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회장(뉴욕한인교사회)
보릿고개를 겪은 나의 부모세대는 죽과 꽁보리밥만 생각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유기농 음식을 선호하는 지금 우리 세대는 꽁보리밥, 건강 죽, 잡곡밥 등을 건강식으로 알고 챙겨먹기 바쁘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세대에 따라 때론 독약처럼, 때론 비싼 보약처럼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까?
나는 뉴욕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살았다. 부모로부터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 때 겪은 뼈아픈 얘기들을 숱하게 들어왔다. 커가면서 한국영화나 비디오를 보며 더욱 자세히 알게 됐고 학교 역사 수업이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는 학문적인 이해도 갖추게 됐다. 한국에 남아있는 지역적 감정도 잘 모르고 또한 한국식 이념이나 사상, 색깔 등도 잘 모른다. 책에서 배웠기에 머리로는 논리적으로 이해하지만 직접 겪은 바 없기에 솔직히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선배 및 지인들과 더불어 e-메일로 일종의 ‘이념 전쟁’을 경험하게 됐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정신없이 음식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옆에 켜진 컴퓨터에 다가가 그들과 e-메일을 주고받았었다.
이념 전쟁은 얼마 전 한국일보 교육칼럼에 기고했던 타일러 클레멘티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내 글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담아 보낸 답장 중 하나가 발단이 됐다. 럿거스 대학생이던 클레멘티는 얼마 전 친구들에 의해 동성애 사실이 공개되자 자살을 선택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칼럼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은 ‘좋은 글을 잘 읽었다’ ‘열심히 계속 써 달라’ 등
격려의 말도 많지만 반면 반대 의견들도 만만치 않다. 이중 어떤 남성이 타일러 클레멘티 관련 칼럼을 보고 보낸 e-메일 내용 중에 ‘동성연애자들은 멸망해야한다’ ‘당신처럼 진보적(left-wing)인 사람이 교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인지 안 봐도 알겠다’는 등 다소 격한 표현의 의견을 영어로 적어 보낸 것이 눈에 띄었다.
e-메일을 보낸 남성은 자신이 아주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서 ‘타일러 클레멘티의 죽음’에 관한 내 칼럼내용에 반발했다. 결과적으로는 해당 독자와 수없이 주고 받은 e-메일을 통한 격한 이념전쟁 끝에 화해로 마무리했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나중에는 전화통화까지 나누게 됐다. 이 시점에서 나는 어느 목사님 말씀처럼 ‘이념보다 사랑’이라는 글을 떠올리며 전적으로 동감하게 됐다. 나의 정치적 색깔이 무엇이든, 나의 종교적 스펙트럼이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먼저 사랑을 연습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쉽지 않다.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이념 전쟁을 하기 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위에 갈 곳이 없어 떨고 있는 노숙자를 위해 외투를 걷어 갔다 주기도 해야겠고,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찾아가 맛난 음식도 드리고 말벗도 되어 드려야 하
겠고, 부모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포옹해주며 ‘사랑한다’ ‘예쁘다’ ‘네가 최고다’ ‘너 때문에 행복하다’ ‘내 자식으로 태어나줘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정말이지 해줘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아 스스로 고쳐야 할 점들을 적어놓고 한 가지씩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1. 남을 배려하며 남의 입장에서 우선 생각하기 2.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감정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지 말기 3. e-메일 등으로 주고받는 글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기 4. 아침에 일어나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하기 전 우선 제일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기 5.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직업도 있고 자식도 있고 건강도 있다는 사실에 진실로 감사의 기도하기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정초에 이어 이달 초에는 한국의 음력설을 지내며 그간 흐트러졌던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출발할 수 있는 새해를 다시금 맞이하면서 새로운 새해 결심을 또 다시 하게 된 나는 이념 전쟁과 e-메일로 하는 전쟁은 모두 접어놓고 사랑을 실천하겠는 계획을 먼저 세우게 됐다. 무엇보다 감사하며 화평하고 그리고 사랑을 연습하는 것이 올해 나의 새해 결심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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