彩畵)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진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와 손녀들의 정다운 모습을 지켜 보는 동안 내 머리 속에 교차 되는 두 가지 사연이 있다면, 그 하나는 요즘 한참 L,A 현지 한국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고 있는, 노인 상대의 본국의 고급 실버타운 즉, 노브레스타운(귀족 아파트) 입주 선전문구 중, 한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요!” 라고 뇌이며,한국돈 월 60만원의 실버타운 입주를 권유하는 나레이션(Naration)에 대한 찹찹한 나의 심정이며,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 날까지도, 내 기억과 청각(聽覺)의 메모리 판(Memory Board)에 또렷하게 저장(貯藏)되어 져 있는, 옛날 친할머니의 기도 소리인 것이다. 그건 바로 내가 내 앞 테이블의 할아버지 앞에서 조잘거리고 있는 두 손녀의 나이일 적에, 방학 때 마다 할머니 집에 찾아 가, 방학기간의 절반 이상을 거기서 머물었을때, 토종닭 달걀을 질그릇 뚝배기로 찐 겨란 찜을 맞 있게 먹는 내 모습을 귀엽다는 눈매로 바라 보시던 할머니의 그 정겨운 모습과, 잠 들기 전에 나를 그분의 무릎 앞에 꿀어 앉혀 놓고는, “하나님, 우리 웅아(내 어릴 때의 애칭)를 암닭이 병아리 안듯이 보살펴 주이소!” 라고 하시던 할머니의 그 기도 소리 말이다.
그래서 이제 그 친할머니의 나이 보다 더 많이 먹은 나도, 하루에 세번 드리는 기도 시간 마다, 우리 손녀 손자들을 위해 기도 할때, 그 옛날 할머니처럼, “우리 손녀 손자들을, 암닭이 병아리 안듯이 지켜 주십시오!” 라고 기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주 평 (아동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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